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
박시은 지음 / 아이콤마(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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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추억 중에는 성인이 되고 난 후 평생을 살아갈 자양분이 될 만한 것도 있고, 반대로 그때만 떠올리면 위축되면서 잘 되어가는 일도 가로막을 듯한 악몽 같은 체험도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좋은 기억, 행복한 추억만 갖고 살 수는 없고,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 해도 결국은 자신이 스스로 극복하며 성숙해져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도 학연(...)을 따질까요? 저자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같은 초등학교 출신들끼리 모여 다니며 다른 출신을 배척하는 통에 고생을 한 기억을 털어놓습니다. 일부러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려고 노력했고 반장에까지 뽑혔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주인공을 밉게 본 특정 초교 출신들이 "미친O"같은, 그녀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설까지 퍼부은 것입니다. 바로 다음 장에는 주변에서 부추기는 통에 괜한 허세를 부린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한 느낌을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이 작가분께서는 튀는 걸 좋아하는 기질이 좀 있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없는데 구태여 쫓아와서까지 욕을 퍼붓는 그 아이들이 물론 나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본래 남과 다른 행동을 하는 개인을 무척 미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 피해의식에 찌든 불쌍한 인생들이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작당을 하여 저지르는 못난 짓거리이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는 적응을 할 필요가 있고, 다만 선을 넘었다 싶으면 단호하게 저항을 해야겠죠. 


"그 많던 총명한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 사회가 여성 인재를 잘 대접해 주지 않는 경향도 물론 있겠죠. 작가는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녀를 보니 세월이 많히 흘러 젊은 시절의 총기는 간데없고 "안경으로 가릴 수 없을 만큼 빛나던 눈빛은 어느새 많이 흐려져 있었다.(p56)"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뒤에 나옵니다. 제사 수수료... 글쎄 그게 정말 제사 대행 업체 정도 같으면 괜찮은데, 알 수 없는 토착 종교 단체라면 문제가 심각해지죠.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세요?" 이거라면 뭐 99%입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에릭 시걸의 통속 티어저커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나이 든 세대들 사이에서는 코팅한 책갈피 등에 사랑의 정의(definition)를 적어 둔 아이템이 유행한 적 있었다고 하죠. 작가님은 "사랑은 말이야... 눈물이야."라고 사랑을 정의한 어느 친구를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한때 사랑했으나 너무 변해 버린 상대를 보고 눈물을 주체 못할 만큼 슬플 수도 있기에 사랑이 곧 눈물이라는 걸까?" 얼마나 슬펐으면 이런 생각이 다 드셨겠습니까만 다소 논리의 비약 같기도 하네요. 


"OO는 용서가 되어도 머머리는..."이라는 드립이 있습니다. 그만큼 젊은 층 사이에서는 탈모가 고민이라는 뜻인데요. 유전보다 요즘은 환경 오염이나 스트레스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p77 이하에는 인방을 하다 드디어 "얼굴을 깐" 어느 분이, 얼굴만 깐 게 아니라 자신이 탈모라는 사실까지 고백하며 순식간에 5,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외모를 드러낸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구독자들이 충격을 받았겠지만, 제 생각에 그분은 인방의 본질이 뭔지 아는 분 같습니다. 결국 세상에는 비밀이 없고 사람들은 솔직한 소통(p310)에 환호합니다. 치명적인 결함(탈모 말고요)이 있어도 이걸 팬들 앞에서 솔직히 까는 그 용기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그분은 자기 방송을 즐겨 봐 주는 이들 앞에 아무것도 안 숨기겠다는 그 진정성을 그런 식으로 증명한 겁니다. 대중이 뭘 원하는지 아는 분이란 거죠. 


이 책에는 특히 친구 U라는 분이 자주 언급됩니다(그 정체는 사실 책 맨처음에 나옵니다만 저는 못 보고 지나쳤다가 책을 중간쯤 읽어갈 때쯤에 비로소 눈치챘고 나중에서야 확인했습니다). 저 위에 뛰어내리다 다친 이야기 속에도 U가 나오죠. 여튼... 왜 어떤 사람은 같은 행동을 해도 에너지가 더 빨리 소모(p86)될까요? 제 생각에는 그만큼 더 진지하고 더 솔직하고 더... 정확한 의사 표시나 행동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안 그런 사람은 대충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상대 배려를 안 하니까 힘이 덜 들며, 거꾸로 자기 스트레스까지 해소하니 힘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뺏어갑니다. 


이런분들이 좋아하는 게 또 손편지(p146)인데 예전 분들은 교환일기도 썼죠. 제가 아는 친구 누나도 그 친구분하고 교환 일기를 쓰시던데 참 좋아 보였습니다. 손편지는 물론 친구 사이뿐 아니라 부모님께도 쓰곤 하는데 작가님 부모님은 ㅎㅎ 참 좋으신 분들 같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일정 나이 이상의) 자녀에게 편지 받는 걸 민망해하시는데... 물론 아들과 딸은 또 다르긴 합니다만. 참고로 저자는 책날개에 나오는 대로 1990년생이십니다. 


요즘은 나이 든 이들도 흑발 외 염색을 자주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나이 든 남성이 염색을 하면 배달 일, 공사장 일 하는 분들, 혹은 중국에서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정부 고관을 지낸 이들도 짙다 못해 붉은 브라운으로 머리를 물들이는 걸 흔히 봅니다. p236에는 처음 염색을 해 본 작가님의 느낌이 나오는데 무엇이든 처음 해 보는 건 그만큼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이 느낌도 친구분 U(!)께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표현합니다. 너는 파란색, 나는 빨간색.... 하긴 저도 어렸을 때 친구를 다시 만나 아무 생각 없이 즐겁던 동심으로 돌아가 갖가지 기발한 놀이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듭니다만. 


사람 머리 색이 한 가지라야 한다는 법이 없듯.... 작가님은 대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시 창작 실기 시간을 꼽습니다. 어떤 교수님은 육필로 과제를 쓰라고도 하고, 어떤 교수님은 워드프로세스로 처리한 것 외에는 안 받는다고도 합니다. 펜으로 쓰는 건 청색 아니면 흑색이어야 하죠. 그런데 저 교수(등단 시인)님은 왜 한 가지 색깔로만 쓰냐고 했답니다. 누구는 빨강, 누구는 파랑... 어쩌면 시는 그 쓰는 펜의 색깔로도 그 마음과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거고, 크로스오버의 시대에 애초 그림과 시가 구분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웬만한 독자들은 다 눈치채겠으나 U는 학창 시절, 혹은 지금의, 특정한 어느 친구(성이 엄씨인 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물론 어느 한 친구분의 비중이 좀 클 수는 있겠으나 결국 인생에서 만난, 기억에 특히 남을 만한 친구라면 모두 U 안에 들어가겠으며 나아가 이 책을 공감하며 함께 읽는 독자 모두가 U입니다. 이제 책 제목을 다시 보죠.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 추억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눈을 한 친구들 모두가 그 "너"이며 YOU이고 또 우리 독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벗들에게서 빛의 속성을 발견하면 우리 역시 그들의 추억 안에서 환히 빛나는 빛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는 이름일까(p256)."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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