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차별, 처벌 - 혐오와 불평등에 맞서는 법
이민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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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합니다. 유럽에서 신분상의 이유, 종교적 믿음의 이유 등으로 갖가지 차별을 받던 사람들이 그를 피해 신대륙(그들의 입장에서)으로 이주해 온 것인데, 여기서도 먼저 와 기반을 잡은 사람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을 차별했습니다. 하긴 동진(東晉) 시대에도 먼저 강남으로 온 귀족들이 나중에 온 세력을 차별한 예가 있으나, 미국 같은 경우에는 민족(남유럽), 인종(흑인)별 차별이 있으니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이런 미국에서 한국계 출신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지역의 검사직에 오르고, 현재는 차별금지법을 자신의 전문으로 삼아 활약하는 분이 있으니, 한국도 근래 집권 여당 중심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으니 그 주장을 경청할 만합니다. 


책 p30 이하에선 특히 흑인에 대한 차별, 학대가 아주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미국의 역사에 대한 자성이 나옵니다. 우리도 흑인을 볼 때 "흑인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퉁치곤 하는데(요즘은 덜하죠), 백인이나 흑인들도 우리 나라에 와서 "한국인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어떤 인종적 특징이라는 게 분명히 있어서 누굴 봐도 그 특징만 보자고 작정을 하면 그리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반복 억제", "외집단 동일성 편향" 등의 용어를 들며 어느 인종, 민족이건 "타자로 규정한 집단"에 대해서는 이런 그릇된 인지적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다만 이런 반응이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걸 적어도 머리로 인식했다면, 제도와 의식의 개혁을 통해 이에 기인한 사회적 부조리가 반복 확산되는 걸 막을 필요가 있고 또 이런 것이 "문명 사회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저자는 이 논의 중 "아싸와 인싸"라는 개념으로 독자를 쉽게 이해시키는데 이런 말을 알고 적절히 활용하는 걸 보면 한국 문화에도 밝은 것 같네요. 


이상하게도, 밀로스 포먼의 영화(그 이전 뮤지컬이 있었지만) <아마데우스>를 보면 분명 극중에서 못된 짓을 하는 빌런이지만 우리는 머리 에이브러햄이 열연한 살리에리 캐릭터에게 더 큰 공감을 보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절대적 평등, 상대적 평등, 기회의 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독자인 제가 학부 시절 어느 교수님도, 과연 빈부의 차이만 불평등인가, 어떤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서 유리한 경쟁을 하는데 그것은 불평등이 아닌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시더군요. 생각해 볼 거리가 분명히 맞지만, 반대로 "고작 DNA 추첨에 불과"하다며 솔직하지도 못한 폄하를 애써 과장되이 시도한다거나, 획기적인 기술이 발명되어 재능과 외모 모두를 평준화시킨 후에 새로 경쟁을 시작해야 된다는 식의 주장은 확실히 정신 나간 게 맞습니다. 


이어서 평등과 불평등에 대한 근원적 논의가 펼쳐집니다. 평등의 추구와 차별의 타파는 물론 중요하지만 애초에 이런 조치, 노력, 정책들이 무슨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지도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재미이있는 건 양성평등 지수가 높은 국가에서 오히려 여성들의 이공계 진출 비율이, 높지가 않고 오히려 낮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네요.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따라서 보수가 후한 취업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진짜 선호와는 무관하게 진로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회가 여성에 대해 덜 차별적일수록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쪽으로 기운다는 겁니다. 여기서 저자는, 수학이나 공학에서 비교 우위를 보인다는 이유로 "남성이 우월하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냐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집니다. 


외모로 인한 차별 대우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이 이 분야에서는 강점이 있다고 착각을 하는지, 유독 재능이나 다른 스펙, 학력사항에 대해서는 핏대를 올리다가 여기서는 너그러운 이중 잣대(축에도 못 낍니다만)를 적용합니다. 타인의 외모에 대한 호감 불호감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반응 영역이므로 설령 이것이 대단히 불합리하다 해도 근원적 해결이 매우 어렵죠. 문제는 이것이 사회 전체에 어떤 객관적 功利. 혹은 후생을 창출하느냐입니다. 솔직히 거의 없지 않겠습니까? 책에서는 최초로 열린 대통령 선거 토론의 경우 내용면에서는 이겼다고도 볼 수 있는 닉슨이, TV상에서는 초췌하게 보여 결국 판세 자체가 바뀐 예를 드는데, 사실 진보 진영에서 이런 걸 무슨 모범 사례로 드는 건 자가당착입니다. 닉슨이 진 이유는 정책 자체가 문제였다고 결론을 끌어가도 끌어가야 그게 맞는 거죠. 이미지메이킹은 세상을 사는 영리한 방법일 수는 있으나 진실과 정의의 영역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자는 최근에 벌어진 박나래 논란 등을 예로 들며(대중의 기억력은 참으로 못 믿을 것이라서, 저는 지금 저 논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역시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 이런 것만 봐도 한국의 현실에 참 밝으신 분 같습니다. 


19세기만 해도 미국에서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며 과격분자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지금 노예제라는 건 생각만 해도 혐오감이 치솟는, 인류 공의에 반하는 악행으로 이미 합의를 보지 않았습니까? 누가 생각해도 이성에 반하고 정의감을 모독하는 행태라면, 가능한 한 빨리 즉시, 전면적으로 폐지되는 게 맞습니다. 그 편이 모두를 위한 이익을 증진시키고 우리들의 양심도 올바른 방법으로 편안하게 만들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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