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빅터 프랭클 지음, 박상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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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아무런 희망이란 게 남아 있지 않은 극한 상황에서 그 부친이 아들을 안심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여유는 이 책 p38 같은 곳에서 드러납니다. 


"생각해 보니 청어 한 마리가 1페니히인데 버리는 대가리를 열 배인 1마르크나 받아?" "아, 벌써 당신의 머리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군요!" 


진즉에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했다가 이미 거래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부조리를 지적하는 것도 우습고, 여튼 사전에 말한 대로 효능(?)이 증명되지 않았냐는 너스레에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 전환이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의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도 결국은 사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용이 중요하다는 불가사의한 이치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유머입니다. 어디 이 이야기 속의 멍청한 독일 군인뿐이겠습니까. 우리들도 이 순간 말도안되는 엉터리에다 돈을 쓰고 혼자 바보처럼 만족 중인지도 모르죠. 


여튼 이처럼 유머는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의 부조리를 달관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한편으로 유대인들이 떠돌이 소수파로 수천 년을 버텼던 비결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우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대전 중 유대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수용소에서의 극적인 체험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첫째 정체성은 빼어난 정신분석학자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생전의 지크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기도 했던... 이 책은 결코 어둡지 않고, 희망과 긍정의 기운이 가득한 내러티브로 채워지는데, 그 중에서도 빅터 프랭클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자신의 설명이 p62부터 이어집니다. 독자와 쉬운 소통을 하기로 작정이나 한듯 직관적이고 유쾌한 말투입니다. 


p72에서는 특히, 각주 17과 18을 통해 저자가 직접 자세한 설명을 해 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지나치게 가볍게 읽어낼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데, 유쾌하면서도 이처럼 느닷 학술서적처럼 진지한 모드로 변하기도 합니다. 여튼 독자로서는 뜻하지 않게 권위자로부터 쉽고 명쾌한 레슨 하나를 듣는 셈이라서 행운입니다. 


사람은 왜 나이가 들어도 원숙하고 성숙해지기보다 p58에 나오는 어느 학자의 따님처럼 이런저런 불안과 신경증 같은 걸 정신에 더 붙이고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이트도 처음에 이런저런 임상에서 환자를 특별히 낫게 하는 그 기술로 이름을 알렸듯, 일류는 이처럼 현실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과제도 잘 해결한다는 게 또하나의 특징입니다. "나는 평생 심리치료와 신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p62)." 이 짧은 문장에 그의 삶과 철학이 잘 요약되어 있죠. 


스페인도 레콩키스타가 완성된 후 유대인을 대거 추방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던 인구 집단인지라 그 빈자리를 다른 누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는 겁니다. p93에서 저자는 대전 당시 유대인 의사들을 갑자기 쫓아내자 "초짜(원문 그대로입니다)" 독일 의사들이 투입되었고 이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나중에 살아나는(?) 웃지 못할 소동이 빈발했다는 겁니다. 간질병 환자에게 바른 약을 투약했더니 갑자기 히틀러를 욕하기 시작해서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부득이 처방을 중지했다는 회고도 있는데 이게 과연 사실인지 유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머라고 해도 뭐 뜻깊긴 합니다만. 


p115 이하에는 저자가 직접 겪었고 또 우리가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일부를 접하기도 했던 아우슈비츠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자의 마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p115의 각주 19는 또 본문보다 더 길어지는 내용인데 왜 저자가 이 대목을 각주로 처리했을지도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p120에는 우연한, 정말 우연한 사건 덕에 저자가 가스실 직행을 면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주보다 귀하다는 사람의 생명이 이런 일로 장난처럼 구해지며, 반대로 누군가는 졸지에 운명이 바뀌어 죽음을 맞는 허무한 순간이 되죠. 


빅터 프랭클의 책들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책 후반부에는 그 책들에 대한 회고가 다시 펼쳐지며, 그렇기에 이 책은 책들에 대한 책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쓰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여러 대답을 내놓으나 그 중 우리가 오래 기억할 만한 하나는 저 죽음의 대열에서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대신 목숨을 건진 그 보람을 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조상들 중 저 비슷한 시기 누군가는 태평양 전쟁의 징용, 징병 같은 지옥에서 누구 대신으로 목숨을 건졌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단 일 분의 삶도 허투루할 수 없는 또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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