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 되는 일이 없을 때 읽으면 용기가 되는 이야기
하주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어렸을 때는 누구나 큰 꿈을 품습니다. "아무나"라는 명칭은 다른 사람들한테나 붙는 줄 알며 자신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한 존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상에 나오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비로소 "아무나" 중 한 명이 되어가는 나를 자각하며 자괴감에 휩싸입니다. 그저 나를 내려놓고 "아무나"가 된 나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님 현실과 타협 말고 꿋꿋이 나 자신의 이상과 비전을 밀어붙여야 할까요. 그도저도 아니라면 제3의 길 같은 건 혹시 없을지 누구한테건 좀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자의 말씀에 따르자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문이 들거나 용기가 다 빠져나가거나 할 때 읽는 책이라고 하십니다.
예전에 어느 미스테리 소설을 읽을 때, 사람을 직접 쳐다보고 하는 일은 자신이 없으나 전화로는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주인공의 사연을 다룬 게 있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꼬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개인적 사정이 있겠습니다만 세상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책 p62에 보면 영화 <록키>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님 말씀대로 주인공 록키 발보아는 그저 몸으로 때우는 사람입니다. 머리도 나쁘고 말재주도 없고(말재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좀 바보가 아닐까 싶기까지 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하는 여러 일들, 육체노동이나 채권 추심 대행 같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실된 마음이 있었고 이건 누구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이었습니다.
저자는 저 록키와는 좀 많이 다른 경우인데 미국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다른 상황에서는 상대의 눈치를 보아 가며 (혹 영어가 좀 서툴더라도) 대응할 수 있었지만, 전화로는 그게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우리는 흔히 "영어 울렁증" 같은 소리를 하며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올 때의 당혹스러운 느낌을 표현합니다만, 저자께서는 처음에 누가 전화를 걸어오면 도망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합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그저 "웅얼웅얼"이었지 무슨 내용인지 도통 파악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런 고비를 맞았을 때 저자의 대응은 "모자란 것보다는 차라리 지나친 게 낫다"였습니다. 우선 자기가 알아 들은 대로 메모를 한 뒤, 상대방의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다 발화되고 나면 이제 자신의 메모를 들려 주며 이러이러한 점을 원하신다는 뜻이었냐고 다시 확인하는 방법을 쓴 거죠. 설령 네이티브 중에 특별히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라 해도 실수는 어쩌다 한두 번이 있을 수 있는데, 저자는 말을 정확하게는 이해 못 하면서도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전혀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게 된 겁니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꿨다고 할 수 있죠.
모르겠으면 다시 묻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아들은 척하여 내 일도 남의 일도 망치는 것처럼 나쁜 습관이 없습니다. 설령 한국어로 모든 것이 클리어하게 소통되었다 해도, 사실 같은 단어를 두고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해석이 달라 일이 그르쳐지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재삼 확인을 거치면, 드물게나마 사기꾼의 모호한 수작도 걸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이 말씀이신 거죠? 이처럼 구체적 확인을 거치면 사기꾼이라 해도 당초의 숨은 의도를 관철 못 시킬 수 있죠.
"힘든 일이 생겨도 남들보다 버틸 근육이 많았다(p91)." 세상에는 이처럼 남들보다 어떤 능력이 탁월하게 앞서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두 눈 질끈 감고 잘 버텨서 결국 성공에까지 이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율곡은 말했습니다. "남들이 한 번에 되게 하면, 나는 열 번이라도 거듭 시도하여 결국 되게 하라. 그럼 같은 것이다." 실제로 가망이 없는 일을 헛되이 시도하며 시간을 낭비하라는 게 아니고, 정말 가치 있는 일, 나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라도 해 내어야 할 일이면 쉽사리 포기 말고 거듭 버티며 시도를 해 보는 게 맞겠죠. 세상 일을 그저 순탄하게 해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책 저자님처럼 이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결국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내고 만 분을 보면 지금 마주하는 사소한 시련도 때로 달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