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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자
귀곡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평점 :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고 신동준 씨의 책은 읽고 독후감을 남긴 게 두 건(件) 정도였습니다. 15기 41주차, 그리고 16기 37주차였는데... 신동준 저자는 그 독특한 박식함과 중국 저작을 광범위하게 참조하는 능력이 돋보이죠. 뭐니뭐니해도 현대 중국 연구진이 새로이 추가한 연구성과를 널리 읽고 이를 자신의 저술에 인용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가 능력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신동준 저자는 엄청난 수의 책을 남겼으며, 이 이유 때문에 요즘 독자들 중 그의 이름을 못 들어 보거나 한 권 정도의 저서를 안 읽어 본 사람이 거의 없지 싶습니다.
이 고전에 수록된 여러 이야기는 정사와 기타 저작들에도 적힌 게 많아서 이야기의 큰 줄기에만 주목하자면 아마 많은 독자들의 눈에 익은 게 많을 겁니다. 제1 벽합 편에 보면 종횡가 중 한 명인 장의, 그리고 범수가 다뤄집니다. 범수는 사마천의 사기에 <범수 채택 열전>의 메인 주인공으로서 유명하며 두 사람 다 젊은 시절 입신하기까지 엄청난 신산함을 겪은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제2편은 "반응"인데, 요즘 쓰는 한자어와 표기는 같아도 뜻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장량과 역이기의 왕패도를 다루는데, 왕패도는 왕도와 패도를 함께 이름입니다. 예전에 국무총리를 지냈던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은 1990년대 초반 김영삼과 정치 투쟁을 벌이면서 상대의 스타일을 "패도 정치"라며 비난한 적 있죠. 뭐 그렇다고 본인의 방식을 왕도로 평가한 건 아닌 듯도 합니다만 지나친 구태와 술수 위주의 정치는 패도 정치 축에도 못 끼는 악질의 정치임이 분명합니다. 역이기는 그 食이라는 글자를 "이"라는 음으로 읽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조나라의 염파 장군은 6편에 나옵니다. 5대 십국 중 중원의 두번째 왕조를 연 후당은 그 도읍지가 타이위안, 즉 태원인데 군벌 이극용, 이존욱 부자가 세운 나라입니다. 타이위안은 진양이라고도 불렸으며 진(晉)이 한위조 삼국으로 쪼개졌을 때 조나라의 중심지 중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또 진(晉)의 옛 명칭이 당(唐)이므로 여러 모로 잘 통하는 국명이자 도시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염파 장군은 물론 명장이었지만 성정이 급해서 처세술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치적으로 컴백에 성공하자 그를 한때 떠났던 이들이 돌아왔는데 크게 노해 다들 나가라고 꾸짖자 손님 중 한 사람이 세상 이치가 본래 그런 것을 어찌 이리 융통성 없이 구느냐면서 책망한 고사가 유명헙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제나라의 맹상군이 식객들을 크게 나무라려고 하자 그의 책사 풍환이 "사람들이 세와 이를 좇는 건 시장에 동이 트면 사람이 모여들다 날이 저물면 떠나는 것과 같을 뿐"이라며 타이르는 장면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사마천의 사기 중 열전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