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의 꿈을 찾아라 -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김종갑 지음 / 비비투(VIVI2)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세상은 변화했다. 동그란 사람에게는 세상 곳곳을 굴러다닐 수 있는 자유롭게 능력을, 별 모양으로 생긴 사람에게는 세상 곳곳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p7)"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간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고도 압축 성장의 강박에 짓눌려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생긴 틀에 맞추어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구시대적 교육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이런 획일적 교육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어서 지금껏 그 혜택도 적잖이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4차 산업혁명(p246, p9 등)을 논하는 시대이며, 더 이상 많은 아이들을 제도의 희생양으로 삼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낡은 교육의 효용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혁명이 이뤄져야 하며, 그 혁명의 첫걸음은 학급 경영의 정상화, 소통 위주로의 전환입니다. 


"이 책은 교사 생활 30년의 기록이기도 하며... (중략) ...계층화하고 개별화한 학생들의 에피소드를 통찰할 수 있는 사회적 법칙 33가지를 통해 교사의 시선이 무엇인지, 교사의 선한 영향력이 무엇인지 전하고자 했다(p13)." 저자의 말입니다. 특히 저자는 성장기 학생들의 내면에 교사 자신이 공감해야 참된 인도,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현재 저자는 교장 선생님이시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담임을 맡아 아이들 하나하나와 대화하고 교감하며 참된 미래 비전을 찾아주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33가지의 원칙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젊은 시절 저자의 열정과 설렘, 기대, 사명감 같은 게 고스란히 독자에게 다가와서 읽으면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진심이란 본래 물리적 거리도 초월하고 지면의 한계도 넘어서는 법일까요. 


"지식은 결국 기억이다. 기억에 저장되어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p17)" 첫 기억의 힘은 무섭습니다. 저자는 대학 시절 수강한 "현대인의 정신 건강" 수업에서 인간의 생후 18~36개월 사이의 첫 기억이라는 게 평생을 간다는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저 역시 학교 다닐 때 많은 교양/전공 수업을 수강했었습니다만 저만큼이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게 잘 없는데 저자께서는 참 오래도 기억하고 계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 역시 "기억과 저장의 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이 챕터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초보였을 시절 첫 수업을 할 때 J 선배 교사로부터 들었던 조언, 또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받았던 열렬한 칭찬 등에 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교육 커리어를 쌓은 분조차도 "초보" 시절이라는 게 있었다는 점, 아마도 고비를 맞을 때마다 초심을 되새긴 분이기에 저 장면이 그처럼 오랜 동안 선명히 기억에 남은 게 아닐까 짐작해 봤습니다. 


앞서 젊은 초임 교사 시절의 저자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J 선생님도 훌륭한 멘토 중 한 분입니다. p32에는 멘토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다름 아닌 저자 자신의 인생 곳곳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 준 여러 멘토들을 회상합니다. 독자인 저는 거꾸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타인의 인생에 모범이 될 만한, 어떤 자격이 있는 분들이 이처럼 거의 매번 나타나 조언을 해 준다면, 그분 자신이 그만큼 배울 자세가 되어 있고 인격에 끌리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닐지. 도움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멘티)한테 베풀어지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런 분이, 이번에는 다른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멘토, 스승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베푸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사회는 이처럼 세상에 빛과 소금 구실을 하는 소수의 노력과 열정이 모이고 모여 그 생명력과 선도를 유지합니다. p35에 저자가 인용한, 김무곤 교수가 제시한 개념인 "NQ"라든가 관련 저서도 함께 찾아 보면 좋을 듯합니다. 


휼륭한 자질을 갖춘 분이라고 해도 자유로운 옷차림 등이 문제가 되어 교단을 떠나기도 하는 사례가 책에 나옵니다. 사람은 어쩌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몇 가지 문제가 소통 과정에서 흠으로 잡혀 더 이상의 커리어 발전이 어려워지기도 하나 봅니다. 저차처럼 특히 교육계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려면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 없이 다양한 미덕을 고루 갖춰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분은 스스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뿌듯해할 만도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피터의 법칙"을 거론하며 우리들 누구나 자신이 혹시 이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확신을 가지며, 뛰어난 사람일수록 회의를 품는다는 말을 남겼는데 저자는 p41에서 이 명언을 인용합니다. 알렉산더 포프의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도 생각이 납니다. 이 말이 과연 유명하기는 한지 구글에 where angels까지면 쳐도 자동완성이 되는군요. 


교사로 봉직하다 보면 속된 말로 "진상인" 학부형 역시 얼마나 자주 만나겠습니까. 만약 독자가 현직 교사라면 p46에서 저자가 특히 이런 경우에 맞게 들려 주시는 충고를 유심히 읽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자는 말미에 빌 스완슨의 법칙도 소개하며, "나에게 비록 친절하더라도 남(이 일화에서는 웨이터)에게 지독하게 굴 수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아마 그 사람은 "나는 이런 웨이터 따위와는 격 자체가 다른 인간이며 지금 스완슨 당신을 나와 같은 부류로 여겨 이처럼 친절히 구는 것이니 고마운 줄 알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보내는 의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뭐 갑작스러운 실수에 놀라고 짜증이 나서 무심결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그 본성이 드러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대체로 건전한 성장과정을 보내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이들은 저런 경우에도 여유를 보입니다. 거꾸로 이런 여유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흉내내지 못하는 거죠. 


전문계라고 하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들도 있지만 이 책 p57에 나오듯 "비교적 우수한 여학생들이 입학하는" 좋은 여건의 고교도 많습니다. 저가가 교직 생활 30년차에 이 학교로 부임했을 시 그 설렘과 만족감이 그대로 표현되는 문장이 독자 입장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최고로 꼽히는 대학교 바로 근처에 위치한 어느 전문계 여고(p7에 보면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의 추천사가 나옵니다)도 있는데 그 여고를 졸업하신 어떤 분이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게 살짝 생각이 나서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여튼 여기서 저자는 수능 문제 출제 경험을 이야기하십니다. 참 대한민국 50만 수험생이 공통으로 응시하는 시험에 출제위원으로 차출된다는 건 실로 막중한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저자께서 어떤 성장기를 보냈는지, 학생 시절에 어떤 이색적인 체험을 했는지는 p96 이하에 잠깐 나옵니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학급 담임을 맡는 일은 곧 "경영"과도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인간 경영은 곧 올바른 교육이지만 그 뜻 말고 상점이나 기업을 경영한다고 할 때의 경영, 그 모범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습니다. 군 전역 후 서울 망우동에서 만화방을 잠시 운영하신 체험을 이야기하는데, 이 만화방은 "순정 만화"에 특화된 곳이었나 봅니다. 사실 일반 만화방이면 다양한 장르가 들어가고 때로 다루기 어려운 남학생들도 찾아오므로 아무래도 말썽의 소지가 적고 어떤 컨셉, 특별히 노리는 고객 타겟에 맞춰서 내실있는 운영에 초점을 맞추는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이후 다시 서점, 대여점 등을 잠시 운영했는데 뭔가 경영 쪽에 확실히 적성이 있으셨던 듯합니다. 돈이 가는 길을 빤히 잘 캐치하는 분이 확실히 따로 있습니다. 여튼 이후 교편을 잡으시고 어느 학생이 "선생님! 혹시 책방 아저씨 아니에요?"라고 물어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렇게도 사람 사이의 인연이 이어지나 봅니다. 


담임 교사가 신경 써야 할 사항은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는 교통 신호 체계에 실수는 없는지, 있다면 공무 당국과 협의하여 바로잡아야 하는 등 살펴야 할 부분이 무척 많습니다. p151에는 저자가 구의원과 협의하여 보행로 확보, CCTV 설치 등을 이뤄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역시 실무에서 난관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아마 당국자 누구와의 소통에서도 잘 확인되었기에 마침내 성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학급 임원(학생)은 교사의 손발과도 같습니다. 손발처럼 부려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교사와 일차 소통이 잘 되어야 하고 물론 동료 학생들과도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재목이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만큼 예나 지금이나 학생 투표로 뽑는 게 일반적인데 어느 해에는 학급 운영이 잘 안 되어 저자 같은 분도 큰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해리의 법칙을 인용하는데, 이를 반어법(p141)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합니다. 뛰어난 상급자이건 그렇지 않건, 그 아랫사람은 반드시 유능한 사람을 써야 한다는 거죠. p217에 패커드의 법칙이 나오지만 어떤 조직이건 우수한 인재를 두루 확보하고 이를 곳곳에 심어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인의 핵심 직분입니다. 하물며 교육자는 이런 CEO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인간 경영자인데요. 


교사는 학생들을 좋은 상급 학교에 보내고, 출세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그게 일차 사명은 아닙니다. 저가가 말하는 첫째 소명은 바로 "행복한 사람 만들기"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이 불행하면 그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마음이 지옥인데 부(富)와 지식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학생 시절 장차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 준 스승은 그 학생에게 평생의 자산을 미리 무상 증여한 셈입니다. 이런 자산은 나누면 나눌수록 늘어나며 만인을 풍족하게 만듭니다. 


p230에는 도도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외부로부터 자극이 없고 평생 편하게 먹고사는 동물은 결국 바보가 돈다는 겁니다. 사람의 인생에는 적절한 위기도 있어야 하고 이로부터 도전과 응전(토인비의 명제) 기제가 생겨 그 개체, 혹은 종 자체가 더 생존에 최적화한 지혜로운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저자는 이런 이치를 학교 경영에도 적용합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십시오. "코이의 꿈을 찾아라"입니다. 그 뜻이 뭔지 궁금해할 분도 있을 텐데 책 p88에 그 뜻이 나옵니다. 이 코이라는 이름을 가진 관상어는 작은 어항에 넣어 주면 8cm 정도밖에 못 자라지만 강물에서는 무려 120cm까지 성장하기도 한다는 거죠. 그 편차가 무려 1500%입니다. 아이한테 격려를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면 그 아이는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큰 인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될성부를 싹도 미리 그 기를 죽이고 딴지를 걸면 그런 인재는 몇십 년 아까운 인생을 방황하고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교사, 스승이란 얼마나 책임이 막중하고, 또 엄청난 권능을 지니기도 한 직분이겠습니까. 작은 밀알 하나가 썩어 온 평원을 풍요롭게 하고 수많은 생령을 먹여살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며, 공동체의 앞날은 올바르고 정의로운 교육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육이 바로서면 나라가 살고, 교육이 경색되면 나라가 썩고 기우는 건 만고 불변의 이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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