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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참모실록 - 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
박기현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우리는 인물의 그릇이라는 걸 종종 평가하곤 합니다. 저 사람은 머리는 좋으나 결국 누군가의 참모밖에 못 될 그릇이라거나, 저 사람은 반드시 사람을 두루 거느리고 큰 일을 해낼 재목이라거나... 그런데 참모라는 게 결코 낮잡아 볼 역할이 아니며, 우리들 대부분은 참모로서나마 누군가에게 유익하게 쓰일 재목도 못 됩니다. 또 <삼국연의> 같은 데서 가장 매혹적으로 등장하는 게 순유, 순욱, 곽가 등 천하의 대세를 읽는 천재 참모들이며 이들의 조언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날고기는 조조라 한들 황조 개창의 대업(찬탈?)을 이뤘을지 의문입니다. 어쨌든 그는 적어도 화북 일대의 통일과 안정을 기하여 많은 백성들의 삶을 윤택, 안정케 한 공이 있습니다.
맹사성은 태종과 세종 두 분 임금을 섬긴 재상이었으며(정확하게는, 재상을 지낸 건 세종 연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참모 하면 바로 떠오르는 벼슬인 승지를 역임한 적은 없습니다. 반면 황희는 태종 밑에서 박석명의 뒤를 이어 도승지를 역임한 바 있습니다. 여튼 저자는 이른바 "킹메이커"라는 관점에서 이들을 참모의 부류에 넣고 있죠. 맹사성은 특히 고려-조선 교체기에 활동한 인물이므로 이렇게 평가될 소지가 충분합니다.
오리 이원익은 아주 키가 작았다고 하죠. 청렴했던 재상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가 조선 시대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하면 대개 공부만 한 분들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원익은 한문에만 능했던 것이 아니라 입으로 말하는 중국어 회화에도 달통하여 따로 밑에 실무자를 둘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높은 사람은 이 정도가 되어야 하며 세부 사항을 아랫사람에게만 맡기는 지도자는 결국 패착을 저지르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으나 서애 류성룡이나 범옹 신숙주 등도 그 인품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실무"에 대단히 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 시험 자체가 시무(時務)에 대한 주제를 주고 논술하게 하는 시험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장곡 김육은 대동법을 시행하려 평생을 헌신한 재상으로 유명합니다. 원래 공납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백성의 의무로서 본래의 뜻은 그 지역에 흔한 산물을 바침으로써 조세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이었으나 이것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완전히 변질되어 버립니다. 악덕 상인들이 농간을 부려 물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백성의 고혈을 빠는 수단으로 떨어집니다. 이걸 두고 김육은 미곡으로 일원화하여 납부하게 하였으며 그것도 인두세나 호구 징세 방식이 아닌 토지세 형식으로의 전환까지 꾀했습니다. 자연 반발이 거세게 일었으며 대동법이 정착하기까지는 무려 한 세기가 걸렸으나 그렇게나마 제도로 자리잡은 데에는 장곡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또한 한국 최고 명문 성씨인 청풍 김문의 큰 어른이기도 하며 이 가문에서 나중에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가 나옵니다. 다만 이분은 성정이 드세어 그 유명한 "대비를 조관하라"는 윤휴의 상소가 나오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