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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할까말까할까말까영상
임솔이 지음 / 빈빈책방 / 2021년 11월
평점 :
청년의 꿈과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죠.
이 책의 제목은 "계속할까말까할까말까영상"입니다. "할까말까"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들어갔습니다. 컨텐츠 제작 분야뿐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여서 과연 여기가 내 뼈를 묻을, 아니 내 소중한 청춘을 바쳐야 할 곳이 맞을지 확신이 서는 곳이 없습니다. 할까말까, 할까말까. 두 번도 부족하고, 아무리 (첵 제목이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라지만) 두 번은 더 써야 그 마음이 표현될 듯합니다.
"얼마나 예전인가 하면 화면 비율이 4:3이다.(p10)" 요즘도 어쩌다 예전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채널에선 이른바 필러박스로 화면을 처리하고 4:3으로 송출합니다. 대개는 화질도 덩달아 구립니다. 그래도 그런 컨텐츠에서조차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게 있는데 출연진과 (보이지 않는) 제작진의 열정입니다. 오히려 때깔 좋은 요즘 방송보다 그때 작품들이 더합니다. 그때도 어려운 여건에서 "내일은 태양"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던 영상 노동자, 내일의 감독들이 땀흘려 저 작품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을 터입니다.
"일종의 덕통사고였던 걸까? 화면에 담긴 모든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p12)" 젊은 시절은 그래서 문제입니다. 사실 저는 어떤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콩깍지가 씌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이게 콩깍지인 줄을 모릅니다. 이게 일종의 착시나 과잉열정인 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고 나의 열정과 인생 지표 같은 건 벌써 무엇에 저당이 잡힌 상태이며 빠져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내 열정이 순수하기에 아무 후회는 없습니다. 없어야 마땅하고 말입니다.
지상파 세 곳, 경향신문, 뉴스타파, 한국일보, CJ E&M 등을 지원한 1992년생(p18, p13)인 저자는 원서 접수, 서류전형, 필기시험 등을 치며 이 시대 한국의 취업 시장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합니다. 이렇게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그들은 교내 언시(=언론고시) 스터디, 저널리즘 스쿨, 문센 강좌 등을 다 거치고 고작 한두 명을 뽑는 결과를 확인한 후 씁쓸히 발길을 돌릴 뿐입니다. 수백 명이 몰렸는데 고작 한두 명의 합격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좌절이라니! 인적성 시험에 떨어진 후에는 "도대체 이 몇 쪽의 시험지가 내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날 떨어뜨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후 저자가 조직 생활을 오래하지 않고 도중에 그만둔 걸 볼 때 "어느 정도 정확"했다며 스스로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이처럼 자기 객관화, 반성 과정을 거치는 정신에게 무슨 발전이 있어도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어르신들은 한 직장에 진득하니 오래 버티는 이들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자녀(p54)든 남의 자녀든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직업 자체가 한 가지를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풍토이기도 합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이끼는 이제 부정적인 뜻으로 새겨지기 시작하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이직을 십수차례 하며 연봉도 더 높여 가고 캐라어도 멋지게 꾸립니다. 프리랜서 기간은 나쁘게 말하면 그냥 백수입니다만 저자의 말대로 사회의 다양한 면을 겪고 나의 능력 역시 다방면으로 계발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내게 어떤 기회, 어떤 업무가 할당될지 아예 알 수가 없습니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가면 아예 정규직이라는 게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저런 일을 순발력, 융통성 있게 잘하는 인재만 살아남을 수 있죠. 또 정규직이란 혜택이 공짜가 아니라서 특정 조직의 업무에만 사람 능력이 갇히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멀티플레이어는 1을 쥐어주고 10을 뽑아내야 하는 후려침(p64)을 언제까지 당해야 하는가. 사실 이건 영상업계뿐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을의 입장에서 이건 어느 정도 숙명입니다. 물론 도가 지나치면 저항을 해야 합니다만 한계가 있죠. 그런데 저는 이 역시 아예 능력도 적성도 없는 처지라면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는 건데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무리 비정한 조직이라고 하나 현장에서 남다른 열정, 재능으로 기여를 한 사람에게 보상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들도 젊었을 때 다 같은 모습이었을 텐데. 독자인 저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연출이 그렇게 귀하다면서도 정규적으로는 결코, 네버, 채용하지 않아요(p68)." 이런 이야기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고 들었는데 21세기인 지금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게 참... "스스로 몸값을 낮추지 마세요. 재능거래 플랫폼의 저가 경쟁이 정말 싫어요. 과몰입을 경계하세요. 제작진이 아닌 출연자가 되세요." 과몰입(p109)과 열정 사이의 경계는 습자지보다 얇습니다. 나의 열정은 순수하고 정직한데 현실은 그걸 고작 어리석은 과몰입 정도로 후려치는 거죠. 보상받지 못한 열정은 그게 바로 "후회되는 과몰입"이 되는 겁니다. 출연자는 그저 프론트맨, 광대에 불과하고 본질의 창조는 온전히 제작진의 크레딧인데 현실에서의 분배는 정반대로 갑니다. 정말 문제입니다.
저자는 세 가지 수확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세계의 확장, 둘째 두번째 인격, 세번째 사람들(나의 친구들). 이중에는 다소 냉소적, 반어적 표현도 있지만 사람, 사람이 자산으로 남았다는 말은 사실 저자뿐 아니라 어느 영역 누구에게도 진실입니다. 사람이 안 남고 돈만 남게 산다는 이도 있지만 결국 그런 경우는 돈도 사람도 다 달아나는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라도 남았다면 그 사람은 잘 산 것입니다. 미래도 아마 밝을 것이입니다. 저자는 이 책 여러 군데(p88, p10 등)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직종 선배, 은인들을 거론하는데 이러면 벌써 된 겁니다. 이제 서른 살이신데 잘 하고 계신 거죠.
영상 제작이라고 하면 기술적인 측면을 먼저 떠올립니다. 잘은 몰라도 TV에서 언뜻 스쳐지나가는 그 비싼 기계만 봐도 기가 죽고 저걸 어떻게 다 잘 다뤄야 진짜 피디가 되나 싶지만 저자는 반대로 말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촬영 편집은 전문가가 다 따로 있기에 저자는 그간 받아온 실습 수강 시간이 다 후회된다고 합니다. 그럴 시간에 책을 더 읽고 사회와 세계에 대한 안목을 더 키울 건데 하는 생각이 든다(p113)고 합니다. 젏은 지망생들이 새겨 둘 필요가 있는 충고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잘 읽어 보면 "계속"과 "영상" 부분만 하얀색입니다. "할까말까"에서 마음이 어두워지더라도, 나(청년을 대표하는 이 책 저자)의 꿈인 "영상"과 "계속"에서는 표정이 밝아집니다. 미국 속언에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있습니다. 청년의 꿈도 계속, 계속,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책 제목에 대한 저자의 authentic한 해제는 pp. 102~103애 따로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