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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이름으로 보는 베트남의 역사 - 영웅들의 거리
허종 지음 / 비봉출판사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떤 나라라 해도 거리에 특별한 이름을 붙여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을 기립니다. 서울에도 세종로, 충무로가 있으며 부산에도 충무동이 있고 개인적으로 20기 21주차에 리뷰한 정환호씨(外) 책에도 나오듯 광주 금남로가 정충신공의 군호를 따라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런 예 말고도 뭐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죠.
베트남도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바로 위의 중국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던 역사를 지닙니다. 물론 때로는 역부족으로 우리처럼 사대(事大)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갈등과 항쟁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죠.
책에 나오는 여러 거리 이름들 중 쩐흥다오(라는 이)가 있는데 한자로는 진흥도(陳興道)라고 씁니다. 중국은 언제나 멀리도 떨어진 베트남을 노리고 있었는데 몽골이 대륙을 통일한 후엔 이 추세가 더욱 심해집니다. 제가 19기 20주차에 리뷰한 <중국 서남부>를 보면, 원래 운남성은 중국 본토와 지리상 멀 뿐 아니라 마치 조선처럼 풍속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외국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게, 몽골의 원 제국에 의해 비로소 중국에 편입된 것입니다. 이 와중에 똑같이 큰 시련을 받던 고려에 성(省)이 세워지지 않은 게 놀라울 뿐이죠.
여튼 저 진흥도 장군이 몽골의 칩입을 격퇴한 후 중원은 좀처럼 베트남을 넘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 장군이 몽골군을 물리친 것도 헤전에서 놀라운 전술을 구사해서였는데 이 점에서 이순신 장군과 비슷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래서 이 충무공과 쩐 장군을 나란히 놓은 것입니다.
베트남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한자에서 비롯한 말이 많습니다. 저는 베트남어 학습서나 이런 베트남 문화 입문서에 한자를 좀 같이 썼으면 훨씬 배우기가 쉬울 것 같은데... 요즘 개인적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EBSi의 베트남어 수능 강좌를 듣습니다만(수능 준비하는 건 물론 아니고요ㅋ) 그 강사분이 수능 이런 걸 떠나서 꼭 일상 단어들도 한자와 연결을 시켜 주는 게 좋았습니다. 다만 사회주의 공화국의 이념상, 또 중국과의 항쟁 내력 때문에 한자는 의도적으로 안 쓰는 게 그쪽 경향입니다(물론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도 있습니다).
예전에 유시민 책인지 아니면 고 리영희씨 책인지에서 베트남 통일 과정과 한국 전쟁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지적하는 대목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사실 베트남은 북부와 남부가 원래 서로 다른 민족입니다. 지금 중국도, 예를 들어 영하회족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에 가 보면 원 민족보다 (소위) 한족이 더 많이 살고 심지어는 신장, 티벳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죠. 베트남도 이런 추세가 워낙 강했기에 이미 19, 20세기에 베트남 남부에 이른바 킨족, 즉 베트남 북부의 주류 민족이 더 많이 사는 경향까지 나타났습니다. 애초에 사정이 다른 케이스에 일반 원칙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피해아 할 것 같아요. 거리 이름을 자세히 알아 유익한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