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 복지국가 스웨덴은 왜 실패하고 있는가
박지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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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러 나라들의 놀라운 복지 수준은 그간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개발 독재 시대에는 한국도 어서 노력해서 저런 공동체의 본을 받아야 한다고들 했다고 하죠. 그런데 그 실상을 알고 보면, 반드시 훌륭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런 유형의 사회로 전면 이행한다고 할 때 한국인들의 전폭적 동의가 과연 가능할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많은 숙고와 토의가 뒤따라야 할 그런 이슈 같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올바른 근로 윤리를 지닌 이들조차 시간이 흘러 고복지 체계에 익숙해지면 도덕적 해이에 바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p56)." 도덕적 해이도 물론 문제이겠거니와, 사람의 능력은 그것을 계발하고자 하는 절박한 의지가 있을 때 제 모습을 (힘들게) 찾곤 합니다.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적성이 잘 다듬어진다는 반론도 가능하나, 사람은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일도 그저 부러운 마음이나 허영심, 잘못된 자아상, 착각 등 때문에 시도하다 결국 실패하곤 하는데 이런 비용도 사회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면 그것도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 뮤지션, 프로야구 1군 선수 등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정도는 되어 보고 싶어하는데 과연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해낼 만한 자질을 타고나는 이들이 오천만 중 몇이나 될까요. 2군에서 고생고생하는 이들도 청소년기에 다 천재 소리를 들었으나 성인이 되어 정규 리그에 올라오면(그 전에, 구단에 지명되는 일 자체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공에 손 한 번 못 대어 볼 만큼 기량 차가 큽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간 노력을 게을리했겠습니까, 그렇다고 절실함이 부족했겠습니까. 안 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복지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무임승차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밝혀낸 여러 역설 중 하나이며, 시장이 만능이고 효율적이라는 가정에 대한 가장 유력한 반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물며 제도로서 복지 배분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면 그 부작용은 상상이 안 될 정도이겠죠. 이어서 책은 핀란드에서 최근 시행된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판을 가합니다. 모든 곳이 다 그렇지는 않으나, 적어도 핀란드의 경우 그간 시행되던 복지제도가 모두 폐지된 후 기본소득이 시행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할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책은 말합니다. 찬반을 떠나서 기본소득제를 한국에서 시행하려면 그 준비 작업이 상상을 초월하리라는 점 다시 생각해 봅니다. 


스웨덴의 어느 젊은이는 교환학생으로 한국 모 명문대에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주던" 사회 분위기에 대해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스웨덴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스웨덴은 지형이나 기후 등의 조건이, 그 나라가 처음부터 보유한 자원과 산업 구조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이며 이런 나라에서는 각자가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일하기보다 그저 주어진 역할에 "남들만큼만" 충실한 게 훨씬 바람직합니다.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가 모두 망한 지금 오히려 스칸디나비아 인근 3국만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는데, 이들 나라가 냉전 체제 당시 큰 말썽 없이 살아남은 것도 어쩌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습니다. 애초부터 사회 분위기 자체가 공산주의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던 거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에서는 de 같은 접두어가 성 앞에 붙는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의 출신이 귀족인지 바로 신뢰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한국도 현재 본관이나 족보 없는 사람이 없지만 과연 액면대로 누구나 양반가의 혈통인지는 여러 모로 의심스럽죠. 스웨덴은 귀족 아닌 사람이 귀족 성싸를 쓰는 게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귀족은 귀족만의 거주지에 확고한 장벽을 치다시피하고 살며 평민들과의 삶이 완전히 구별됩니다. 한국도 물론 비슷한 면이 있으나 이런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것도 어찌보면 한순간이며 자신의 부가 그 직계혈족에 바로 세습되거나 법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다릅니다. 상속세율도 엄청나며 바로 자녀 대에 서민으로 떨어지는 게 부지기수죠. 


이와 관련 책 저 뒤 p207 이하에 보면 스웨덴 기업은 아예 상속세라는 게 없기에 총수가 탈세로 구속되고 사회적 지탄을 받고 할 여지도 없습니다. "착한 기업" 역시 허상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비판이나 단 저자는 이 대목에서 마냥 한국의 재벌에 온갖 규제 철폐 등 특혜를 주자는 주장에도 역시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한국의 재벌은 구조적으로 역사적으로 다른 문제점이나 특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스웨덴 등의 복지체계를 주로 진보진영에서 지지하는 편이나, 스웨덴 등에서 자국에 노동이민을 온 소수자에 대한 차별상은 실로 목불인견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스웨덴 등에서 존중해 온 가치는 관용과 타협, 평등 등입니다만 이민자의 수가 늘고 이들의 가치관이 스웨덴 전통의 관념과 충돌하기 시작하자 스웨덴인들 사이에서 극우정당 등이 새로이 발호할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물론 차별적 구호와 혐오 선동은 주로 극우정당의 소행입니다. 그러나 극우정당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일반 대중 사이에 이런 뚜렷한 움직임이 있었기에 극우정당도 없던 게 새로 생긴 거죠. 이는 결국 기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못 한 소치입니다. 


한국의 문화와 우수한 제품이 세계를 휩쓰는 시대이지만 스웨덴인들은 아직도 Korea라고 하면 대뜸 북한을 떠올리기에 현지 거주 한인들의 우편물이 북으로 발송되는 촌극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아직도 스웨덴인들이 세계화의 추세에 뒤떨어지는 면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한국인 등 이민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종사해야 하는 직업이 따로 있는" 엄연한 차별이 지배합니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평등사회"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죠. 이민자는 이민자대로, 스웨덴 토종 백인들은 (일부이기는 하나) 그들대로 불만이 팽배한 것입니다. 


책에는 "무상의료국가에서 코로나 사망률이 더 높았던 이유"를 조목조목 짚습니다. 물론 무상의료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먼 미국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의료 서비스만큼은 남다른 줄 알았던 스웨덴에서 그토록 부실한 대처에 머물렀던 건 충격입니다. 사실 스웨덴은 놀랍게도 "자연면역"을 추구하여 당국이 초기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지금 보면 미친 짓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데 이 역시 그 사회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어느 사회건 단점도 있고 배워야 할 점도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건, 무엇 하나를 절대선으로 보고 무작정 따라하려는 무모한 시도입니다. 배워야 할 건 당연히 두려워말고 배워야 하겠으며 그것이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나라가 남다른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장점을 그 와중에서 잃는다면 이는 애초에 시도 안 함만 같지 못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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