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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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우 작가님의 힐링 시리즈를 여러 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신간 역시 거의 모든 페이지에 컬러 사진 등 도판이 실려 있기에 이 귀한 시각적 자료만으로도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미술 전문 출판사인 인문산책의 멋진 제책 솜씨 덕에 더욱, 읽는 게 행복한 멋진 책입니다. 


p64에 "봉황문"이 나옵니다. 물론 문은 門이 아니라 紋이며 이 책 제목부터가 문양을 다룬 책이라고 이미 밝힙니다.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상서로운 새"인데 이런 태평성대는 지혜롭고도 용감한 임금이 노력을 통해 가꾼 성과물이어야 하죠. 하늘은 그저 봉황을 아래로 보내 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참 놀라운 게, 봉황의 생김새 같은 걸 그저 그림이나 후세에 가공된 이미지로 유추하지 않고 고문헌의 묘사로부터 일일이 고증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설문해자>도 출전에 포함됩니다. 그러니 이 책은 그저 문양 분석이 아니라(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지만) 고예술품에 나오는 여러 이미지나 개념을 해제한 사전(事典)도 겸합니다. 


용(龍)은 중국의 천자만 독점할 수 있었으나 봉황은 반도의 제후국이 마음 놓고 그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창경궁 명정전의 조각은 "작위적이거나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우아하다(p69)"고 저자가 평가합니다. "조양에서 우는 봉황"은 직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를 상징한다고 하니 이 영물의 함의에 왕뿐 아니라 신하가 참여할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더 흐뭇합니다. 


서수(p112)는 한자로 瑞獸라 쓰겠죠? 이 책 3부 처음에 소개되는 사령(四靈)은 네 가지 상서로운 동물이란 뜻으로 四瑞와 동의어로 삼습니다. 기린, 봉황, 영귀, 용 등 네 마리를 뜻합니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의 사방신과는 다르죠. 책에도 나오듯이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등에는 우리가 아는 사방신(으로 해석할 수 있는. p116)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p117에는 아주 선명한 사진들이 나와서 독자의 이해를 꼼꼼히 돕습니다. 


대개 서수는 네 마리씩 표현되는 공통점은 있으나 이 책 p124에 나오듯 그 종류가 일관된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天祿은 매우 생경한데 책에는 <후한서>가 그 출전이라 하니 한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물론 상상 속의 동물이고요. 저자는 특히 "왜 '메롱'이라 하듯 혀를 내밀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물론 이를 메롱이라 새기는(느끼는) 것도 우리 현대인들만의 감각, 습관이겠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왜 하필 이 천록상만 이리저리 위치가 바뀌었는지도 짚고, 중국 등과 달리 우리네 조각상들은 유독 해학적 성격이 짙은 것도 눈여겨 봅니다. p132 이하에서는 용생구자설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서수 9종을 소개합니다. 역시 일일이 도판과 함께하는 설명이라서 독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서양의 군주들이 그 다스림을 받는 신민들에게 무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그저 군림하려 들었던 것과 달리 동양의 지배자들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인의를 내세웠으며 군주 역시 부지런하고[勤] 절약하는[儉]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월대(月臺)는 궐 앞에 세우는 부속물인데 이를 오"르"는(p138) 계단이 붙는 게 보통입니다. 이를 답도(踏道)라 부르는데 p138 이하에서 이 구조물이 집중 분석됩니다. 공작, 해치(p150), 봉황 등 다양한 서수가 양각되어 있네요. p147에는 28수(宿. 별자리를 뜻할 때 "수"라 읽습니다)와 그것이 상징하는 동물이 매칭된 표가 나옵니다. 또 p146에는 월대의 방위과 서수 배치를 설명한 그림이 있는데 크~ 한마디로 기가 막힙니다. 근거 문헌은 <경복궁 영건일기>라 합니다. 


문양에는 동물만 나오는 게 아니라 식물도 빠질 수 없습니다. 우선 p166 이하 4부부터 "꽃담"이 나오는데(p243도 참조) 이 역시 한국에서만 유독 자주 발견된다고 하네요. p186 이하에 매화, 모란, 난초, 국화, 대나무 등 전통적인 유교 덕목을 계절과 함께 상징하는 식물들이 소개됩니다. 연화, 석류, 포도 등은 불교 신앙이나 민간에서 그 나름 고유한 상징으로 널리 미술에 표현되는 소재들이겠습니다. 특히 연화는 불교의 핵심 상징인데 책 저 뒤 p270에는 만자(卍字)문(紋)도 소개됩니다. 이를 "천지의 조화"라고 새길 때에는 주역(유교 삼경의 하나)의 태극과도 연결된다고 하네요. 


저자는 코끼리를 뜻하는 象과 길하다는 뜻의 祥이 음이 같으므로 건축에 널리 즐겨 쓰였다고 합니다. 다만 현대 중국어 기준으로는 전자는 4성, 후자는 2성으로 서로 성조가 다르긴 하죠. 창덕궁 희정당 굴뚝의 장식(p242)을 보면 기린, 학, 사슴, 코끼리가 각각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서수입니다. 잉어(p250) 같은 물고기도 입신출세를 상징했다고 하네요. 특히 조선 시대는 일반 양민들도 과거 급제를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있었으므로 민간에서 두루 누렸을 인기를 짐작게 합니다. 

p281을 보면 쌍희자(문)가 나오는데 사실 글자라기보다는 문(紋)에 가깝죠. 네이버 사전을 보면 이걸 두고 한국에서 만든 글자라고 설명하지만 중국에서도 널리 쓰는 문양입니다. p292 이하에는 단청이 소개되는데 단청 역시 고유한 상징을 지녔으며 특히 그 반자초에 대한 책의 설명이 탁월합니다. 6부의 편액문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p317의 <요지연도>도 참으로 신비한 그림입니다. 50년만에 고국에 돌아왔다고도 하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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