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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10월
평점 :
<영원한 제국>의 작가로 유명하신 이인화님이 쓴 메타버스 설명서입니다. 핵심 주제는 메타버스이지만 같이 논하는 키워드가 상당히 많고, 기술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인문학자의 심원한 통찰, 유려한 문장과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책날개에 그의 간단한 이력이 나와 있고, 본문 p98에는 10년 전인 2011년 기준 이화여대 가상세계 문화기술여연구소(저자가 몸담았던)가 국내 유일의 메타버스 연구기관이었다는 (저자 자신의) 평가가 나옵니다.
최근 구글이 과도한 수수료를 받는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런 대기업의 행태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이 몇 달 전에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런 입법례가 세계 최초라고 해서 다른 나라 미디어들이 집중 보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플랫폼이 있어야 개별 생산자, 크리에이터들이 뛰놀 공간도 생기는 법인데 다만 안드로이드처럼 특정 회사가 독점을 하면 이게 문제인 것입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메타버스는 1개의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플랫폼을 독점하는 게 (그 본성상) 어렵다"고 예측합니다(p84). "독립 플랫폼이 아니라 통합 플랫폼이 될 것이다"라고도 합니다. 저자가 "1개의 기업" 외에 "공공기관"도 덧붙여서 그 예상되는 독점의 주체에 넣은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결론은 독점이 불가능하다는 거지만 추이는 두고 봐야 알 일입니다.
그 다음 말이 재미있는데 "현재의 메타버스들은 그저 편의상 메타버스라고 부르지만 이는 메타플레이스에 가까우며 (미래에 실현될) 진짜 메타버스들은 우주보다 큰 곳"이라고 합니다. 하긴 우리의 우주는 (아직) 3차원 공간이니 그게 진짜 메타버스이기만 하다면 그저 우주보다 큰 정도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겠죠. 마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가 고안해 낸 알레프-0, 알레프-1... 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p85의 그래프를 보면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상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데 가로축이 시간이긴 하나 본문의 설명과 맥락을 고려하면 시간과 적어도 선형비례 관계에 있는 정보의 양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주식 하는 분들은 작년 이맘때부터 부쩍 "로블록스"란 이름을 자주 들었겠습니다. 대략 메타버스가 일반에까지 널려 알려진 것도 그 정도 됩니다. 어떤 이들은 BTS(p239)를 만든 하이브(舊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주가와 관련하여 메타버스란 개념을 처음 접했겠는데 애초에 이를 상업화하여 미래 비전으로 삼기 시작한 섹터가 연예 쪽이므로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습니다. 저자는 로블록스가 시장 개척 기업일 뿐 지배자는 아니라면서 이 회사의 장래가 그리 밝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합니다. 검색이 어렵고 핑 수치가 크며 보안에 취약하다는 세 가지 약점을 듭니다.
본문 중 일부에는 열성적인 리니저 유저였던 그의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교수님뿐 아니라 린저씨들이 모두 공유하는 대목이기도 하죠. "... 로블록스가 노출한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타버스 산업이 리니지플러스알파(단계)로 후퇴하지는 못할 것이다." ㅎㅎ 이 문장에 숨은 뉘앙스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여튼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는 개발자가 신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메타버스에서는 단지 플랫폼 오너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말이 나옵니다. "개발자와 사용자가 각자의 한계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혁신을 추구(이상 모두 p98, p99가 출처)"하리라는 건데...

메타버스를 설령 전혀 모르는 독자라고 해도, 최근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피드백과 항의(?) 등에 영향을 받아 제작진이 스토리와 방향성을 도중에 바꾸거나 아에 기획 자체가 엎어지고 방송이 중단되는 등 유저가 더 이상 과거의 수동적인 시청자, 독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그 생산하는 컨텐츠가 저질이고 세계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못 받는 건 애초에 소비자가 참여할 공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전망대로라면 메타버스야말로 실존 공간을 넘어선 완벽한 민주주의가 구현, 완성되는 곳입니다.
예전에 영화배우 잭 블랙은 한국의 예능쇼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진행자들더러 "놀 줄 아는 사람들"이라 평가한 적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별의별 개성을 지닌 이들이 유튜브에 자기 채널을 만들고 예전 같으면 이런 게 과연 사람들 앞에 내세울 거리가 되나 싶은 컨텐츠로 많은 수입도 올리고 자아실현도 하는 중입니다. 돈 버는 게 주목적인 이들도 있겠으나 상당수는 그저 저렇게 방송에 나와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더 크지 않나 싶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요즘은 잘 놀 줄 아는 게 실력이고 돈 버는 자산이 되는 시대인데, p107에는 "로블록스 유저들은 (린저씨들을 보고) 도대체 노는 게 뭔지를 모른다며 혀를 찰 것"이라는 저자의 평가가 나옵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으나 여기서도 리니지를 향한 (구) 열성 유저의 분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p106에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와 로블록스 유저들의 "활동"들을 저자 나름으로 매칭시킨 표가 나오는데 재미있기는 합니다.
7장에는 "왜 기획하면 죽고 거주하면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31세의 가상인물(인 줄 알았는데 저자가 만난 실재 인물인가 봅니다) "아놔안해"씨의 사연이 나옵니다. 서사의 역설이란 "사용자 서사의 플롯이, 거의 항상 예측 불가의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p134). 여기서 저자는 복잡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부분은 언제나 전체의 한 요소로만 기능하고 존재하던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음을 다시 환기합니다. 비선형적, 상호작용적 서사가 이 메타버스의 특징(p135)이기도 하죠. 어쩌면 저는 민주주의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하지 않나 싶습니다. 독재나 왕정은 왕의 특성만 파악하면 국정과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국은 이성적으로 추론,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허나 민주주의는 아무리 설계자가 영리하게 기획해도 변수를 통제할 수 없으므로 당초의 목표 달성이 누구에 의해서건 간에 불가능합니다. 그 목표가 단지 특정 소수만을 위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쥬라기 공원>에도 "시스템의 통제란 원래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죠. 생명은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p145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운영은 시스템 오퍼레이션이 아니라 유닛 오퍼레이션이다."
X세대도 처음에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율과 개성을 추구하는 혁신의 주체로 평가받았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그들은 "어른은 무시하고 애들은 근거없이 평가절하하는 가장 노답인 꼰대"로 매도당합니다. 사실 개성과 자율을 추구하는 건 이후 나타날 모든 젊은 세대의 공통 속성이지 그들만의 특권이나 자질이 아니었는데도 뭔가 단단히 착각했던 거죠. 아마도 지금의 Z세대는 그런 자기객관화가 안 되는 선배들의 실패한 스텝을 훌륭한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자녀 세대에게 추태를 떨지 않을 것입니다. p158에는 저자가 정리한 각 세대의 메타버스 체험 표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강조하는 건 "컨비비얼리티"의 체험에 각 세대가 얼마나 노출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과 매우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얼마나 (다르다는 것이 일단 부과하는 불편함과 다툼을 딛고) 부대끼며 즐겨봤느냐가 그 기준입니다. 실제로 특정 세대는 자신과 특정 신조가 불일치하면 살인도 불사할 듯한 증오감을 바탕으로 비이성적인 공격을 퍼붓거나 아예 자폐에 침잠하기도 하는데 이게 다 콘비비얼리티의 결핍에 기인하는 것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물론 이 역시 상대적이며 개인차가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가르칠 수 있다. 수학의 방정식, 담론적 설명, 그리고 시뮬레이션이다(p223)." 이 중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물론 세번째 수단이나 애초에 시뮬레이션 초기 설정에 오류가 있으면 앞의 두 수단보다 더 비효율적이고 해로울 수 있습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잡한 세계의 행동들을 모사할 뿐 아니라 코딩한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계산한다." 그런데 역시 이 과정에도 수학의 방정식은 필수이며 크게 보아 코딩 역시 모두 수학에 포함됩니다. 저자가 말씀하시는 이런 미래상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물론 잘 노는 능력, 공감력, 콘비비얼리티가 모두 중요하겠으나 제 생각에는 어려서부터 수학을 단단히 훈련시켜야겠다 싶습니다. 아무래도 유능한 개발자는 1/n의 위상에 머물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콘비비얼리티 등은 사회 성원에 끼기 위한 원초적 자격이겠고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