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성공학 (미래지식)
데일 카네기 지음, 김지현 옮김 / 미래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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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 사람이 어떤 적성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자아실현을 꾀하건 간에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이를 이룰 방법이 없습니다. 성취도 성공도 모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손에 넣을 수 있으며 동지와 우군을 얻고 여러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데일 카네기는 예의 구체적 실천 방법론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영화 <대부>에는 "친구를 가까이하며, 적은 그보다 더 가까이하라"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저 영화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쓰인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본 오브레곤 장군의 흉상 어느 문구가 소개됩니다. "네가 공격하는 적을 두려워하지 말라. 네게 아첨하는 친구를 두려워하라.(p60)" 조지 5세 왕은 "값싼 칭찬을 하거나 받지 않도록 가르쳐 주세요."라는 금언을 걸어 놓았다고도 책에 나옵니다. 어떤 평가나 진단은 객관적이거나 그에 최대한 가까워야 하며, 몇몇 편협하고 미성숙한 이들이 모여 쑥덕거리며 만든 터무니없는 세계관 따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아주 좁은 인간관계에 집착하다가 더 큰 네트웍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편집자(p94)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사람들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라면 사람들도 역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참 핵심을 찌른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유명한 작가들은 혼자 고고한 척하는 타입보다는 (별 매력도 장점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과(도) 널리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물론 에밀리 브론테 같은 은둔형 작가도 없는 건 아니지만 이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하며 요즘처럼 대중 사이에서 널리 호응을 얻어야 할 풍조라면 작가는 항상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인싸라야 할 듯합니다. "쇼를 찾아 준 내 청중(audience)들을 사랑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어떤 대장장이의 아들로부터 그를 극구 찬양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자인 저도, 이미 널리 유명세를 얻은 분이라고 해도 이런 편지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의외로 느낀 적이 많았는데 이를테면 모 대학 교수 P 선생님 같은 분이 그랬습니다. 어떤 고등학생한테 받으신 편지가 그렇게나 기분이 좋으셨나 본데 그 고교생이 이후 교수님한테 발탁되어 출세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저 대장장이의 아들 홀 케인은 이후 로세티의 주선으로 세상에 알려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큰 부와 명성을 쌓았다고 하죠. 저자는 그런데 여기서 "로세티 역시 홀 케인 이전 다른 누군가가 그를 칭찬해 주었더라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p155)"라고 합니다. 이 대목은 솔직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p175에는 석가모니와 링컨의 말이 인용되는데 둘 다 어떤 분쟁을 미움과 투쟁 기술로 풀려 들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링컨은 누군가를 논쟁으로 이기려 들지 말라고 합니다. 의도했던 효과가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부르기 쉽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럼 그 대안은 (논쟁 외에) 무엇인가. <Bits and Pieces>라는 매체에 (아마도) 저자 본인이 기고한 내용을 이 책에서 다시 요약하기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견을 환영하라

2) 직관적인 첫인상을 마냥 신뢰하지 말라

3) 먼저 상대의 말을 들어라

4) 합의가 가능한 영역을 찾아라

5) 상대가 관심을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적어도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과 특별히 원수를 지지 않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이라고 합니다. p183에는 어느 젊은 변호사 S(아마 데일 카네기의 지인인가 봅니다)의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나오는데 법정에서 어느 판사가 "해사법의 공소시효에 의하면..."이라고 말하던 중 이 변호사 S가 대뜸 "판사님, 해사법에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라고 타당한 지적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해사법(maritime law)이라 해도 개별 조항에 형사 처벌 조항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 경우는 아니었나 보죠. 이 판사는 그 젊은 변호사의 총기와 명석함에 감복했을까요? 그렇기는커녕 옹졸하게도 이후 재판의 진행에 내내 젊은 변호사는 곤란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판사의 협량이 비판 받아야 마땅하겠으나, 젊은 변호사는 재판 중 그를 공개 망신 주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조용히 착오를 알려 주었어야 더 현명했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판사도 젊은이의 사려 깊음에 고마운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자신의 잘못을 고쳤겠죠. 


요즘 반려동물 데리고 다니는 이들이 많은데 공공장소에서 지키야 할 바를 안 지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목줄을 하지 않고 개를 끌고 다니다 경찰에게 지적을 받았고, 잘못을 모두 시인했으며 이 선택이 훌륭했다고 자평을 합니다(p196). 책을 읽으면서 이 대목이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불필요한 논쟁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악화시켜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는 게 요지이지만, 만약 데일 카네기가 작정을 하고 그 경관과 논쟁을 벌였다면 과연 어떤 논거를 내세웠을지 말입니다. 여튼 근엄하기만 한 이미지를 깨고 이런 실수도 솔직히 털어놓는 저자가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데일 카네기가 얼마나 예전 사람인데 미국에는 벌써 그때에 이런 관련 법규가 다 마련되었다는 뜻이어서 놀라웠습니다. 


p222에는 중국의 금언이 하나 인용됩니다.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사람이 (결국) 멀리 간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격한 어조를 상대를 단박에 굴복시킬 생각을 하지 말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상대를 설득시켜 나가는 방법이, 거의 언제나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gadfly of Athens라는 별명이 있었던 소크라테스 역시 가장 큰 설득술로 이런 방식을 꼽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이를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빼어난 화술로 그를 설득, 설복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나의 의견을 슬쩍 눈치채게 한 후, 적당히 시간을 주어 숙고하는 동안 마치 자신 스스로 그 의견을 떠올려 생각을 바꾸게 된 것처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네요(p235). 이러면 이 사람은 스스로 의견을 바꾼 것이지, 누구한테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존심을 다치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이야말로 조직의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이미 공연하기로 모든 일정이 잡혔는데 그저 목 상태가 안 좋다는 이유로 그냥 공연을 취소해 버리자고 우기는 가수(p254)가 있습니다. 공연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 제정신입니까? 당신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 우리의 손해가 얼마나 클지 생각해 봤나요? 당신을 보려고 먼 데서 찾아온 수백 명의 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당신에게 거액의 손해 배샹을 청구하고, 다시는 무대에 못 서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 기획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 시점에서 기획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그 가수를 잘 설득하여 무대에 예정대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목이 안 좋으시다니 어쩔 수 없죠. 손해가 크겠지만 말이에요. 금전적 손해보다 더 아쉬운 건 당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거지만 어쩌겠어요. 뜻대로 하셔야죠." 제멋대로였던 가수는 이 말을 듣고 결국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전 잡지들 중 "리뷰"라는 말이 이름에 붙은 건 대개 문학 저널이더군요. p291에는 유명 설교자 비처의 아내분이, 남편의 설교 원고를 읽고 "이 글은 노스아메리칸 리뷰에 실려도 될 만큼 훌륭하네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비처 목사는 순간 아차! 싶어서 원고를 바로 찢어버리고 더 쉬운 말로 고쳐 썼다네요.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말고, 당사자가 스스로 깨닫게 돌려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p328에는 우드로 윌슨이 저지른 실수(저자의 판단으로는)를 하나 언급합니다. 국제연맹을 창설하려는 그의 의도는 최상의 것이었으나, 정작 국내의 카운터파트인 공화당 측에 이 기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어 가입을 쉽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수십 년 후 제2차 대전의 한 단초가 되어 새로운 비극을 낳기에 이르렀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방안이라도 상대의 자발적인 동의를 유도할 수 있어야 그 올바름이 현실에서 증명된다는 것, 타인과의 공감이 모든 관계의 초석이 된다는 저자의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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