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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유난 떨며 삽니다 - 소심한 사람이 세상에 던지는 유쾌한 저항
박현선 지음 / 헤이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저항이 있어야 마찰이 있고 그럼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성된다.(p8)" 한국은 확실히 어느 집단이건 다른 사람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저자 머리말 중에도 나오듯 공동 작업 중에서 몸이 아프다고 빠지고, 뭔 사정이 있다고 빠지고.. 이러면 그 사람은 다음부터 모임이나 조직 중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 사람은 조만간 퇴사를 해야 할 분위기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핀란드에서 생활하며 이렇게 한국식으로 길들여진 마인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지인들의 행태에 당혹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을 따라서, 나도 그냥 내 생각 표현하고 싶을 때 그대로 표현하기로 하자고 마음 먹고 그대로 해 보니, 1) 의외로 마음이 편하고 2) 핀란드인들과 더 소통이 잘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뭣보다 일단 내 마음이 편해야 이게 정답이었구나 싶겠는데, 그걸 넘어서 현지인들과 더 공감이 잘되기까지 하니 일석이조입니다. 이게 핀란드식 개인주의라면 혹 한국에도 자일리톨처럼 셩공적으로 이식될 수 있진 않을까요.
우리는 어느 조직에서라도 어떤 질문을 제기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아직도 지배적입니다. "좀, 원래 그런 줄 알고 넘어가면 안 되겠니?" 이처럼, 저자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저 튀지 않고 남들 하는 건 다 해 주면서 무난하게 분위기에 묻어가는 방식이 모범생이라며 칭찬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건 개인이건 관성이 생깁니다. 관성(p19)은 물론 물리계를 지배하는 제1법칙이지만 여기에만 지배되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조직이건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혁신과 창의를 강조하는 시대라고도 하니 저런 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에코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좋은 줄 압니다. 나도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고 동참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데 알고 보니 가짜 에코였다, 이런 에코백(p35) 하나 생산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탄소가 소모되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는 마케팅을 두고 "그린 워싱"이란 말도 쓰곤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분리수거를 놓고 더 많은 고민이 이뤄집니다. 애써 분리배출을 해 놓았더니 소용없는 짓이었더라, 뭘 어디에 분류해야 하는지 아직도 기준이 모호하다 등등... (이 비슷한 이야기가 "그거 다 소용없대"라는 말과 함께 이 책 p49 이하에도 마침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시민들은 대개 착하기에 그 나름 고민을 하고 최선이다 싶은 선택들을 합니다. 아파트 같으면 동 규약을 정해서 일단은 고대로 모두가 따르기도 합니다. 무엇이 최선인지 정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으나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자는 게 저자와 그 남편분(p37)의 선택이었던 듯합니다. 이런 모습은 흐뭇하고 어디에서건 공통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연 플라스틱은 절대 악일까요? 바다에 버려지는 폐 플라스틱 때문에 해양 생물이 죽어간다고 하는데 이게 걔네들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패류를 섭취하며 생물 농축이 이뤄지면 결국 우리한테 끔찍한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는 거죠. 그러니 플라스틱은 안 쓰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플라스틱이라는 게 특히 지난 20세기 동안 생필품 가격을 낮추고 우리한테 편의를 제공한 게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저자도 이 책 곳곳에서 "그래도 얼마나 편한 게 플라스틱인데..." 같은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 놓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아직 채 대안이 마련되기 전인데 그 끔찍한 해악이 발견되어 눈물을 머금고 작별을 해야 한다는 게...
미니멀리즘은 이 역시 마케팅이 교묘히 유도하는 또하나의 트렌드일 뿐 그 안에는 엉뚱하게도 맥시멀리즘이 감춰진 건 아닐까?(p73) 디드로 효과라고 해서 하나를 구매하면 그와 연관된 상품을 또 줄줄이 구매해 줘야 하는 역작용이 생깁니다. 이러면 최소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됩니다. 결국은 누가 이게 좋다더라는 걸 생각 없이 따라할 게 아니라 진짜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일지 평소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냉철하게 계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주의자(p93)가 되되, 현명하게 고르고 따지는 물질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사람이 물건을 쓰다 보면 지겨워지고 남 보기엔 멀쩡한 걸 내다버리고 싶고 한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십 수 년 전에는 아나바다 운동 같은 게 유행도 했죠. 그런데 작정을 하고 나는 남들이 뭐라 하건 이걸 끝까지 쓰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p115에는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업부터가 벌써 생산단계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니 힘 없는 개인이 어떻게 대응을 하겠습니까. 결국 남들 사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건가. 저항(저자가 이 책에서 자주 강조하는 주제어)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는 건가. 이런 회의가 들 수밖에 없네요.
전통(p150)이란, 알고보면 허상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전통이, 다른 문화권에선 얼마나 혐오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지요. 식습관부터 해서 이런 예는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전통과 인습 사이

의 경계도 모호합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인 "관성"과도 아주 가까이 닿아 있다는 걸 떠올리면 더욱 꺼림칙합니다.
한국에서 현재의 음식쓰레기(음쓰)를 처리하는 방법은 아직 최적화되지 못했습니다. 갈아서 버린다고 해도 이것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 하수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모릅니다. 핀란드에서는 콤포스터(p188)를 사용하여 쓰레기도 줄이고 친환경 농업에도 활용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노리지만 저자는 좀 복잡한 생각을 갖습니다.
"그랬다간 호적에서 파버릴 줄 알아!(p233)" 자녀에게 아내의 성씨를 물려주고 싶다고 하자 그 부모님이 저런 취지로 말씀하셨다는데 이게 한국 사람이 아니고 어느 핀란드인이 겪은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전통 관념에 얽매어 때로는 부모자식 간의 천륜보다 어떤 컨벤션 같은 걸 더 우선시하는 게 동서양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비합리와 인습을 타파하는 데 어떤 거창한 혁명 같은 게 꼭 필요한 건 아니고 이런저런 소심한 시민들이 별로 유난스럽진 않으면서 진지하게 조금씩 의문을 제기해 가며 그야말로 소심하게 의견을 모아가면 언젠가는 그런 거대한 굴레, 족쇄 같은 것에도 저절로 녹이 슬어 알아서 툭 부러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