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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너이지만 안아주고 싶어
피지구팔 지음 / 이노북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삶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면 자세가 비뚤어진 줄도 모르고 지내지만 누군가한테 지적을 받은 후에야 흠칫 놀라고 바로잡으려 듭니다. 그런데 이미 그리 자세가 굳어서인지 잘 교정이 안 되고, 나만 모르지 누군가는 내 비뚤어진 자세를 보고 흉을 잡겠거니 생각하면 마음도 우울해지고 자신감도 빠집니다. 그런데 이 책 p30에서는 괜히 기 죽을 필요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누구나 조금씩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묘한 건 거울을 봐도 내가 기울어진 건 잘 안 보이는데 남의 나쁜 자세는 귀신같이 캐치된다는 겁니다. p31의, 작가가 직접 그리셨다는 일러스트를 보면 어떤 교복 입은 여학생 같아 보이는 이가 웃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재미있어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마음이 놓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이 편해서 웃는 웃음은 누가 봐도 누가 웃어도 좋습니다.

"여태 나를 짓누르는 돌인 줄 알았는데 그냥 털어내면 끝인 가벼운 모래일 뿐이었다.(p26)" 그래서 사람은 고장난 냉장고 안에 갇혀서도 얼어죽곤 하나 봅니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는 법이라 썩은 해골물을 마시고도 오장육부가 정화되는 듯 시원해하기도 합니다. 모래가 모래인 줄 알고서야 그게 가볍게 느껴집니다. 오른쪽 그 여성의 웃음은 이번에는 뭔가 통쾌하게 보입니다. 어떤 타인의 (보잘것없는) 실체를 알고 후련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p31에서보다는 약간 악의 같은 게 셖인 듯도 합니다.
초심자인데도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저맘때는 못 저랬었는데 생각하면 좀 속상하기도 하고 약간 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 역시, 다른 후배나 상관에게 그리 보이지 않았을까요? 부족하다 아쉽다 하는 포인트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별로 의식하지 않던 나의 장점이 다른 이들에게 크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이고 내일이고 우리가 다 처음 살아 보는 하루인데 어떻게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p20)" 거울을 보는 여성의 표정이 "에이, 사소한 건 잊자"며 뭔가를 툴툴 털어내려는 듯, 그러면서도 약간은 멋쩍은 듯 보입니다.
p10의 "두려워하지 말자"도 이것과 약간 통하는 메시지입니다. 특히 뭘 두려워하지 말자는 거냐면, "넘어지는 것", "천천히 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경쟁이 치열해서 남들 앞에서 뭔가 좌절하는 걸 특히 무서워합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를 해도 남 모르게 하는 실수면 별로 무섭지가 않은데 말입니다. 경쟁에서 남보다 처지는 건 너무도 싫습니다. 오히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진짜 마음 깊은 곳에 남겨 둔 꿈을 실현하려 노력 못 한다면 그거야말로 두려운 일입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밝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걸어가는 분의 전신샷이 인상적입니다. "뭐 별 것 있겠어?"라고나 하듯.
하지만 너무 꿈이 먼 곳에만 치우쳐서 정작 가까운 행복을 잊고 산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맞아, 그걸 잊었었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p51)입니다. 사람이란 당장 천 길 벼랑 밑에 떨어질 듯한 위기에 처해서도 눈 앞에 맺힌 딸기의 달콤한 맛 덕분에 무서움을 잊는 동물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지금의 이 맛을 놓친다면 그 역시 인생을 누리지 못한 죄를 짓는 행동이며 절대자는 아마 그런 사람에게 튼튼한 동앗줄을 내려 구원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이웃들, 지인들, 가족들에게 잘하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런 내 주변의 고마운 이들에게 "사랑해"라는 말 한 마디를 건네면(p138), 나도 행복해지고 모두가 만족할 것 같습니다. 옆 페이지 일러스트 중 여성 얼굴에 주근깨인지 혹은 행복감의 폭발인지 무엇인가가 발그레한 색깔과 함께 가득해집니다. 부끄러운 마음도 크고 사실 좀 가벼워 보이기도 해서 쉽게는 하지 못할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은, 말하는 사람 본인이 더 행복해지는 마법의 주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원치 않았던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쿨하게 보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보낼 때 중요한 건 내 기분이 정말로 쿨해져야 한다는 거죠. 쿨한 건 그리 가장한다고 쿨해 보이지 않고 미묘하게(혹은 대놓고) 표시가 납니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가 설렐 수 있어서 좋았어(p160)." 말은 이렇게 합니다만 속은 속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 p161에 보면 여성의 표정은 정말로 쿨합니다. 정성껏 무엇을 싸는 중인데 아마 처음부터 그리 심각한 관계가 아니었나 봅니다. 이분 앞에서의 모습들을 보면 그리 냉정하게 뭘 못 끊어낼 것 같던데.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결코 판단할 수 없습니다. p163에는 무엇을 잃고, 혹은 잊고 편안히 잠을 자는 그 여성이 나오는데 "잃은 것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잊은 것은 다시 찾아낼 수 없기에 나는 아직 너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p162)"고 합니다. 하긴 예전에 아주 나이 든 사람이 통속적으로 떠들기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건 잊혀진 여자"라고도 했죠. 그 시커먼 얼굴에 뭘 잊고 말고 할 여자나 과거에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여튼 이렇게 쿨하게 말하는 걸 보면 이 여성은 보통 심지가 굳은 분이 아닌가 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가 약한 것입니다. "시계를 보다 문득, 물을 마시다 문득, 누워 있다가 문득, 네가 자꾸 생각나서, 나는 '또' 이렇게 글을 쓴다(p186)" 예전에 본 사랑과 전쟁 시즌 2의 어느 에피소드 중 여주인공이 폰을 자꾸 들여다보는데도 연락이 안 오자 "고장났나?"고 하던 게 생각납니다. ㅎㅎ 사람 기다리게 하지 말고 빨리 뭔 말이든 연락을 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진짜 세상에서 제일 못할 게 뭘 기다리는 짓입니다.
자책할 것도 아니고, 남과 나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p214). 사실 나는 나일 뿐 하며 억지로 기운 내거나 상처를 다스리는 게 정말 처량한데, 내 기분이 그렇다고 해서 저 말이 틀린 건 또 아닙니다. 무력한 위안이긴 하나 말 자체가 그릇될 건 하나도 없습니다. "너 혼자서 이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않아도 돼." 에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으나 실제로는 내가 다 떠안아야 할 짐과 책임이 너무도 많은 게 사실이죠.
이 책 후반에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듯한 위로의 말이 많이 나옵니다. 마치 잘못 배송된 택배처럼 이건 제 주인에게 돌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한데 여튼 중요한 건 내 감정을 잘 추스리고 쓸데없이 다운되지 않는 겁니다. 내가 날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날 돌보겠습니까. p240에 나오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으나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아무도 내게 그렇게 안 해 준다면 나 자신이라도 날 소중히 챙길 줄 알아야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