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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수필가, 베스트셀러 저자인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더군요. "마지막이란 말이 왠지 슬프게 느껴지고 특히 이어령 선생님 같은 분은 마지막 아니라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좋은 말씀 들려 주셔야 하는 스승인데 책 제목을 보며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 보니 여전히 정신이 건강하시고 젊은이들 몇 배의 총기와 활력을 갖고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독자로서 안도가 되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날씨처럼 변하는 게 감정이지요.(김지수 인터뷰어)" "마인드로 채워지기 전의 그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웠던 영혼은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거야.(p23)" 빈 공간은 화나는 마음, 기쁜 마음 등 다양한 변덕이 교차하지만 빈 공간은 여튼 그래도 있죠. 그럼 그 빈 공간이 평상시에(심지어 빅뱅과도 만났던)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느냐? 바로 그게 영혼이라는 게 선생의 뜻입니다. 이렇게 글로 읽어도 좋지만 김지수 저자처럼 현장에서 저런 석학의 말을 바로 그 기운을 느껴 가며 들었다면 더 깊은 울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서양이 전통적으로 이원론 바탕에 선 건 맞으나 여기 영혼을 추가한 삼원론은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시고 독일쪽에서 많이들 하던 거죠.
"왜 연구자가 되지 않으셨습니까?""논문 통과가 되려면 주 수십 개를 달아야 해. 그게 싫었거든.(p40)" 사실 연구자라면 앞선 학자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학계에서 지금 어떤 논의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 훤히 꿰뚫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석을 위한 주석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의 노력을 통해 기존의 성과를 알 만큼 안다는 증명인데.... 선생님처럼 천재형 두뇌에게는 그저그런 선배들의 밋밋한 주장들을 읽는 자체가 고역일 수 있었겠죠. 그 자유로운 상상력이 천재의 전유물인데, 따분하게 기존의 성과를 더듬는 게 서로 안 맞기는 할 듯합니다. 수시로 쏟아지는 그런 영감의 샤워를 받아 본 천재가 아니니 그저 추측이긴 합니다만.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읽고 또 읽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세 번을 읽었으니.(p41)"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저 대작을 고전 읽기 의무감으로 읽지만, 저런 천재는 라이트노벨처럼 술술 읽힐 것입니다. 평소의 관심사이기도 하니 얼마나 재미가 나셨겠습니까. 선생은 과연 천재라서 p25 같은 곳에서 빅뱅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김지수 작가에게 설명도 해 주는데 이 과정에서 "눈을 빛내며"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재(p77)들이 갖는 공통점은 신이 나서 이야기할 때 그 눈에서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채(p21)가 난다는 점이기도 하죠.
"라스트라는 말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라스트 콘서트, 라스트 인터뷰....(p47)" 이 앞부분에서 이어령 선생은 "책은 꼼꼼히 읽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 건너뛰면서 읽는다"고 했습니다(<카라마조프...> 같은 건 예외). "(인생의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 전체를 다 보는 게 아니라) 불현듯 뛰어들어가 후반부만 보는 거랑 같지."라고 하시는데... 이 대목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젊은 시절이라면, 그것이 화려하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풀 무비를 처음부터 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김지수 저자(인터뷰어)가 고마운 설명을 하나 달아 주네요. "매 순간이 지금 이 순간과의 헤어짐이니까요." 그것도 참 명언입니다.
따님(p29)도 암으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선생께서도 지금 투병 중이라고 합니다. p57에서는 선생이 암(癌. cancer)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놈이 라틴어로 게(영어의 crab)라는 뜻이라고 하시네요. 본문 중에도 그 비슷한 뉘앙스로 말하지만 몸에 암이 퍼진 게 마치 게가 여덟 다리를 편 모습 같다고 해서 병명이 그렇게 붙었지요.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신이 네게 준 게 무엇이냐? 차라리 신을 저주하고 죽어라.(p59)" 기독교 구약 욥기의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이 구절들이 너무나도, 현세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심경을 잘 대변하기에 심지어 이어령 선생 같은 분도 결국 언급을 하시나 봅니다. 독자는 그저 선생께서 힘을 내시길 기원할 뿐입니다.
니체는 마지막 십 년을 미쳐서 식물인간처럼 살다 죽었다(p32)" 그렇게나 똑똑한 사람이 말년에 발광하여 토리노의 말 같은 사건을 겪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는 게 참 불쌍하죠. 아마도 투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선생이 특별히 감정이입하실 만도 하겠다고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선생은 토리노의 그 광장에서 채찍을 맞는 말, 그리고 대신 맞으려 들었던 니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행을 봅니다. 여튼 선생은 여기서 어느 영화 <토리노의 말>로 화제를 돌리는데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루말할 수 없이 지루한 영화(선생이나 김 작가에겐 전혀 지루하지 않을)라고 평합니다. 좀 뜬금없지만 그래도 한국은 반도라서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나은 창조성의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좀 국뽕 같기도 하지만 다른 분도 아니고 선생의 평이니 일단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영어에서 직업을 콜링(calling)이라고도 하는데 장 칼뱅의 직업소명설이 남긴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 콜링이라는 다의적 어휘를 선생은 p31 등 여러 군데에서 다양하게 풀어 주기도 하네요.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라고 하셨지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p70)." 김지수 작가의 이 말은 중의적으로도 들립니다. 여기에 대해 선생은 "맞아, 잊고 있던 것 중에 진실이 있어. 은폐가 곧 거짓이야."라고 답합니다. 반대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반대말을 안에 품는다는 게 형식논리상으로는 좀 재미있게도 들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뭘 의도하시는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잠시 달 말고 손가락도 구경 좀 했습니다.

"... 이게 곧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이야. 할아버지, 증조부, 증조모... 이분들 중 단 한 분이라도 잘못되셨으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질 않았어.(p86)"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애석하다 뭐 어떻다 할 느낌과 판단의 주체가 없는 건데 태어나서 이처럼 고마움을 느끼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저 앞 p22에서 선생은 "고려 청자는 수백 년 동안 무덤 안에 있었어. 내 눈 앞에 없었고 있는 줄조차 몰랐어도 고려 청자는 수백 년을 존재했다는 거야."라고 합니다. 이 구절들을 연결시키면 선생이 생각하시는 답이 나올 듯합니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못해(p76)." 석가모니는 네 가지 고통 속에 "태어남"을 넣었지만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게 대번에 보이는데도 어른들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프레임에 갇혀, 혹은 권위에 짓눌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에도, 똑똑해서 항상 사람 받았던 형과 달리 자신은 언제나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지적했기에 오히려 경계 받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항상 그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 것을 경고하며,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해야지!"라며 김지수 작가에게 호통을 칩니다(p97). 그래도 사회 생활 하면서 마냥 매번 의문을 제기할 수야 있겠습니까. 설익고 미성숙한 느낌을 함부로 표현하다가는 넌씨눈 소리나 듣기 쉽죠. 선생님은 천재니까 열외가 되는 거고.
"우리는 유교의 영향으로 자신의 추함을 숨기지만 일본 작가들은 숨기지 않아.(p121)"라고 하시지만 앞에서 김지수 인터뷰어의 말도 그렇고 작가들이 어디까지나 안 숨기고 드러내는 거지 일반인들은 한국인보다 더합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작가한테 그런 특별한 위상을 허용해 주는 거고(일본뿐 아니라 문명국은 어디라도 마찬가지) 우리는 작가 아니라 누구라 해도 그런 예외를 허용해 주지 않는 거고 말입니다. 이렇게 된 건 다른 나라에서는 특별한 지적 훈련을 거치고 일정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대개 글을 쓰는 반면 우리 나라는 개나소나 다 작가를 참칭하는 풍조라는 데 기인한 게 아닌가 싶지만요. 다만 김승옥 작가(이분도 인생 후반부에 기독교에 귀의했죠)에 대한 언급은 흥미롭습니다.
확실히 작가는 외모도 좀 빼어난 구석이 있거나, 적어도 자신의 사유 그 성과와 흔적이 외양에 배어나는 분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수 인터뷰어는 <우상과 이성> 시절의 이어령 선생을 돌아보며 "날렵한 턱선에 수려한 콧날... 흑백사진 속의 잘생긴 사내(p157)" 등의 표현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모친(ㅎㅎ)도 예전에 그렇게 이어령 저자의 책을 좋아했던 데에 그런 영향도 있었는지 모르겠네요ㅋ
"천재가 있으면 특별한 교육을 시켜야 해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눈곱을 떼어내어 붙여 주면 그게 화가가 되고, 귀지 좀 붙여 주면 그게 음악가가 되는 거에요." 이런 그의 천재관은 어째 좀 슬프게 들립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도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태어나면 배달 일을 하게 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한국이 유독 평준화를 강조하는 풍조다 보니 천재들이 그 재능의 가치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 원인이 있습니다. 반대로 좀 모자란 백수가 협찬질에 맛을 들여 비참한 현실을 잠시 잊은 후 뭐가 싫다느니 뭐니 이상한 불평을 꾸물꾸물 늘어놓기도 하는 여유가 생기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선생은 그래도 특유의 문재(文材)를 살려 세상에서 널리 인정을 받은 분이고 (그 살아온 궤적이 크게 다른 데도) 마치 드골 내각에서의 앙드레 말로 같은 사례에 비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전 정원식 내각(p168)에서 약간 소외 받으신 이야기도 여기서 풀어 놓으시고, 또 게임이론 창시자 잔 내시의 생을 다룬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놓고 주인공의 삶에 깊이 몰입(p201)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이 40페이지 이상 이어지며 당신만의 천재론을 들려 주시는데 솔직히 이렇게 어두운 색깔일 줄 몰라서 놀랐습니다. 그래도 천재는 이데아를 직시하는 순간이 잦아 그 동안이라도 행복하기 때문이죠. 계속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세상에서의 쓸모"입니다. 이는 사실 천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아픔이죠. 특히 한국 같은 나라에서. 그런데 정 머리가 좋으면 다른 영역으로 쉽게 방향을 틀어 돈 되는 분야에서 두각도 나타내고 인정도 받고 잘 삽니다. 아무리 한국이라도.
"앵프라망스라고 아주 엷은 막을 느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말야. 그런데 그걸 뚫는 게 바로 (나한테는) 영성이라네.(p218)" 예를 들어 개신교 안수기도 같은 걸 할 때 당사자(놈이 아주 악질이라든가 하는 이유로)가 느낄 수 없어야 마땅한 이상한 뜨겁고 후회스럽고 눈물 나는 것 같은 체험이 그런 걸까요? 그게 영성이고, 앵프라망스를 꿰뚫는 순간이다... 흠... 보통 사람 사이에선 제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엷은 막 같은 게 아니라 당연히 장벽이 느껴집니다. 안 그러면 그게 이상한 건데... 여튼 이런 한국 최고의 두뇌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기막힌 게 돈이라네. 핵심 교환은 세 가지야. 첫째 피, 둘째 언어, 셋째 돈. 돈은 돈의 교환을 해야지 피의 교환을 하면 안 되는 거거든? 그런데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재벌가는 정략 결혼을 한단 말야.(p262)" 이 대목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선생에 대한 특별한 회고를 하는데 이 중에는 선생이 젊은 시절 프랑수아 모리아크(당시 표기로 "모리악")를 만나고 쓴 칼럼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모리아크는 요즘 가톨릭 성향 작가 정도로 기억되지만 1970년대에는 여러 문제적 장편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분인데 선생이 그런 분도 직접 만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본문 p42 이하에는 선생이 그 특유의 박식으로 inerview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 있는데 비록 마지막이란 수식이 있으나 이 대담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특히, 가슴 뭉클하게 읽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