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이 올 거야 - 나는 어디쯤 닿아있을까, 청춘 스탠딩 에세이
차영남 지음 / 알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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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시간은 고달프고 험하지만 그 과실은 달콤합니다. 이 책에는 차영남 저자께서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고달프지만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청년 세대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많은 유익한 조언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강연장(p49)에서 꼰대처럼 이런저런 충고를 하기보다 그냥 질문을 받으려고 했던 저자에게 학생들도 뻔한 질문만 해 댔고 저자 역시 뻔한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처럼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청중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1도 안 남기는 털털한 저자께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뒤에 꺼낼지 무척 궁금해지곤 합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보기엔 평범한 질문, 아니 솔직히 말해 "성공한 배우"에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질문 같은데 저자께서는 "학생들이, 내 생활이 어려운가 보다 하고 짐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긴 말하는 사람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는 현장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답이, 제가 읽기엔 참 좋았습니다. 인생의 답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게 아닙니다. 되지도 않는 일을 지저분하게, 연명이나 하듯 질질 끄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게 안 되면 죽고 말겠다며 뭘 극단으로 끌고 가는 것 또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겠지요. 내가 아주 특출한 재주를 타고난 건 아니지만, 반대로 그럭저럭 현상 유지는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직분 역시 좋은 것 아닌가, 하루하루를 보람 되게 이어 주는 현재의 일에 감사한다는 말, 어쩌면 그 현장에 있던 모든 배우 지망생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답이 되어 준 말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조연 연기자들 없으면 드라마가 안 만들어집니다. 트롯 가수 장민호씨도 단역만 전전하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저처럼 스타가 되었습니다. 어떤 조연은 드라마에 비추는 시간이 일 분도 안 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참 열심히도 연기합니다. 커피숍에서 싸우는 주연들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역, 과장이 뭘 물어 보면 쭈뼛거리며 답하는 역 등 우리가 기억조차 못하는 단역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혹 성공을 못하고 평생 단역만 한다 해도 쓸모없는 자원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다 패배자로 남는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 현장 하나에 자신의 명예,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 어떻게 하루를 넘기려는 태도는 스스로도 부끄럽고 보는 것도 괴롭다(p76)."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 그 작은 모니터 앞에서 좋네 마네 아쉽네를 논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던 시간..." 우리가 하는 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기를 쓰고 오버해 봐야 누가 알아 주지도 않지만, 이걸 대충 하면 그 순간 조직은 쓰레기가 되기 시작하고 일은 꼬이며 망쳐집니다. 대충 시간만 때우고 페이를 받아 가는 사람이 남는 장사 했다며 뿌듯해하는 꼴만 안 봐도 이 사회는 훨씬 살 만한 곳이 됩니다. 


저자는 군에서 정훈병이었기에 책 읽을 시간도 많았고 비교적 편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산대로 말한다"는 표현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p38)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겪은 일 몇 십 배를 뻥튀기해서 떠드는 게 습관이 된 이들이 많죠. 저자 역시 강연장에서 학생들을 앞에 놓고 부풀린 너스레를 떨며 호응을 얻어낼 수도 있었겠으나 그러지 않고 보다 진실된 소통을 원했던 것 아니었겠습니까. 


이 책에는 저자의 진실된 고백이 참 많으며, 뜻하지 않게 긴 시간을 이른바 "백수"로 보내는 이들에게 공감이 갈 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요즘은 사회가 워낙 빈틈없이 작동하다 보니 남들 일할 때 일하지 않고(못하고) 시간만 보내게 되는 청년들이 많죠. 그런 청년들도 눈치가 보여서인지, 혹은 그 시간에 열심히 성찰을 해서인지 기발한 생각 혹은 심오한 깨달음 같은 걸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자책이나 열패감에 시달리는 시간이 더 길 것입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백수 생활을 즐기라는 게 아니라) 기왕 그렇게 된 것 재도약을 위해 치열하게 반성하고 착실한 준비를 할 수만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p92에 보면 자신을 무시하던 어느 연출자에게 저자는 "유명한 감독님들에게 지금 당장 전화해서 나랑은 절대 작업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왜 안 하세요?"라고 쏘아붙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재치도 있거니와 의기소침했을 현장에서 바로 이런 대응 방법이 나오는 걸 보면 그 내공도 상당하신 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상처를 입었고 모멸감을 느끼셨겠습니까만, 이런 식으로 자존을 지키기도 하며, 자격 없는 자들이 함부로 타인을 대하며 나쁜 기운을 전파(?)하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낫죠. 아마 그 양반도 당시 혼쭐이 났지 싶습니다. 


"나는 현명한 선택과 판단으로 삼십대를 잘 꾸려갈 수 있을까. 소유와 존재의 균형은 계속 변해가고 그 가운데에 선 나는 긾은 고민에 빠진다(p160)." 이런 고민은 사실 우리 누구나 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주하곤 합니다. 청년들은 쓸데없는 자학과 좌절에 빠지지 말고 건설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한 후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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