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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장례식
박현진 지음, 박유승 그림 / 델피노 / 2022년 3월
평점 :
모든 인간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혹은 잘났건 못났건 간에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그 과정이 가능한 한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으며, 또한 주변에 큰 미련을 덜 남겼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아빠는 무엇 하나를 시작하면 세상에 그것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야.(p20)"
세상에는 이런 분들이 꼭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과제나 대상, 혹은 일생의 가치를 둔 그 무엇에 집요할 만큼 천착합니다. 그것은 종교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베토벤이 귀가 멀어가면서도 완성하려 들었던 교향곡이라든가, 혹은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내어 가며 완성에 가까운 묘사를 기도했던 그 자화상과도 같습니다. 그 미술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천국"입니다.

"아비의 추억이, 육십 년 그 인생이 자꾸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따라 툭 지고만 있다(p41)."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마치 이카로스의 날개가 향하던 저 먼 하늘의 끝처럼, 자신의 무게(역시 보잘것없기는 합니다만)는 돌보지 않고, 자신의 힘의 한계는 거뜰더보지도 않고 높게 높게 위로만 향하려고 합니다. 무심한 만유인력의 방정식은 이를 무시하고 아래로 아래로 당기기만 합니다. 그 중력의 장(場)을 따라 우리의 이상도 꿈도 피부도 육신도 아래로 아래로만 늘어지다 마침내 지면에 닿아 흙으로 화합니다.
아버지는 예술가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 중 하나는 야곱의 꿈(p92)이었습니다. 야곱이 누구입니까. 차자(次子)의 서글픈 위치를 숙명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찬형에게 도전하여 장자의 권리를 뺏으려 들었으며, 광야에서는 여호와와 씨름으로 겨루어 마침내 이긴 위인입니다. 그래서 후세인들은 그를 이스라엘이라 일컬었습니다. 책에서의 아버지, 천생 화가였던 분도 역시 그런 기질을 무척이나 단단히 그 영혼에 지녔는지 화폭을 통해 끝없이 그 치열하고 집요한 기질을 표현하려 드신 듯합니다.
"신앙이 인생의 팔 할이었던 사람(p132)" 나머지 이 할은 물론 예술이었겠으나, 이분에게는 신앙이 곧 예술이요 예술이 신앙인 불꽃 같은 장인혼과 성도의 지향을 내내 유지하지 않으셨을까 짐작도 해 봅니다. 저자는 자신을 두고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아왔다고 고백(p156)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런 병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노년에 무척이나 모진 고통을 겪었던 아버지이지만, 장례식을 마치고 평안히 대지와 합일하는 순간 그 고통은 보상을 넉넉히 받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맹목이 될 수도 있었던 한 예술가의 투혼은 비로소 종교를 만나 대지와 천상의 이치와 합일하게 된 게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