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부터의 자유 -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메멘토 모리 독서모임 엮음 / 북에너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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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인적으로, 예를 들어 남녀간의 사랑, 처세의 핵심 교훈, 뭐 이런 주제를 놓고서는, 단일 저자, 혹은 여러 분의 필자가 각각 고른 여러 좋은 책들에 대한 감상 앤솔로지를 종종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제가 사랑, 성공 이런 밝고 달달한 주제가 아니라, 무겁기 짝이 없는 "죽음"이라면, 감상문 앤솔로지는 고사하고 이를 정면으로 분석한 책도 그리 많지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최근 들어 관심이 늘었는지 개인적으로는 올해 두 권 정도를 만나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은, 무려 20년을 넘게 이어온 독서 모임에서 "죽음"에 대한 주제 하나만으로 각각 자신의 favorite을 뽑아 그 정수만 엮은 내용입니다. 비록 주제가 죽음이라는 무거운 성격이지만 회원분들, 필자들이 한 권씩 뽑아 쓴 내용들이라서 지루할 틈도 없습니다. 목차에서 제가 일일이 세어 봤는데 1~3장이 각 10권, 4, 5장이 각 9권, 6장이 4권, 이렇게 해서 총 52권이 소개되더군요. 두 페이지 앞의 서문에도 52권이라고 나옵니다. 52에 1년 52주의 성격이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이 책 한 권으로 52권의 엣션설만 일단 맛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20년을 이어 온 독서 모임이라서인지, 서문에 보면 회원분들의 연치도 좀 높은 편이라고 스스로들 밝히고 계십니다. 또 보면 하나같이 사회적 성취라든가 위신도 높은 분들이더군요. 이런 걸 따지는 게 약간은 속물 같습니다만 이제 어떤 권위, 지위 등은 흔한 명품 치장 따위가 아니라 이처럼 독서와 교양의 축적을 통해 증명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이제 졸부들의 유치한 과시 레벨에서는 벗어날 만큼 충분히 성숙해지기도 했죠. 게다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일정 성취를 거둔 분들이 몰두하는 독서, 관심 갖는 주제로 "죽음"이 선택된 게, 이런 주제를 꺼낼 만한 분들이기도 하기에 더 적절하고 설득력도 있습니다. 책 p376 이하에 보면 이 모임("메멘토 모리")이 마쳐 낸 독서 목록이 있는데 205권을 포함합니다(영화 단체 관람 등 타 컨텐츠 포함). 이 205件의 컨텐츠도 정말 필독 필람의 쟁쟁한 이름들입니다. 


손현준 충북대 의대 교수는 하이더 와라이치 著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을 추천합니다. 저자가 심장학 전문의이다 보니(추천자 손 교수님은 해부학 전공이시고 아직 환갑이 안 된 분입니다) 더욱 이 주제가 무겁게 와 닿기도 하네요. 다윈 이후에는 적자 생존이 아니라 부적격자 생존의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른바 연명의료 같은 걸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겁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는 최전선의 전문가가 하는 말이라 말의 무게 자체가 다릅니다. 손현준 교수는 얼마 전 위드코로나 관련으로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기도 한 분입니다. 


박점분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입니다.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에 선 인간>을 추천하는데 원제가 번역과정에서 다소 의역되었음도 지적합니다. 사실 불어도 그렇고 영어도 image라는 단어가 참 다양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저 포괄적으로 이해하면 될 듯도 합니다. 여기서 박 도슨트는 프랑스 역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아날학파에 대한 깔끔한 설명까지 덧붙입니다. 아날 학파 한 테마만 해도 책 열 권이 필요한 주제이나 요령 있는 설명 덕분에 가외의 교양까지 독자는 더불어 얻습니다. 뤼시엥 페브르, 마르크 블로크 등 다른 거장들도 언급됩니다. p92에 이 전체 독서 모임 명칭이기도 한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구가 다시 환기되네요. p94에 "앙리마르 베르만"이 언급되는데 스웨덴 국적 레전드 연출자인 잉마르 베리만의 오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읽어도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예전 분들이 "잉그마르 베르히만"으로 잘못 부르던 바로 그 감독이죠. 


p115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발제자께서 고른 책이 나오고, 집필자는 다른 분입니다. 박영호 씨의 <죽음 공부>인데 심오한 구절이 참 많습니다. 어찌보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웰빙에서 웰다잉 시대로의 전환"이 그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면 무상(無常)한 인생이 비상(非常)한 생명이 된다"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사실 어떤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목표, 성과가 꼭 나와야 값있는 인생은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자신과 가족, 또 이웃을 위해, 어떤 가식이나 정치 구호가 아니라 진심어린 유대와 공감을 투영하는 헌신, 이런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생은 남들이 몰라줘도 이미 그 자체가 부처요 예수며 공자입니다. 


니나라고 해서 저는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그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전이성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니나 리그스라는 시인이었으며 랠프 왈도 에머슨의 5대손이기도 하다고 나오네요. 장상애 전 고교 교사께서 추천하고 집필한 부분인데 죽음을 준비하는 구간을 총 4기로 나눕니다. 또 얼마 전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된 <숨결이 바람될 때>라는 책도 필자가 함께 추천합니다. <The Bright Hour>는 제가 읽지 못했으나 두 책이 내용도 잘 통하는 듯하고 한데 묶은 추천이 멋진 큐레이션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윌리 오스발트의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도 같은 집필자께서 후반부에 또 소개해 줍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어린이와 죽음>은 제목부터가 상당한 아이러니를 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p169에서 필자도 "어린이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말도 인용되지만 죽음은 본디 삶과 쌍둥이처럼 한날한시에 난 운명입니다. 살아 있다는 건 곧 언젠가 죽는다는 뜻이며 이 이치를 뿌리까지 깨달을 때 삶은 비로소 평안을 맛볼 수 있죠. 과연 사후생, 즉 내세나 천당, 지옥 같은 게 있을까요? 퀴블러 로스는 내세라는 의미에서 사후생을 확신하는 분입니다. 이는 논자에 따라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 꾸며낸 판타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유한한 생을 한탄한 필멸의 인간들이 그 간절함으로 인해 도달한 인식의 한 종착점인지도 모릅니다. 즉 이게 사실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후생이라는 게 있어야 현세에서 인간들이 최선을 다해 살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안덕희 전 서울대병원 수간호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추천합니다. "아름다운 죽음은 (사실) 없으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는 말이 참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고어물인 <호스텔 3>를 보면 어느 젊은 여행객이 살인자들에게 질질 끌려갑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울부짖자 "마! 남자답게 받아들여!"라고 어느 폭력배가 고함칩니다. 과연 그 폭력배는 자신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남자답게 받아들일" 의연함과 배짱이 있을까요? 또 여기서 폭력배는 물론 조직의 하수인이지만 어느 정도는 그 젊은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인데도 뻔뻔스럽게 국외자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과연 울부짖는 그 젊은이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사실 없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편안하게,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게 사회가 돕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죠.


집필자 김금희씨도 전직 서울대병원 수간호사이시라고 나옵니다. 샘솟는기쁨에서 나온 책인데 출판사에서 서평책과 함께 호의로 보내 주신 걸 제가 아직 서평을 못 쓰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ㅠ 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건 투병중이신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과정입니다. 이 <슬픔학 개론>은 또한 지금 이 책처럼 죽음을 주제로 한 여러 좋은 책들을 저자 윤득형 박사님이 여러 권 소개해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김금희 집필자도 책에 소개된 여러 훌륭한 책들을 우리 독자에게 재인용해 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우리 한국에도 죽음에 대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으며 감동적인 책들이 여러 권 나오는 트렌드입니다. 이미 번역 소개된 외국의 책들이 궁금하다면(한국 책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이 책을 일별할 필요가 있겠으며 공력 깊은 독서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발제, 집필한 책인만큼 짧은 서평, 혹은 논문을 읽는 보람과 재미도 쏠쏠합니다. 강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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