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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전쟁 -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새로운 지정학 전투,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클라우스 도즈 지음, 함규진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2월
평점 :
오늘(2.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여러 방면에서 공격했다고 하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전쟁이 개시된 듯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문제는 단순한 국경 분쟁은 아니고 여러 복잡한, 또 오랜 세월에 걸친 분쟁, 모순, 갈등의 산물이긴 합니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말살, 절멸시킬 속셈까지는 아닌 듯하니 국경분쟁의 범주에 넣어도 될 듯합니다.
지금처럼 어떤 선(線)을 기준으로 삼는 국경은 서양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며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선이 아닌 면으로 경계를 삼았습니다. 또 서구열강이 본격적으로 동점을 시작하기 전에는 부족, 민족 단위로 각자에게 주어진 자연 영역이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인위적으로 획정된 특정 국경 안의 국가, 그 시스템 주도권을 두고 내전을 벌이는 일도 없었고, 국가 내의(국가 자체가 없기도 했지만) 종족 분쟁 같은 것도 지금처럼 파멸적인 양상까지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현재까지 이어지는 국경 분쟁이나 국가 내 분쟁은 서양 편의로 정해진 질서의 모순에 기인한 바 크며, 냉전 질서가 해체되고 이제 어떤 강압적 분위기가 해소되다 보니 그간 잠복했던 병통이 크게 터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p57에서는 "국토의 완성"이란 (집단) 욕망을 저자가 지적합니다. 이는 비단 21세기에 들어 새로 부각한 게 아니고, 19세기의 이탈리아 이리덴타 같은 것처럼 어느 지역에서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책에서는 아르헨티나, 헝가리의 예를 드는데 아르헨티나의 경우 그들이 주장하는 코 앞의 영토 말비나스 같은 문제가 있죠. 이는 1980년대 당시 군부 독재 정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다 큰코 다친 바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요즘 비정상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포퓰리즘 독재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역시 "상처 입은 과거의 영광" 등을 자극하는 정치적 술책에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p65 이하에 상술되는 인도의 경우 20세기 초의 벵골 분리령 당시에는 전 인도인들이 종교를 떠나 협력하여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했는데, 정작 2차 대전이 끝나고 독립을 얻자마자 힌두교와 이슬람 사이의 다툼이 벌어지고 동파키스탄이 인디아로부터 갈라져 나갔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여 인도와 소강 상태이지만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는 도통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2장에서는 우리 독자들이 쉽게 예측하기 힘든, 재미있는 팩터 하나가 소개됩니다. 만약 전근대 동양의 관습처럼 면 단위로 국경이 정해진다면 훨씬 유연성 있게 운용되었을 것을, 각박하게(?) 경도와 위도의 정확한 측량에 따라 정의되다 보니, 기후 환경이나 지형이 크게 변화할 때 국경이 "움직이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책에 따르면 고지대, 빙하 지대 등에서 이런 일이 잦다고 합니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지진이 적고 화산 활동의 피해로부터도 안전한데다 무엇보다 마시는 물을 별다른 처리 없이 그대로 얻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었습니다. 이웃한 중국만 해도 차(茶) 문화가 그처럼 발달한 게, 식수로 바로 이용할 수 없는 오염된 물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죠. 그러던 것이 선 국경이 보편화되면서부터 자연 국경 중 강(江)이 기준이 되는 경우에는 이 강의 이용권을 누가 갖느냐를 놓고 큰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는 아이훈 조약, 베이징 조약 등이 등장하는데 과거 네르친스크 조약 체제에서는 스타노보이 산맥이 경계였던 걸 이제 우수리 강, 아무르 강 등이 러- 중 간의 경계로 부각되었던 거죠. 이 싸움은 심지어 1960년대, 두 나라가 같은 공산 진영에 속한 상황 하에서도 진행되었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듯, 티벳 고원에서 발원하는 여러 강들의 이용권을 두고 중국이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도나 동남아시아 국가 들과 분쟁이 잦습니다. 이런 분쟁은 딱히 합리적인 기준이나 대안이 쉽게 마련되기 어려우므로 분쟁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이 문제가 대수층(帶水層)을 둘러싼 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대양의 식민지화, "푸른 가속화(p158)" 등의 이슈에까지 이르면 정말 머리가 아파집니다. 싸움이란,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라는 지점을 맞이해야 하는데 과연 이 싸움에 어떤 합리적 절충점이 있겠으며, 혹 힘에 의해 해결된다면 그 결과가 과연 누구한테만 이익이겠냐는 거죠.
기후 온난화에 따라 섬들은 이제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일부 섬나라들의 경우 그 존립이 걱정되는 상황이죠. 이런 나라들에 과연 어디까지 배타적 경제수역을 인정하여 정당한 이익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 나라들조차도 서로 접하는 이웃 국가가 어떠한지에 따라 EEZ는 크게 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EEZ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영해가 불안정해지기도 합니다.
남극과 같은 무인지대는 어떠한가? 강대국은 종종 절실한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이른바 "힘의 투사(p211)"를 위해 실력 행사 또는 어깃장을 놓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북극해 등 전통적인 현지 강국들이 맞보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러시아 등이 과도한 권리 주장을 하기도 하죠. 무인지대가 아닌 곳에서도 분쟁은 벌어지는데 근래 들어 대만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타이페이 정부와 그 국민들이 중국 본토와 진행 중인 신경전이 그것입니다. 이 분쟁 역시 여차하면 열전(hot war)으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솅겐 조약은 EU에 가입한 모든 나라가 국경을 여는 의무를 부과하는데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영국이 탈퇴하여 2016년에 큰 소란이 있었습니다. 꼭 EU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이제는 월경자들을 심사하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스마트 국경(의 문제)"로 규정합니다. 이것이 만약 해킹이라도 되면, 국경 자체의 기능이 침해될 뿐 아니라 개인정보의 완결성이 문제되는 등 그 여파가 큽니다.
책에서는 국경의 우주로의 확장, 또 팬데믹 시대에 질병 관리 문제와 연결하여 국경을 입체적으로 고찰하고 통찰합니다. 어떤 제도, 시스템이건 간에 시대가 지나면 그 효용이 다하거나 더 이상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혜를 안출하여, 시스템이 인간의 살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로 행세하는 끔찍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