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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진상 - 인생의 비밀을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는 엉뚱한 단어사전
최성일 지음 / 성안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라고 해도 그 의미를 곰곰 뜯어 보면 생각지도 않은 심오한 의미를 만나는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일반 독자들 능력으로는 "뜯기"가 쉽지 않기에 이런 책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그 결과가 반갑기도 하고 충격이기도 해서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혼자(혹은 집단적으로) 착각 속에 사는 것보다야 진실을 아는 편이 낫겠죠. 단어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 게, 차라리 속시원하게 "진상"을 아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략 십 년 전부터 내비게이션이 일상화되었는데 책에서는 경로를 안내해 준다며 편의를 제공하려 드는 우리 주변에 온갖 내비들, 인간 내비, 조직 내비, 광고 내비 등 온갖 안내자들이 기실 사이비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독특하게도 작가님은 부모 관계에 그게 빈발하다고 하네요. 저는 남친 여친을 가장한 가스라이터 같은 걸 먼저 떠올렸는데... 그럼 부모 관계에 어떤 가짜 내비가 성행하는가. 원치 않는데도 의대를 가라는 부모, 공무원 시험을 강요하는 부모, 특목고 가라는 부모(p61).... 자녀 입장에서는 하긴 난감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일단 공부해서 남 주냐는 생각이 우선 들며, 그래도 (부모 욕심도 물론 있겠으나) 일단 나 잘되라고 사회에서 나 무시 받지 말라고 번듯한 간판 만들어 주려는 부모님 간섭이 뭐 그리 나쁜 것이겠나, 최소한 인간관계에서 "의도는 좋았다" 정도만 돼도 얼마나 고마운가,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뻔뻔스러운 도둑놈 심뽀로 남을 벼랑으로 몰고 자신은 지갑만 쏙 빼가려는 (그나마 멍청한) 강도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걸 놔 두고 그나마 자신을 돌보려는 부모를 원망한다는 건 좀 생각해 볼 일 아닐까 싶습니다.
제일 무서운 게 거울(p78)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요즘 손쉬운 남탓이 성행입니다. 정치인이 썩었다, 재벌은 해체해야 한다, 뭐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데, 작가님은 거울이 제일 무섭다고 하네요. 거울을 보는 순간 아 저게 나구나, 저렇게 초라하고 저렇게 흠 잡을 데가 많구나. 사실 "진상"이라는 게 나 자신을 향할 때 어찌보면 제일 부담스럽습니다. 누가 나 자신의 허점, 약점, 상처... 이런 걸 제대로 응시하고 싶겠습니까? 예전에 저는 테드 창의 단편을 읽으면서 사람의 급소를 찔러 즉사에 이르게 하는 건 어떤 무공의 비급이 아니라 자신의 나쁜 기억을 모아 한 번에 재생되게 하는 신공이라는 서술을 접한 적 있습니다. 엉터리 같은 선동으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망각하고 과대포장 푸닥거리로 현실을 도피할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의 내실을 다지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일을 안 만드는 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더 높은 우선순위를 갖습니다.
"이별 후에야 사랑의 소중함을 안다(p140)." 이 파트의 결론은 간단히 말해서 "있을 때 잘하자"이겠는데 다소 이기적으로도 보입니다. 있을 때 잘해주지 않았던 것도 이기적이고, 막상 없으니까 아 차라리 걔라도 있는 편이 나았는데, 이 역시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다시 오면 잘해 주겠다는 게 왜 이기적이냐고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내 마음 편하자고, 혹은 꿩 대신 닭이라도 옆에 붙들어 두려고 계산적으로 잘해 주는 거라면 이 상황에 그녀(혹은 그)는 또 소외되는 겁니다. 기왕 이별 후에 소중함을 알았거든, 이번에는 내 자신부터가 다른 사람으로 좀 거듭나 봅시다. 남 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늦은 시각 귀갓길에 사람 별로 없는 버스(책에선 시내 버스가 나옵니다만 광역이나 시외도 마찬가지입니다)에 앉노라면 온갖 센치한 기분이 다 듭니다. 내 차 안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운전대를 잡는다는 자체가 삭막해지니. "서로에게 아무도 아니고 아무도 되어 줄 수 없는 공간(p168)" 물론 되어 줄 수도 없지만 되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서로 모른척하는 게 오히려 매너이죠. "알고 보면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 물론 당초에 행선지가 같으니 같은 버스를 탔겠으나 뭔가 그 이상의 공통점이 있을 것도 같죠.
"선천적 DNA가 100% 유전되지는 않듯이, 후천적 DNA도...(p205)" 그런데 후천적인 건 애초에 유전이 안 됩니다 생명과학 교과서에도 나오죠.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세상이 그나마 이 정도까지라도 온 건 나쁜 유전자만 있었던 인간이라는 동물이 그나마 악착같이 발버둥쳐서 자신의 힘으로 개선시킨 바 만큼이라도 후손에 물려주려 난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유전이 안 되는 걸 악으로 깡으로 되게 만든 게 인간인데 그 후손들이 이처럼이나 편의를 누리면서 남탓 환경탓을 한다면 그게 어디 인간 값어치를 한다고 말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나무 위로 동굴 속으로 도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죠.
"장기 복용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을 수 있음(p241)" 이 세상에는 참으로 큰 아이러니가 뭐냐면, 가장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오히려 남더러 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반대로 알아먹는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적반하장"이라 할 수 있죠. 가장 씨게 교화되어야 할 인간이, 거꾸로 남을 교화시키려 듭니다. 혹 사회가 뜯어고쳐져야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적폐부터를 싸그리 도려내어야 마땅합니다. 정 못 견디겠으면 이 책 p290에 나오는 대로 "누구에게나 불면의 시간은 오게 마련이니 애써 극복하지도 말고 반항하지도 말며" 그렇게 그냥 버틸 일입니다. 이미 익숙하지 않습니까.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다" 말그대로네요^^. 마음이 답답하고 세상이 내 뜻 같지 않을 때 펼쳐 놓고 읽어 보면 좋~을 책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