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신라의 운명을 바꾼 사람들 - 기로에 선 천년 왕국 신라를 이끌었던 주인공들
이부오 지음 / 역사산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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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외세의 힘을 업고 여제 양국을 멸망시켰으며 나중에 당나라의 뒤통수까지 쳐서 얍삽하게 한반도 남부를 통일했다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 각론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이런 선입견은 그다지 단단한 근거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신라가 어설프게 통일을 자칭했으나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국경 이남조차 제대로 통치 못 하고 군웅, 초적 등의 무리에 휘둘리다 대혼란의 후삼국기를 맞아 갖은 능욕만을 당한 줄 알지만, 적어도 진성여왕 이전까지는 지방에 대한 통제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고 통치술이 뛰어난 군주도 제법 자주 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망하는 게 필연이었던 형편 없는 국가가 결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성덕왕에서 경덕왕에 이르는 시기가 보통 신라의 전성기였다고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에밀레종 등이 모두 이 구간에 만들어진 문화유산이죠. 그런데 경덕왕을 이은 혜공왕이 문재였습니다. 혜공왕에 대해 사서에서는 "행동이 여성스럽고..." 등의 평가를 해 가며 부정적인 인상을 지웁니다. 그런데 물론 오늘날에도 남성이 여성스러운 언행을 하면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겠습니다만 그게 왜 왕으로서 자격을 떨어뜨리는 기준, 혹은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 되는지는 의문이죠. 여성적인 행각을 보인 군주로서 유명한 사람으로는 로마 제국의 헬리오가발루스 같은 이가 있겠는데 이 사람은 정도가 심한 성 도착자로서 혜공왕을 이런 사람한테까지 비교할 건 아니겠습니다. 


선덕왕을 보통 내물왕계가 다시 왕통을 이은 처음 군주로 꼽으며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 군주의 재위기부터 신라 하대의 시작으로 꼽습니다. 선덕왕의 이름(휘)는 김양상이며 이 사람은 즉위시 김경신의 도움을 크게 받았기에 그를 시중으로 삼아 크게 썼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가 유명한데 선덕왕이 승하하자 처음에는 무열왕계로서 더 정통성이 있던 김주원이 왕위를 잇기로 분위기가 모아졌으나 큰 비가 내려 교통이 어려워지고 마침내 김경신이 왕통을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김경신이 바로 원성왕입니다. 


원성왕은 독서삼품과를 시행한 왕으로 유명한데 관직을 객관화한 시험과 실적에 의해 분배하는 건 그만큼 왕권이 강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국사 교과서에서도 그런 취지로 가르치며, 신라 하대라고 하면 벌써 나라가 망조가 든 듯한 선입견이 있으나 벌써 이런 조치만 봐도 왕권의 쇠퇴가 그리 심각한 게 아니었다는 방증인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원성왕은 자녀를 꽤 많이 두었는데 신라 하대의 대혼란은 바로 이 원성왕의 아들, 손자들끼리 벌인 골육상쟁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적정선에서 교통 정리만 잘 이뤄졌다면 오히려 원성왕계라는 새롭고 강력한 왕통 하나가 신라라는 국가를 완전히 중흥시킬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역사란 그저 필연의 정교한 연쇄반응 같아도 사소한 우연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줄기를 정반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 그저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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