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멜로디 - 성수동 아티스트 할머니가 전하는 따뜻한 일상의 선율
허제희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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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차분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시는 어느 할머니, 한창 말 안 듣고 말썽 필 나이의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 허 대표님 말씀만은 잘 들을까요? 허테레사 대표님은 "차분한 말투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카리스마 덕분(p43)"이라며 그 비결을 털어 놓습니다. 할머니와 아이들 사이에 나이 차는 엄청나죠. 그런 엄청난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격의 없이 아이들을 대하며 음악에 대한 자신의 통찰과 지혜를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핵심입니다. 


대표님의 인생 역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피아노 원장님으로만 살아 오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어느날 화덕 피자를 굽고 더불어 커피도 파는 가게를 창업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요즘 세대와 예전 분들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처음에는 혹시 아는 학부형이라도 만날까봐 신경을 많이 쓰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연세 있는 독자분들은 "학생 가르치는 선생님이 갑자기 장사를 하시려니 창피 하기도 했겠지"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다른 옷을 입는 데 대한 어색함, 쑥스러움"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어떤 직업에 대한 관점 차이라기보다요. 


그런데 여기서 허 대표님의 말씀, 혹은 깨달음의 토로가 독특합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내가, 바닥을 쳐 보고 나서는 오히려 자존감이 솟아올랐다.(p28)" 많은 이들이 감정의 침울 때문에 고생합니다. 이때 보통 하는 말들이 "바닥을 치고 나면 오히려 기분이 업사이클된다" 정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감정의 기복 같은 문제하고, 허 대표님처럼 생계 관련이나 대인관계에서 큰 상처, 혹은 파탄 같은 걸 겪은 후 느끼는 자존감의 하락은 차원이 다른 문제 같습니다. 이런 걸 겪고 나서 "바닥을 치고 올라온 자존감"을 말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내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준 화덕 피자! 저정말 고마워!" 한때 자신의 인생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사업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 정도로 여유를 갖고 말하는 거죠.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 보면 "건물주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대표님은, 자신 세대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답이 돌아오자 "까르르(p50)" 웃음을 터뜨리고, 아이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런 철없어 보이는 답을 하는 아이들도 허 대표님 눈에는 예쁘게 보입니다. 아이들 때에는 더 막연하고 더 이상화한 꿈을 꾸는 게 보통인데 "건물주가 되어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같은 세속적인 생각이 깔린 듯한 답이 돌아오니 웃으실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 아이들도 허 대표님은 마냥 귀엽게 볼 수 있는 겁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p82) 우리 모두가 되면 그날로 세상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허 대표님의 평온한 듯 은근 드라마틱한 삶은 책의 소재가 되고 방송에서도 어느덧 주목하게 됩니다. 방송을 보다 보면 범상한 듯 비범한 우리 주변 이웃들의 놀라운 삶에 대한 내용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걸 봅니다. 40년을 레슨하셨으니 그 중 걸출한 제자 한 명 정도 안 나올 리 없습니다. 한 분이 연예인으로 데뷔하였고 그 사연을 허 대표님의 학원에서 일부 촬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허 대표님은 TV 프로그램 촬영이 이뤄지는 과정을 다 지켜 보았고 그 복잡한 일이 ;여러 인력들의 협력으로 저처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걸 감탄합니다. 인새의 이치에 대한 관조와 통찰이 여기서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p109에는 허 대표님이 가꾼 아름다운 집을 찍은 사진이 나옵니다. 신산 풍파 겪으면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집 덕분입니다. 나의 성취, 지난 추억, 앞으로의 꿈 등이 고스란히 담긴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노라면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지죠. 이 책에는 이뿐 아니라 여러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허 대표님의 여러 면모를 독자가 엿볼 수 있습니다. 


허대표님은 세례명이 테레사입니다. 허 대표를 천주교 신앙으로 이끌고 오랜 세월 곁에서 친구로 친척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준 이종사촌분(p133)이 있습니다. 돈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을 때 이종사촌분은 일단 수락했다가 다음날 거절을 통보해 오더랍니다. 대표님은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일단 수락을 하셨다는 건 형편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시 안된다고 난색을 표하신다면 그건 계산이 들어간 반응이다.... 이렇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요. 물론 제3자가 구체적인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꼭 그래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족의 반대가 있었을 수도 있고, 이 경우 그분은 우선순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다시 사이가 좋아지신 건 다행이며 갈등과 불화를 푸는 대표님만의 방식에 오히려 더 눈길이 갑니다. 


대표님은 어린 학생들한테도 존대를 하시나 봅니다. "줄을 서세요!" "우리가 가장 먼저 와서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요?" 어떻습니까? 만약 그 자리에 나이 중년에 이른 사람이 하나만 있었어도 여기가 한국인데 그 여학생한테 대번에 한 마디 들어갔을 겁니다. 버스에 타고서도 그 학생의 눈치를 또 보고, 어른이면 어른으로서 의무와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시는 게 결론인 걸 보고 독자로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 제가 다 죄송해지네요. 그 여학생은 어디 가서 비슷한 짓 하다가는 큰일날 줄 알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p184)이란 표기가 책에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천주교식 세례명까지 있으신 저자분인데... 읽어 보니 동창이신 목사님에 대한 사연이었습니다. 책 페이지마다 생의 모든 국면에 대해 달관하신 저자의 대긍정  대포용의 자세가 돋보입니다. 저도 이런 경지 반의 반의 반이라도 이해할 날이 와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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