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포트 - 탈코르셋부터 소수자 차별 금지까지, 기자 4인이 추적한 우리사회 변화의 현장들
김아영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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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어느 영화 제작자의 성추문 폭로를 시작으로 세계를 휩쓴 미투 열풍은 이 땅에도 페미니즘에 대해 전면적인 재정립과 성찰의 계기를 가져 왔습니다. 이 책은 지난 5년 간 국내에서 전개된 페미니즘 트렌드와 활동상에 대한 리뷰를 담았는데, 말미인 제4장에는 (제목은 "페미니즘 리포트"이지만) 성소수자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p35에는 여자배구 경기에 선수들이 착용해야 하는 유니폼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저는 남성이고, 배구팬을 자처합니다만 객관적으로 봐서 여성경기 유니폼, 특히 하의가 매우 짧은 편인 건 맞습니다. 농구의 경우 1990년대 중반에 타이트한 의상 착용을 검토했었으나 반대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던 적도 있죠. 개인적으로 여성 배구리그를 보면서 그 유니폼을 통해 어떤 성적인 연상을 한 적은 솔직히 없습니다. 여자배구는 멋진 수비와 오래 지속되는 랠리, 감독들이 구사하는 전술의 묘미가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타 국가(특히 일본) 유니폼에 비해 여성 상의는 타이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대로 하의가 짧은 건 맞습니다. 


집필자는 책에서 "경기력과 관련이 있다면 왜 남자 선수들은 이렇게 입지 않는가?"라고 묻습니다. 1980년대 복싱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면 남자 선수들(당시에는 여성 복싱 경기가 없었으므로)이 팬티처럼 짧은 트렁크를 착용합니다. 더 이전 시기 남자 농구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팬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져 작년겨울~올해봄 여배 시즌에서는 어느 정도 규정이 수정되었다고 전합니다. 


노브라 운동 역시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렀습니다. "대안"의 등장은 언제나 어디서나 중요한데, 구태여 페미니즘 시각으로 이 움직임을 볼 게 아니라 입기 싫은 사람한테 그럴 자유도 줄 필요가 있죠. 이런 이들을 겨냥한 언더웨어 상품도 출시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미투보다 훨씬 앞선 시점 프랑스에서는 너무 마른 모델들을 특히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들 해서 퇴출시키는 운동, 나아가 법제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현재는 더 다양한 체형을 지닌 모델들이 활동하는 듯도 보입니다. "여성의 몸은 결코 균질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p65)" 어떻게 보면 꼭 이념적 캠페인의 결과가 아니라, 패션계가 자기 이익의 논리에 맞춰 다양한 여성을 겨냥하는 식으로 전략을 (늦게) 수정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획일적인 몸을 강조한 게 오히려 이상하죠. 책에서는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이 경향을 요약합니다. 


사실 보행에도 위험한 하이힐을 잘 신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자주는 아니라도 새삼 놀라울 때가 있습니다. 영화 <스위치>를 보면 외형은 여성인데 남자의 영혼이 들어온 주인공이 하이힐 신고 걸어다니라 엄청 고생하는 장면이 있죠. 일본에서는 "쿠투" 운동이 한창이라는데 대체로 여성에게 더 많은 억압이 들어오는 사회 분위기로 알려진 그 나라에서 이런 운동을 펴는 여성들이 참으로 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74에는 "탈코르셋" 운동의 지향점에 대해 운동뚱으로 알려진 어느 셀럽의 예를 통해 조명하는 꼭지글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특히 "탈코"에 대해 거부감이 많다고 하는 젊은 남성들이 한번 읽고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취지에서 접근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꼭 설득을 당하라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들이 여태 접했을 어떤 극단적인 표현이나 주장이 적습니다. 의견의 다툼이 있을 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면 서로 의견의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없어집니다. 


2장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리포트가 나오는데 참 외국도 아니고 우리 나라에 이런 사건들이 다 있었나 싶을 만큼 충격적입니다. "처벌이 면죄부가 되는 아이러니" 원래는 면죄부라 함은 처벌을 안 해 주는 것이니 약간은 논리적 문제가 있습니다만, 물론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들쭉날쭉 구형, 선고", "높은 재발률", "여전히 후진적인 의식" 등을 지적하고자 함이겠습니다. 본래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봐도 어떤 범죄나 처벌이 그저 만능은 아닙니다. 사형제가 유지되는 나라가 범죄율이 낮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디지털 성범죄(혹은 그 외의 성범죄라 해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학교 등에서 이것이 얼마나 타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지를 경각심 함양과 함께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성 우월주의 같은 게 혹시 있다면 이 역시 바로잡아야 맞겠지요.


"자신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p140)" 정말 그렇습니다. 이에는 아마 여성들의 근로 능력과 효율이 남성의 그것보다 떨어진다고 여기는 잘못된 편견이 크게 작용했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과의 발휘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며 같은 남성 그룹 내부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레 여성이라고 가치를 미리부터 평가절하하고 들어가는 건 오히려 해당 조직 관리직의 고과업무 해태라고 봐야 하겠죠. 왜 여성의 노동은 미리부터 "그림자" 취급을 당하나? 같은 항변도 있습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점은 없는지 학계에서도 검토가 필요하겠네요. 


"트랜스젠더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외래어라서 없는 게 아니었다. 게이, 레즈비언 등은 버젓이 등재되었었다.(p174)" 글쎄 사용 빈도로만 보면 뒤 두 단어에 미치지 못할 바 없을 것 같은데 왜 누락되었을까요? 게이나 레즈비언이 받곤 하는 혐오보다 더 심하게 기피되는 대상(이자 단어)이라서 그럴까요?(이런 좋지 못한 말을 사전에까지 실을 수는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어느 나라나 법원만큼 보수적인 곳은 없는데 놀랍게도 수술을 통한 성별 정정을 한국 법원은 일찍부터 인정했습니다. 사전이 사법부보다 더 보수적이라니 좀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필자 중 한 분(한고은 기자)은 "몇 년 전에는 '당신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궁금해했다"고 말합니다(p119). 독자인 저에게는 그 당시 필자 자신도 확신은 없었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이제 그는 "나도 페미니스트구나!"라고 생각을 정리했으며, 그때의 뜻은 "내가 내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워낙 복잡다기하여 무엇이 궁극적인 지향이고 무엇이 그 범주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아직 합의된 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페미니즘 운동의 성패는, 상식을 갖춘 남성들의 많은 협조가 있어야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남성들은, 저렇게 올바른 명분, 또 구체적인 활동에 얼마든지 동의하고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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