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병자호란은 사대숭명사상에 찌들어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국방에의 노력을 게을리한, 자격 없는 이들이 정책 결정자라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잘 가르쳐 준 사건이라고 보통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훈 외에도, 이 사건은 배후에 엄청 많은 사연과 맥락을 지니고 터진 역사적 이벤트였습니다.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지속되었고 열도와 대륙의 역학 관계 변화 등 복잡한 배경을 띤 사건이었는데 병자호란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여러 원인과 우연과 필연이 겹쳐 터진 사건이라서 우리가 간단히 자학 비슷한 걸 한다고 그 의의가 정리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병자호란은 만주 쪽에서 불세출의 영웅인 누르하치가, 이전에 없던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서 터진 사건이고, 개인의 그런 야심 속에 동기가 한정되지 않는 엄청난 움직임이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군사적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조선 측의,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비참한 패배로 귀착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 역시 없었습니다. 만주 측 역시 코너에 몰려 동병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는 무리수가 많이 따랐으며, 조선은 이를 적정 수준에서 막아낼 여러 지혜로운 수완이 있었습니다. 중립 실리 외교 같은, 사실 그 실체도 뚜렷하지 않고 계속 추진할 동력이 넉넉지도 않았던 선택 말고도, 우리에게 다른 여러 옵션이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낳게 합니다. 


인조의 후계자 효종이 추진한 북벌론 같은 건 또 다른 맥락에서 봐야 하겠습니다. 사실 만주에서 세력을 키울 때도 만주의 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병자호란을 계기로 그들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일단 중원으로 진입하여 패권을 잡은 후에는 그들이, 말 그대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지닌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병자호란 당시 군사적으로 강할 뿐 아니라 지혜롭고 침착하기까지 했던 그들에게 우리가 패배한 건 일종의 필연으로 다가오지만, 참 얄궂게도 "강자를 몰라보고 함부로 까분" 수준까지는 또 아니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만주족은 적어도 최상위 지배가문들만 놓고 봤을 때 역사에서 흔히 보이는 광기 어린 내부 쟁패라든가 비이성적인 의사 결정 과정 같은 게 전혀 없습니다. 이 점이 놀라우며, 병자호란 당시에도 궁지에 몰려 조금 무리수를 두긴 했으나 상대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보고 필요 최소한의 희생만 치른 후, 목표를 달성한 후 신속히 원 위치에 복귀하여 "궁극적 목표"에 그저 충실했던, 냉철하고 이성적인 행보가 또한 놀랍습니다. 많이들 착각하는 게 만주족은 명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멸망시킨 주범이 아니며, 농민 이자성이 초래한 무정부상태를 수습하고 체제의 보호자를 자처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여타의 정복자들과 달리 별나게 명분에 집착했고, 그러면서도 위력을 보여 줘야 할 때는 무자비하게 보여 줬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고 실리지향적 정복자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