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서의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라 함은, 주인공인 네레오 코르소가 일생을 두고 찾아 헤매는 어떤 영웅을 가리킵니다. 그 이름은 "웨나"인데, 무슨 뜻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인간인지 신인지는 네레오 자신도 모릅니다. 네레오는 어떤 미신,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일생을 낭비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고, 현실에 적응을 잘 하며 체력도 강건하고 성실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의 시대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숙련도가 만만치 않은 직업은 가우초였는데, 네레오는 타고난 가우초라 할 만큼 소년 시절부터 일을 잘했습니다. 그를 고용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 성실성과 기술에 감탄하게들 되었죠. 이랬던 그였고, 얼마든지 안온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타는 목마름과도 같이 다가온 그 "웨나"에 대한 동경을 거둘 수 없어서 정처없이 아르헨티나 일대를 떠돌게 됩니다.


소설 속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식탐이 지나쳐서 마을 전체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어느 소년의 사연 같은 것입니다. 그는 마을로부터 축출되어 초원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이 미각에 대해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고 들판에 널린 풀로부터도 얼마든지 양분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말이나 소도 풀을 가려먹는데 사람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없는 셈입니다. 사랑했던 소녀에게 애정 표현을 하려 들다 입에서 나온 불길 때문에 그 소녀를 죽이고 말며, 이로써 그는 사람 사는 세상에 영원히 복귀할 길이 끊깁니다. 재능은 소중한 것이고 인류 전체의 자산이나, 정작 당사자는 그로 인해 미움을 받는다는 모티브는 영화 <엑스멘> 등 여러 매체에 등장한 바 있습니다. 이 소설은 확실히 단편 <큰바위얼굴>이라든가, 동화 <파랑새>라든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든가, 토마스 만의 <선택된 인간> 등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네레오는 어느 늙은 가우초에게 인생 저편 너머에 자리한 진리에 대해 암시를 들었고, 열두 살 때에는 자신이 상상한 웨나의 이미지에 매우 근접한 후안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후안은 과학 지식에 아주 밝은 이였고, 네레오가 말하는 "바람을 만드는 사람"의 존재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지도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후안과 헤어진 후에도 네레오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심어진 웨나의 원형적 심상을 계속 간직하게 됩니다.


남미는 우리가 상상 못 할 만큼 어둡고 치열했던 과거사의 질곡에 시달려 왔으며 그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긴 우리도 민주화의 장정 동안 가슴 아픈 일이 많았으나 남미는 훨씬 더했다고도 보겠죠. p87 이하에는 네레오의 어린 시절이 잠시 회고되는데 여기서 무정부주의자들의 과격한 행동이라든가 포퓰리스트였던 후안 페론(에비타의 남편) 대령, 그리고 극우 군인들의 반동 등 실제 역사가 등장합니다. 무정부주의는 1920년대에만 해도 공산주의와 함께 좌파 진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이념적 동향이었으며 이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도 공화파에 가담하여 일정 역할을 합니다. 아무튼 어렸을 때 무척 충격적인 일을 겪었기에, 소년 네레오가 저처럼 성장 과정이 순탄치 않았겠구나 하는 짐작을 우리 독자가 할 수 있습니다. 


네레오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난교를 벌이며 궁극의 희열을 맛보는 사람들 틈에 끼기도 하고, 나병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성자 곁에서 삶의 극한 참상을 동시에 목격하기도 합니다. 이 와중에 그는 마침내 "웨나"가 부질없는 환상임을 깨닫고, 십자고상 앞에서 침식도 잊은 채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이 일을 겪고 그는 어느 대농장에 취업하여 소년 시절처럼 성실한 가우초로서 자격 증명을 한 후 농장 관리인으로 부임하여 그럭저럭 안정된 생활을 하고 다리를 저는 얌전한 부인까지 맞아 그 사이에서 아들도 봅니다. 그런데 이 소설 어느 대목이나 그런 개성을 갖지만, 여기서도 느닷 생각도 못한 극적인 계기가 찾아오는데(시대상을 반영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부인의 친정이 석유 개발 덕분에 느닷 갑부가 됩니다. 네레오가 취업한 대농장 따위는 한순간에 우습게 보일 정도가 되었으며, 더 놀라운 건 그 온순하던 부인의 외양, 태도 모든 면에서의 변화입니다. 영양 섭취가 갑자기 늘고 나서(?) 부인은 다리도 더 이상 절지 않고 비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느닷 세상사를 속물적으로 냉철히 통찰하는 사업가로 변모합니다. 이제 남편 네레오는 그녀의 눈에 그저 촌스럽고 소박한 가우초일 뿐인데, 어느날 네레오딴에는 필생의 소명과 지난 방랑 이력에 대해 큰 마음을 먹고 부인 앞에서 고백을 하지만 한순간에 속물로 변한 부인은 그저 비웃거나 측은히 여길 뿐입니다.


암소들에게도 인기가 좋던(?), 또 편안히 먹고 잘 수 있는 농장과 초원이라는 유리한 공간을 버려 두고 무엇에 홀려서인지 벼랑 끝 늪지대를 향하던 어느 수소(수컷 소). 특히 네레오는 녀석이 그 가파른 벼랑길을 마치 곡예 하듯 기껏 타고내려가 늪에 빠지는 모습, 또 이를 밤새 슬퍼하는 암소 들을 보고 마침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마치 한국 드라마 <무인시대>에 나오던 목각인형 두두을을 연상케 하는, 고대 용감한 원주민 오칸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웨이나가 웨나의 정체임(p250)"을 깨닫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삶의 종착점이 어디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그는 또하나의 "웨나"가 되어 다른 역마살들린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 구실을 합니다. 


이 소설 작가님은 한 번도 남미 현지를 답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처럼 현지 풍속이라든가 신화, 전설, 혹은 역사 이야기가 생생히 녹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칸의 내력을 설명할 때 시베리아 일대에서 동북아시아인들을 만나 베링 해를 건너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대목도, 요즘 DNA 추척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와 거의 일치하는 데서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소설은 슬프고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도 기본적으로 비극인데 다만 소소한 중간지점에서 큰 보람과 행복을 애써 찾는 게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일생을 걸고 찾아나갈 그 무엇이 있는 인생이라면 그건 차라리 축복이겠고 말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