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상수록
이항로 지음, 강필선 옮김 / 문사철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항로 선생은 우리나라 위정척사학파의 거두이며, 특히 흥선대원군 집정기에 양이(洋夷)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주장하여 전국 유림의 큰 공감과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의 학설이 주리론(主理論), 이원론 계열이기에 혹시 퇴계나 남명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까 착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엄연히 노론계입니다. 그의 근거지도 경기지방이었기에 기호학파의 큰 맥을 따르는 분으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인이라고 해서 다 천주교를 신봉한 건 아니었으나 이항로의 당색은 노론이었기에 남인세력과 상당 부분 연계된 천주학 세력에 대해 그가 유독 단호한 태도를 취했던 건 그의 입장에서 보아 당연한 스탠스입니다. 


역자 강필선 박사는 특히 이 화서 이항로의 학문 세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분으로서 이 분야 최고 권위자라 할 만합니다. 특히 저자는 이항로의 모화사상, 명분론을 그저 맹목적으로 사대(事大)하는 무리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입장과는 크게 차이난다고 규명하였으며, 우리가 구한말 유림 유생이라고 하면 변화하는 세태에 무작정 눈을 감고 청나라를 숭배하며 서양 문명을 배척하는 꽉 막힌 무리들이라 여기는 선입견에 대해 정면 도전하는 입장입니다. 


한국의 성리학은 조선 중기부터 크게 퇴계의 주리론 이원론 계열과 율곡의 주기론 일원론 계열로 나뉩니다. 리(理)와 기(氣)가 서로 분별되며, 따라서 군주와 신하의 법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면이 있으며 신하는 군주에 대해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게 대체로 조선 주리론 계열의 결론입니다. "근본적으로 둘이 다른 면이 있기에" 리와 기를 많이 구별한다는 점에서 이원론입니다. 반면 율곡 계열은 기(氣)를 보다 중시하며 유학이 불가 등과 근본적으로 차이 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만약 지나치게 리를 중시하면 결국 불가 등과 차이가 없는, 주관적 관념론으로 흐르게 된다는 게 주된 입장입니다. 율곡이 기호학파를 이끌었으며 퇴계는 나중에 남인이 주가 되는 영남학파 계열입니다. 


양측이 이런 입장이었기에 현종 때 벌어진 예송에서 송시열 등은 임금의 도와 사대부의 예가 다를 바 없다 하여 기년복(1차 기해), 대공복(2차 갑인)을 각각 주장했고, 남인 측은 참최복과 기년복을 각각 주장하여 공방을 주고받았습니다. 또 회니시비가 숙종 연간에 일어나며, 나중에 나오 인물성동이론 논쟁 역시 비록 노론 내부에서 분화된 다툼이긴 하나 근원적으로는 이원론과 일원론 사이의 대립입니다. 조선 유학의 막을 내리게 되는 중요한 시기에 화서 같은 천재, 거인이 나타나 학문적으로 뚜렷한 입장을 남기고 간 건 어찌 보면 대단한 행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