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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북 ㅣ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10
최일남 지음, 백석봉 그림 / 이가서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1986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입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전통 등에 깊은 애착을 갖고 일제 강점기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할아버지, 그런 부친을 이해 못 하고 산업화 시대의 효율과 질서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으며 열심히 일만 해온 기업의 중역인 아버지, 마치 격세유전의 법칙이라도 따르는 양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에 더 큰 친근감을 느끼며 학생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대학생인 아들, 이 삼대의 갈등과 화해와 소통을 압축적으로, 혹은 우화적으로 다룬 내용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소재는 전통악기와 그것이 빚는 음악인데, 1980년대 대학생들은 "우리의 것"에 대한 재발견의 노력으로 대학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이쪽으로 깊이 파고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업화 세대들은 서양 클래식 음악에 비해 정돈되지 못한 "미개한 소음"으로만 여기죠. 작품의 제목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최근 20대가 그 선배 세대의 가치관에 대해 전면 부정 혹은 냉소적 태도를 띠는 흐름과 맞물려 이 작품의 격세유전 주제가 다시 주목된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책은 어린 독자들을 배려하며 작품의 정신과 서사의 흐름에 잘 맞는 멋진 일러스트가 다수 수록되어 있어 더욱 장점이 빛납니다.
최일남 선생은 전북 출신이며 동아일보 논설위원도 역임한 원로 언론인입니다. 본래 동아일보가 호남 지방의 대지주 집안의 후손이었던 인촌 김성수 부통령이 창립한 곳이므로 호남의 인재들이 두루 활동하던 신문사였습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무렵에는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며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는 <馬(마)>라는 작품을 민음사 刊 <세계의 문학> 봄호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역마살이 들려 약을 팔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인생이었는데 이 캐릭터도 전라도 출신입니다. 약장수라고는 하지만 자기 소유 차량도 보유하는 등 제법 재력을 갖춰서 영업을 하는 편인데 소설 발표 시점이 1981년임을 감안하면 자차 소유자가 당시에 꽤 드물었겠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 작품은 이후 KBS에 의해 극화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약장수 역은 사극 <용의 눈물>에서 조영무 역으로, 또 <태조 왕건>에서 왕평달 역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 준 장항선 씨가 맡았으며, 상대역 춘자는 요즘 보험 광고 등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는 차화연 씨가 연기합니다. 차화연 씨는 화려한 미모보다도 배역 자체를 철저히 이해하고 혼신의 힘을 쏟아 표현하는 그 연기력이 단연 돋보이는 멋진 배우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라 스트라다>, 우리나라에서 <길>로 잘 알려진 그 흑백영화에서 조금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장항선씨의 서길중은 앤터니 퀸의 잠파노에, 차화연의 춘자는 줄리에타 마시나의 젤소미나에 대응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