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구가 기가 막혀! - 야구광도 몰랐던, 너무나도 재미있는 야구 이야기
기영노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 기영노씨는 야구뿐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스포츠 전문가 중 한 사람입니다.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여 특유의 통찰을 보여 주곤 하죠.
"괴물 투수들의 포스트시즌 징크스"가 나오는데 선동렬의 경우 과거 고질인 손가락 물집으로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등판할 수 없었으나 위력 시위용으로 불펜에서 몸을 풀었는데 이를 보고 지레 겁을 먹은 상대팀 백전노장 가네히코... 아니 김영덕 감독과 선수들이 전의를 상실했다고도 하죠. 이런 일도 있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의 김용철(롯데에서 이적)에게 홈런을 맞고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슈퍼베이비" 박동희는 정규시즌에서 부진하다가도 포스트시즌에서는 그의 포텐이 다 발휘되는 위압적 피칭을 구사하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도 1990년대 초반에 했으나 책에는 "마누라 자식도 못 믿는다"는 재미있는 아티클이 나옵니다. 기영노 저자 특유의 입담이 돋보입니다.
장호연은 마치 지금의 유희관처럼 구속이 느린 투수였으나 제구력이 일품이었고 타자들과의 수싸움에 능했습니다. 투수가 반드시 강속구로 승부 보는 건 아니라는 관점을 팬들에게 깊이 심어 준 선수였습니다. 다만 요즘은 야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구속은 느리고 제구만 좋으면 빅리그에서 안 통한다는 상식이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이번 도쿄 올림픽 때 우리 타자나 투수나 모두 해외의 선수들한테 고전했습니다.
고 김동엽 씨는 김응룡 감독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야구 선배이고 경력도 화려한 인물이었습니다. 특유의 감정적인 반골 기질 때문에 지도자 생활을 오래하지 못한 게 그 자신에게나 팬들에게나 큰 아쉬움으로 남죠.
책에서는 양준혁을 "원조 괴물"로 회상하는데 확실히 1993년 데뷔 당시 1년을 묵힌 대졸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쳤다하면 홈런, 빚맞으면 안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단한 실력, 장타력과 정교함을 겸비한 완성형 루키였음이 분명합니다. 윤동균과 장채근, 이대호를 비교하는 대목도 있는데 이 세 사람은 체구가 비슷할 뿐 활동시기도 다르며 포지션도 심지어 다릅니다. 장은 포수, 이는 내야수, 윤은 외야수로 주로 뛰었으니 말입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둔 최동원을 물리치고 시리즈 MVP를 받은 유두열을 두고 당대에는 사실 큰 논란이 일지는 않았습니다. 7차전에서 원체 전력도 열세였고 최동원 말고는 믿고 내세울 투수가 없던 롯데가 열세였는데 유두열의 3점 홈런 한 방 덕택에 게임의 향방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최동원이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결국 그 한 방이 아니었으면 졌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는데 요즘은 스탯을 중시하는 풍조이므로 시리즈나 정규리그에서나 극심한 부진을 보인 유두열이 최동원을 밀어낸 게 다들 말이 안 된다고 여겨서겠지요. 물론 당시에도 최동원이 최고 수훈자라는 대중의 여론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고 아마 기자들이 보기에 유두열의 임팩트가 더 강했던 듯합니다. 이 책이 쓰일 때에는 최동원 씨가 아직 생존하여 한화 코칭스탭으로 있었을 시절입니다.
백인천 전 감독은 LG에서 기어이 우승을 일궜고 원년 그 전신인 MBC 청룡에서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올린 지도자였고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타격 인스트럭터로 부임하여 이후 우용득 당시 감독을 대체했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전병호 사건으로 기어이 하차하고 이때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백 감독은 선수들 타격 폼 지도를 너무 일률적으로 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하나 잭팟이 터진 경우가 이승엽이었습니다. 백인천 본인이야 일본에서 타격왕을 했을 만큼 레전드였으나 지도자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성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