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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 오브 매직 : 마법 한 줌 ㅣ 핀치 오브 매직 1
미셀 해리슨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2년 1월
평점 :
저주를 받았다는 건 어쩌면, 아주 평범한 생이 내리는 형벌인 지루함, 반복, 무의미의 덫에서는 벗어났다는 점에서, 또 그 저주를 풀어낼 시 보상이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축복의 다른 말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 두꺼운 아동 문학을 읽고서 베티 위더신즈네 세 자매(플리스와 찰리)의 모험담을 따라가는 동안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베티뿐 아니라 요즘 아동문학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설령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을 깨닫는 순간이라 해도 정절망하지 않고 침착할 뿐 아니라 때로 상황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제가 어려서 본 <나자리노>에서 젊은 주인공은 운명의 여인을 만났을 때 자리에서 얼어붙듯 동작, 시선, 표정, 생각 등 모든 것을 멈춥니다. 영화 통틀어서 이 장면이 가장 슬픈데 저주받은 청년은 그 사랑스러운 여자를 애초에 만나지 말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불행의 저주가 휩싸고 도는데 애꿎은 여인까지 뭐하러 저주의 여정에 동참시키겠습니까. 그런데 그건 옛날 영화일 뿐이며 이 이야기에서의 베티는 전혀 그런 머뭇거림이 없이 경쾌합니다. 오히려 무대를 깔아줘서 고맙다는 투입니다. 두 여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저씨가 내 처지를 알면...(p130)" 그런 한가한 소리를 안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세이머스 핑거티라는 아일랜드식 이름을 한 어떤 "한물간" 아저씨는 그러잖아도 어려운 상황을 더욱 가망 없이 만드는 데 일조하는 듯합니다. 여튼 수십 명에게 자유를 찾아 주었다는 죄목으로 영어의 신세가 된 그는 (독자의 눈에) 실상 베티와 그 자매들이 뒤집어쓴 저주의 사슬이 얼마나 만만찮은 두께와 무게인지 새삼 확인 도장이나 찍어 주는 듯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시련과 문제 풀이의 연속입니다. 누구에게나 말이죠. 저 앞 p104에서도 콜턴은 플리스와 베티를 시험하지 않았습니까.
"버니 할머니도 이걸 노래라고 보나?(p154)" "그래도 노래가 효과는 있었잖아.(p155)" 이 대목에서 역시 그 탑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게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베티 등은 특히 여기서 중요한 말을 하는데, "비록 희망 사항에 그칠 수도 있지만 (지금 자신들이) 뭔가 중요한 사실을 알기 직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죠. 세상사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풀기 어렵고 난감한 순간이 다가왔을 때 쓸데없이 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문만 잘 열면 그때부터 새로운 세상, 적어도 어떤 단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저앉으면 저주는 일평생 그대로 따라다닐 겁니다. 도전해 볼만한 유인도 동기도 충분합니다. 공정한 게임이라면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끔찍한(?) 노래의 효과에 대해서는 저 뒤 p371에서 다시 한 마디가 나옵니다.
어쩌면 부적응자들에게는 자유가 박탈되고 일정한 통제, 예측 가능성 하에서 살아가는 감옥이 더 제격일 수 있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죠. 드디어 자유를 찾은 콜턴은 말합니다. "감옥 밖이 얼마나 광활한지 잊고 있었어.(p197)" 사실 감옥 밖에서 내내 산 우리들도 이 점은 잊기 일쑤이니 콜턴을 탓할 일도 아닙니다. 감옥에 갇히지 않아도 일정 범위 안에서 나올 줄 모르는 자발적 수인(囚人)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인 저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중 소샤가 좀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머지 애들도 매력적이고 용기와 낙천성이 대단하지만 소샤 특유의 쿨함과 약간 멍청한 듯 안정감 있는 감정선(p276이라든가 p323에서처럼)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엄마하고 알고 보면 가장 잘 통하는 애도 따지고 보면 얘 아닐까요? 전 적어도 그리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 같은 꼬맹이도 날 도와줬는데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p361)." 이래서 인간, 혹은 무엇이든가와의 관계는 보람 없이 묻히거나 썩어 버리지 않고 환하게 꽃이 피기도 합니다. 너무 늦었을까요? 미안할까요?(p393) 그 리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세상은 공평(p406)합니다. 여러 경로로 결국은 그렇게 됩니다. "베티는 담대한 자였다. 특히 언니 동생과 함께라면(p420)" 이게 저주를 깬 대가입니다. 우리도 거울(p421)을 한번 보고 무엇이 우리 발목을 잡는지, 왜 대담하게 이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지 생각 좀 해봅시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