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 리더의 14가지 핵심 가치
이재기 지음 / 샘솟는기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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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실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우선 4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극적인 행적이 일단은 마무리된 후 그를 의심하거나 부인하기도 했고 또 눈물을 흘리며 이를 참회하기도 했고 마침내 스승의 부활을 목도한 후 완전한 사도, 성도로 거듭난 그의 제자들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바로 사도행전이 후속편(?)으로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행전은 기존의 열두 사도 외에 새로운 주인공인 바울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분은 초기 기독교를 조직으로나 이론상으로 튼튼한 토대를 놓은 큰 기여가 있습니다. 바울을 데뷔시킨 경전으로서도 사도행전은 너무도 중요한데, 지금 이 책 저자인 이재기 목사님은 이로부터 "리더십의 모범"을 추출해 냅니다. 


한국은 당연 기독교 전래의 역사가 짧으나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7년 평양 대부흥(p23)을 계기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들 평가합니다. 어찌보면 기독교에 관한 한 완전 불모지나 다름 없던 곳에서 이처럼이나 많은 이들이 해당 종교를 신봉하게 된 것도 하나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만'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대신) 일하신다." 이는 허드슨 테일러의 말이라고 하는데 기도의 힘을 역설한 명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힘이 한계를 만났을 때 주저하지 말고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왜 기도를 하지 않을까요? 아마 우리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오만함이 우리 마음에 깃들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간절히 원하고 기도한다는 건 그 순간 그분의 절대적인 힘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과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보다 기도에 헌신해야 한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영향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p25)." "부활의 증인으로서 앞으로 열두 지파에 사역하기 위해서는 열두 사도의 충분한 인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가롯 유다의 빈 자리를 채워) 맛디아를 포함시키게 되었다(p26)." 저자의 말입니다. 물론 신약의 시대에는 이미 열 지파가 자취를 감췄지만 여튼 Jews and Gentiles, 세상 만방의 길 잃은 어린양들에게 기쁜 소식을 고하려면 스승을 배신하고 제 스스로 목을 맨 악당을 대신하여 영성과 능력 가득한 사도가 들어와야 했던 거죠. 이 역시 맛디아의 선출 과정에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겠고 그 결과 맛디아의 이름을 후세가 기역하게 되었겠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마치 공산주의와도 비슷한 원리에 의해 작동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공산주의와 닮았다기보다는 태초 이래 인류가 염원하던 바를 초기 공동체가 몸소 실천에 옮겼고 이를 공산주의가 차용하여 그 선전에 쓴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결코 그 구성원이 만족하는 바를 현실화한 적이 없었죠. 혹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 모두는 소련이 선도했을 그 좋다는 공산주의 사회의 혜택을 누리는 중이었을 겁니다. 


"거룩이 능력이다(p89)."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거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교회의 세속화, 타락, 불신 풍조의 자초 등에 큰 우려를 나타냅니다. 물론 교회 외적인 곳에서 교회를 부당한 시선으로, 편견을 갖고 바라보기도 하며 때로는 악의적인 폄훼를 합니다만, 그래도 성도들은 스스로를 반성해 봐야 합니다. 어쩌다가 교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무엇보다 불신자의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아야 하며 존경을 얻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길을 걸었던가? 예수라면 지금 나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살았던가? 이 질문에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단 열 명의 의인만 있었어도 심판을 면하고 처참하게 불 속에서 파멸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이 이처럼 타락한 건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성도들이 성도답게 살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성도들이 마치 소금기둥으로 화한 며느리처럼 자꾸 세상의 사치와 향락에 눈을 돌리기 때문에, 세상 전체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도는 세상에 휩쓸리고 그를 추종할 게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야 합니다. 물론 남 위에 군림하는 가짜 리더십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몸소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섬기는 리더십으로 세상을 깨끗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거룩이며 세상과 나 자신을 바꾸는 능력이고 그 안에 성령이 임재하는 증명일 것입니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초기 모티베이터인 새무얼 스마일즈는 "천재는 감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인격자는 존경을 부른다"고 했습니다(p147). 우리는 무엇이 부럽습니까? 천재보다는 인격자가 되고 싶지 않을까요? 저자인 이재기 목사 역시 쟐생긴 미남이라는 평가보다는 훌륭한 인격의 힘을 인정 받고 싶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어 성경 속에 인물이 나열된 순서는 나이나 알파벳 순이 아니라 그 인격의 완성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바나바가 선두에 언급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록에서는 서서히 바울이 앞을 차지합니다. 이는 바울이 그 인격의 힘으로 이미 성도들 사이에서 확고한 리더의 자리를 다져 나갔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도 이처럼 돈이나 외모나 헛된 정치질 따위로 남 앞에 설 게 아니라 참된 인격의 평판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합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p173). 어떤 마귀는 참으로 교활하여 그저 의인임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타인을 마귀로 규정하여 제 정체를 감추려 듭니다. 그런 얕은 수에 누가 속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죠. 물론 마귀에 지목당한 자 역시 만만찮은 마귀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선수를 친 그 마귀만큼 악독한 놈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술수를 잘 쓰는 마귀만큼 성도들이 경계헤야 할 녀석은 없습니다. "가장 강한 성도가 소매를 걷어붙이면 마귀가 이를 비웃으나, 가장 약한 성도가 기도를 하면 마귀는 두려움에 떤다(p177)." 마귀는 어차피 중상모략자(diabolic)이므로 그가 무슨 모습을 하고 방해를 한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놈은 본디 해 오던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며, 문제는 성도가 제 할 일이 기도임을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리더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남한테 받은 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이기적이고 좁은 마음으로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결국은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소통해야 합니다. 현재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폐쇄적이라는 건데, 바울이 유대인들과 생판 모르는 이방인들을 방문하며 사역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종래의 고루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영향력 아래 놓인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이방인보다 복음화가 더 어려웠습니다. 이런 절대 난관을 딛고 바울은 지중해 세계를 기독교의 권역 안에 넣는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있는 오늘의 성도들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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