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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의 음모 : 반화
공도성 지음 / 이야기연구원 / 202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 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일단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것 안에 어떤 선함, 유익함, 이런 게 들어 있을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짐작하는 게 설령 어리석을지는 모르나 최소한 부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그게 결코 그렇지가 않으며, 오히려 우리를 악과 부조리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 또 조심하라는 주장을 담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라면 말입니다.
기독교 신약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와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말씀이 곧 빛이라는 언명도 뭔가 가슴을 뛰게 하고 끝없는 심오함을 풍깁니다. 왜 하필 말씀일까? 신은 말씀 속에 진리를 담아 우리에게 가르치고 또 강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신의 말씀과 섭리, "정의"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탄인데 이 역시 처음에는 천사였으나 신과 대적하다 그 권능에 눌려 영원한 형벌을 받고 비참한 처지로 타락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사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의 기회를 달라고 신에게 청했다고 합니다. 어떤 기회인가, 사람들을 단 한 명의 의인도 남기지 않고 사탄의 길로 이끌면 이 끔찍한 형벌을 면제해 줄 것을 말입니다.
그 첫번째 사건은 노아의 홍수요, 두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심판, 세번째는 의인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대대적인 공격과 그 결과입니다. 그러니 아직 사탄은 마지막 세번째의 기회에서 열심히 신에 대적하느라 우리 인간들을 꾐에 넣으려고 노력하는 셈입니다(아, 두번째의 심판도 아직 안 끝났습니다[p375:10]). 이 책에서는 노아의 홍수를 꼽으나 사실 비슷한 "심판"은 성경 여러 군데에 나오기는 합니다. 노아의 홍수처럼 전범위적이지는 않았으나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할 때 신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합니다. 처음에 단 50 명의 의인만 있어도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아브라함은 마치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조르듯 깎고 깎아 10명까지 낮춥니다.
이 과정이 너무도 재미있는데 천하의 아브라함도 10명 이하로는 차마 부탁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흥정은 거기에서 멈춥니다. 감히 아브라함을 사탄 따위에 비교하는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사탄이 신에게 세 번의 기회를 달라고 할 때의 모습도 비슷합니다. 어째서 적대하는 자가 그 상대방에게 기회를 달라고 청할 뻔뻔함을 가질 수 있습니까? 이건 뭐 사탄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이를 들어 주는 신의 태도도 사람의 얕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이야기가 바로 원형이며, 그를 비슷하게 따라한 게 모화입니다. 이를 넘어, 진리를 담지 않은 사악한 이야기도 일말의 진리를 품은 척 위장할 수는 있는데 그 정도에 따라 저자는 반화(反話), 망화 등으로 세분합니다.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서 유래했는가?(p78)" 안데르센뿐 아니라 이 책에는 그리스 신화를 포함하여 여러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둥에 반화도 있고 망화도 있는데 그 사악함과 숨은 의도를 독자들이 잘 분별하여 행여 불의와 타락의 길로 빠지지 말라는 게 저자의 의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튼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서 "이야기"는 마치 그 자체로 의지의 주체이며 혼이 실린 인격체럼 서술되는 게 사실입니다. 일생을 두고 불우하게 살았던 그로서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의존하고 싶었던 심정은 이해가 되곤 하죠. 그런데 저자는 이 막연한 "이아기"에서 사탄이나 그와의 접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간혹 등장하는 홀거 단스케라는 가상의 출처를 들어 안데르센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려고 하는데 저자는 바로 이 과정에서 사탄의 음모 그 단서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성경 고유의 체계와 상징성이 있듯, 사탄이 만들어 이 세상에 뿌린 사악한 이야기 중에도 사탄만의 독특한 일관성과 단서가 숨었고 저자는 다양한 (못된) 이야기 속에서 이를 추출합니다, "아이올로스와 바람의 탑"은 저자의 설명에 따르자면 베르타 레인이 저술하여 1930년대 초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이 작품 중 곳곳에 전쟁을 암시하는 묘한 상징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39년애 과연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넣은 대전이 터졌다는 것이고요.
"생각해 보건대 인간이 겪는 극심한 투쟁은 균형 잡힌 사고보다는 편향된 사고에 심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p203)." 저는 처음에 이 구절을 반대로 읽었습니다. 즉 편향된 사고를 하는 사람(진영) 사이에 극심한 투쟁이 벌어지기 쉽다는 뜻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투쟁을 하다 보면 사고가 편향되기 쉽다는 뜻이었습니다. 뭐 그렇겠죠. 특히 저자는 미국의 보수세력을 사탄의 화신 666 그 자체로 이해하며(p247, p203 등 여러 군데) 진보 세력의 역사적 대의를 따르지 않고 인간의 자의(姿意)로 신의 의(義)를 갈음하려 드는 그 오만함과 패륜스러움을 만천하에 떨치려는 망화의 발악으로 파악합니다.
사탄은 번번이 실패가 거듭되자 아주 교묘한 방법을 구사하는데 바로 적의 무기를 자신의 무기로 바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교도 아닌 것이 그리스도교라는 간판을 걸어 달고, 광주에서 사람을 죽인 전두환이 나중에 민주정의당(p85)이란 간판을 건 것이 그 좋은 예라고 합니다^^ 사탄은 참으로 간교합니다. 감히 어떻게 신에게 세 번의 기회를 달라고 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What a nerve! "하나님은 사탄의 (이) 주장을 거부할 경우 의(義)에 대한 검증을 방해하였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므로 악한 영들의 육화를 허용하였다(p53)." 물론 인간의 의는 누구에게서건 또 어떤 방법으로건 검증을 받을 수 있으나, 신에 대한 비난은 대체 누가 한다는 말입니까?
이 책은 문고판 하드커버이며 모양이 참 예쁩니다. 뿐만 아니라 글꼴도 최소한 저는 여태 본 적 없는 산뜻한 아름다움을 풍깁니다. 소장용으로 가치가 충분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