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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학파의 서예가 이광사 - 유배지에서 원교체를 완성하다 ㅣ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4
이진선 지음 / 한길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이광사는 "동국진체(東國眞體)"로 유명한 서예가입니다. 이광사 본인은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가 활동하던 무렵에는 소속 당색인 소론이 이미 재기의 여지가 거의 없이 몰락해 있던 상태였습니다. 대체로 후세에 그 명필이나 그림만 남은 사족 출신 문인들에게는 이런 사연이 공통으로 숨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경종이 아무래도 친 노론 성향을 보일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던 데다, 결정적으로 신임옥사 때 노론 4대신을 도륙하는 등 뜻밖의 과단성 있는 조치를 함으로써 정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뜻밖의 조치였다고는 하나 명분과 시의성이 있었으므로 노론 측에서 제대로 반발하지 못했으며 사실 이 큰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정치 지평이 재편될지 알 수 없는 상황까지도 갔었습니다.
그러나 경종의 행보는 대체로 거기까지였고 그의 붕어에 따라 영조가 즉위함으로써 노론 측은 다시 탄탄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조 역시 일반의 선입견과는 달리 노론 편애 군주만은 아니었고 일색당파로정관계가 채워지면 군주에게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론 급진파가 연이어 자충수를 둔 까닭에 18세기는 노론 독주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다만 영정조 두 군주의 개인적 성향과 자질 때문에 일당 독재로까지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의 최명길은 서인이었는데도 양명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일찍이 명대에 양명학이 주류로 부상한 걸 감안하면 반도에서의 학문적 유행은 뭔가 시대에 뒤처진 바 없지 않습니다. 소론이 본격적으로 몰락하고 나서 정제두 등을 중심으로 강화학파가 형성되었고 다만 일찍이 윤증 등이 사문난적으로 몰린 적 있었기에 그 움직임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이광사는 우리가 동국진체를 완성한 서예가로만 알지만 이 책은 강화학파 학맥의 한 중심으로서 그를 조명합니다. 앞서 오주석 저자의 책을 리뷰하며 윤두서를 언급했는데 윤두서 역시 동국진체의 큰 줄기 중 한 분입니다. 이광사는 글씨 자체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신의 화통함, 호연지기 등을 강조했는데 이 대목에서 조선 선비들이 그저 기예의 완성도만 따진 게 아니고(그런 건 애초에 큰 의미가 없죠), 단지 기술자의 레벨에 머물지 않고 글씨를 통해 화통함과 기백을 드러내는 마음가짐과 수련의 경지 같은 걸 더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광사뿐 아니라 모든 선비의 공감대가 자리하는 부분입니다.
이광사의 아들이 조선 야사의 집대성 문헌인 <연려실기술> 저자인 이긍익입니다. 연려실이라는 당호도 부친인 그가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