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일본의 사례, 1945-2012년 ㅣ 메디치 WEA 총서 1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문정인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본디 미국은 일본과 친한 사이였습니다. 물론 페리 제독이 포함 외교를 시도하던 당시 둘은 어느 한쪽의 뭉력 앞에 다른 쪽이 무릎을 꿇던 국면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의 틀이 갖춰진 후에는 영국 측의 친일 기조와 그레이트 게임 양상 때문이었는지 미국도 덩달아 일본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든가 포츠머스 회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루스벨트(TR)가 용인해 줬다든가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의 문구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예 등을 들어 미국의 친일 성향(?)을 매우 크게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종 황제가 예전부터 앵글로색슨과 사이가 극히 나쁘던 러시아에 느닷 기우는 외교를 펼친 것을 계기로 그처럼 악화되었다는 사정이 있으므로 지나치게 우리 입장에서만 서운해할 건 아닙니다. 유능한 외교 정책이었다면 영미에 더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 대미 친분에서 일본을 추월할 생각을 했었어야죠. 러시아와 친한 건 실리 외교이며 미국과 친한 건 사대 굴욕입니까?
여튼 일본은 좀 늦긴 했으나 1차 대전 당시 협상국 측에 적극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1918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대접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이미 1915년에 중국 위안 스카이 정권을 핍박하여 21개조를 관철시키고 독일의 영향권이었던 칭따오 등 산둥 반도 일대를 점령하는 등 구미의 이권(중국 내의)을 크게 침해했습니다. 이러니 미국이나 영국이 오랜 동맹 관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의심의 눈길로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미국은 1930년대 일본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석유 금수 조치(소위 ABCD 포위망)를 단행하는 등 적대 정책으로 본격 돌아섰습니다. 이에 일본은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응수하고 본격 태평양 전쟁을 여는데,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입니다. 일본은 이제 소련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 앞에 놓였고 미국은 태평양 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해야 했으므로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합니다. 이 끈적한(?) 관계는 1980년대에 절정에 달했으며 레이건과 나카소네 사이의 돈독한 유대는 매우 유명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무서운 경제 성장, 수입을 기피하고 오로지 내수 위주로 돌아가는 경제 구조는 미국과 유럽 측에 큰 무역 적자를 안겼으며 이에 G7 중 구미 국가들은 일본에 플라자 협정을 강조합니다. 정치나 군사적 대립은 겉으로 각자의 국가들이 내세우는 가치, 명분과는 거의 무관하게 악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미국은 1980년대 소련보다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더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제2차 태평양전쟁>이라는 책도 당시 나왔던 거죠.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왜 트럼프는 일본측 수뇌부와 회동할 때 그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고도 끝내 일본과 핵심 사항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을까요? 달리 말하면 일본이 절실히 필요할 텐데도 그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일본을 밀어붙였습니다. 이 책은 2013년에 나왔고 지금은 지역안보협력체인 쿼드가 결성된 시점입니다만 여전히 미국과 일본은 사이가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냉전이 종결된 후 일본은 미국에게 최대의 위협으로 떠올랐다." 아니,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구요? 일본은 1980년대에 비해 국력이 크게 쪼그라든 상태인데도요? 답은 경제, 경제에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