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포식자들
장지웅 지음 / 여의도책방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진짜 문제를 보는 사람 눈에 돈이 (비로소) 보이기 마련이다(p73)." 사회 초년생이라서 돈의 흐름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모른다면 우선 주식 투자를 소액이라도 해 보는 게 낫다는 권유가 있습니다. 이때 전문가 누구누구의 추천 같은 걸 듣고 따라하는 식이라면 아무 소용 없고, 자신이 직접 정보와 뉴스를 분석하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시도해 봐야 합니다. 물론 잘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큰손, 기관투자가, 재벌 상속자 등이 무슨 생각을 갖고 결정을 하겠는지 생전 처음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돈을 벌려면 돈 많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입장에 먼저 서 봐야 한다"는 단 한 마디로 그 내용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니 돈 없는 사람이 그 입장에 어떻게 서?"라든가, 결국 가진자의 입장만을 충실히 대변하는 머슴의 논리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만약 "주식해서 돈 좀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하면 아무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습니다. 똑같습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나 완전히 틀을 당장 갈아엎을 게 아니라면 누가 경쟁에서 구태여 손해를 보고 싶어하겠습니까. 이 책의 내러티브가 마음에 안 든다면 최소한 "게임에서 패자가 되지 않는 소소한 기술 전략 소개" 정도로만 받아들여도 좋을 듯합니다. 


"진정한 포식자들은 이미지가 아닌 실익을 따진다(p73)" 이 책 초반부에는 어느 유명한 금융인이자 책 저자분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자세히 나옵니다. 이 저자분의 입장은 결론적으로 "그가 틀렸다"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 유명 전직 금융인이 정계에 반쯤 발을 들여 놓았었는데 왜 더 밀고 나가지 않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현재 합당이 논의되는 어느 정당에 소속된 분인데 아직 국회의원직은 얻지 못했습니다. 여튼 이 책 저자는 "이 게임판에서 수익을 얻고 나오려면 현실의 냉정한 논리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차피 사회에서 논쟁을 벌여봐야 결판이 나지도 않는 논쟁에 몰두할 게 아니라 무엇이 돈이 되겠는지에만 집중하자는 겁니다. 


예전에도 한국에는 굴지의 재벌들이 있었지만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고(적어도 지금처럼은), 금융 시장이 완전 개방된 게 아니라서 외국계, 혹은 외국계를 가장한^^ 검머외의 돈뭉치가 국경을 넘어 마음대로 활개치지를 못했습니다. 정부가 권력을 발동해 기업을 부도낼 수는 있었지만(겉으로는 은행의 채권 회수) 지금처럼 이런저런 무서운 사모펀드가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여 남의 기업을 꿀꺽하는 일은 좀처럼 힘들었습니다(정경유착도 있고 해서 보호가 되었고). 저자는 책 곳곳에서 "기업 하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창업주와 그 가족들이 애를 쓰는 줄 아는가?"라면서 예를 들어 SK그룹의 하이닉스 지배를 둘러싼 노력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물론 저자분의 취지는 잘 이해하지만 하이닉스는 본디 LG반도체, 현대전자가 외환위기 당시 떨어져 나와 주인없이 배회하며 사원들이 기를 쓰고 살려 놓은 걸 SK가 이후에 잘 접수한 것입니다. SK는 이처럼 기(旣) 우량기업의 인수에 능한 곳이었죠. 5공, 6공때부터. 물론 "일감몰아주기가 잘 없는 기업(p43)"이란 평가에는 동의합니다. 


p30 이하에는 의미심장한 분석이 나옵니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씨는 오랜 와병 중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마침내 별세했습니다. 이때 상속재산의 최종 처리를 놓고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에 대해 증권가에서 엄청난 분석들이 있었죠.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했는데 이런 추측들은 기본적으로 주요 플레이어들이 어떤 입장인지를 알아야 정확한 결론이 나옵니다. 하우스나 개별 애널리스트들은 대외용으로 온건하게 발표하는 게 있고, 대내적으로는 따로 머리를 굴리고 정보를 수집해 가며 결론을 냅니다. 이 책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와 그 두 따님들이 어떤 입장인지에 대해 (독자가 읽기에 따라) 미묘할 수 있는 추정을 제시합니다. 왜 저렇게 이재용 회장의 안색이 좋지 않느냐에 대해 오피셜한 답변이 있을 수 있고, 뭐 이 책에서 은근 암시하는 듯한 다른 시나리오를 따르자면 또다른 추정이 가능하죠. 참 세상은 무서운 곳입니다. "재벌은 재벌 외에 아무도 모를 다른 고충이 있다(p221 등)"는 저자의 말은, 이 점을 고려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도 들립니다. 가정이 화평한 모든 서민분들은 복 받은 줄 아십시오. 아마 이 책의 다른 부분에 소개된 손 모 전 의원님도 남모를 다른 고충이 있으셨겠죠? ㅜ


"먼저 먹는 놈이 임자였다(p165)" 그만큼 시세조종, 다른 말로 주가조작이 쉬웠다는 소립니다. 저자가 20년 전으로 특정을 하시니 대충 뭘, 또 누구를 염두에 둔 말인지 짐작이 갑니다. 이때 정말 대한민국은 돈의 흐름이 크게 움직였죠. 점쟁이한테 왜 여아인줄 알려 주지 않았냐고 따지자 "소중한 생명이..." 운운하며 둘러대더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은 사람이죠. "역으로 간다"던 어느 스포츠 해설가의 말재주도 생각이 납니다. 


사실 주식투자를 할 때 동업자의 시선(p110)으로 볼 줄만 알아도 양반입니다. 하수들은 아예 시선이라는 게 없거나, 자신에게 그저 목소리가 좋다 얼굴이 잘생겼다 왠지 끌린다 같은 느낌을 준 전문가를 좇아 개인숭배 패턴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런 단계에서 벗어나 "맞아, 나는 소액일망정 주주이니 회사의 주인 중 하나야, 그러니 동업자의 시선으로 봐야지" 정도로만 마음 먹어도 그건 박수를 쳐 줘야 할 일이죠. 그런데 저자는 그것도 곤란하며, "최대주주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맞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리딩방에서 "선생님뿐 아니라 저희와 협업하는 모든 분들이 같은 정보 하에 움직입니다. 그럼 주가가 안 오르고 배기겠습니까?"라는 말에는 바로 혹합니다. 이런 합리적인(?) 판단을 하시는 분들이, 몇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최대주주의 시선으로"라는 제안에 설득되지 않을 이유가 뭐겠습니까. 돈뭉치 사이즈 자체가 아예 다른데요. 아 참고로 리딩방의 저런 정보는 설거지용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좋은 정보를 "제때" 줄 리가 없죠. 


첵 후반부에는 일본에 대한 호된 질타가 나와 다소 놀랐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혹 일본의 안정된 시스템에 대한 예찬이 나오지 않을지 조마조마했기 때문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일본은 우리처럼 기호와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에 도장을 간단히 찍는 시스템이 아니라 한자로(!) 후보자의 이름을 일일이 쓰는 식입니다. 하... 물론 미국에서도 19세기까지 저런 방식을 유지했습니다만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거죠. 상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들 보시고, 저자의 결론은 머지않아 일본은 생산성 저하로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는 겁니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장인정신이 더이상 필요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얍삽한 이탈리아인들이 이 격동기에 가장 앞서나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일본에서 돈 버는 건 현재 대부업체들뿐입니다. 플라자 합의 후 제조업이 무너지고 혁신 정신이 사라진 대가를 치르는 거죠. 우리 나라에도 한때 숙녀 전용 대출이니 뭐니 하는 게 많았는데 ㅎㅎ 물정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와 여성을 존중하는구나 싶지만 전~~혀 아니고 "여성은 겁을 잘 먹어 추심이 쉽기 때문(p311)"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에 대해서도 미래를 암울하게 봅니다. 문화를 정부가 나서서 통제하는 나라에서 알리바바가 아마존이 될 수 없고, 애플이 화웨이가 될 수 없습니다. 위안화가치를 계속 낮춰 저가 수출을 유지하고 싶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환율을 국제시장이 용인하겠으며 기축통화로서의 신인도 획득이 가능하겠습니까?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권경민 사장은 "솔직히, 임동규가 생각해도 강두기잖아?"라고 했습니다. 이 책 저자는 "중국인이 생각해도 달러를 선택할 것 아닌가?"라고 묻습니다. "조증의 중국과 울증의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그 특유의 화병만 버리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말미에 짐 로저스의 예는 좀 뺐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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