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 Philos 시리즈 7
제프리 삭스 지음, 이종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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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세계적인 경제학자입니다. 경제학은 본디 경제사 연구 파트가 따로 있어 세계 역사를 산업, 경제 구조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별개의 관점으로 정리합니다만 제프리 삭스의 그간 연구 성향으로 보아 이처럼 긴 구간을 그만의 프레임으로 통찰한 책은 독자로서 꼭 읽어 보고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2020)에 출판된 이 책은 원 제목이 <에이지즈 오브 글로벌리제이션>인데, 각 종족, 민족, 문명권, 인종들이 각기 자신들의 터전을 일구고 살다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세계화한 세상"으로 진입하는지 총 일곱 개의 구간으로 나눠 설명합니다. "OOO의 세계화"처럼, 저자의 관점에서 일곱 번의 세계화 동인, 동기가 작용한 구간으로 나뉩니다. 


p33에 책의 내용을 개관할 수 있는 표가 실렸는데 시간이 정 없는 분들은 이 표만 봐도 대강의, 아주 대강의 내용은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와 주장하는 바를 정확히 캐치하려면 몇 번을 거듭 읽을 필요가 당연히 있겠고요.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정량적 지표로 일단은 접근합니다. 무엇이 시대 구간을 가르는 핵심 기준(저자의 원 표현에 따르면 "장기적 변화의 세 가지 차원[p37]")이 될 것인가. 첫째 인구, 둘째 도시화 비율, 셋째 1인당 생산량입니다. 인구 수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최소 요건들을 얼마나 갖추고 살았느냐를 가늠할, 단순하고도 확실한 지표가 될 만합니다. 질병이나 전쟁, 기근 등 불리한 여건이 지배적이면 인구가 늘 리 없고, 이는 적어도 전근대 사회의 형편을 짐작하기에 쓸 만한 인덱스입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대규모 시장이 존재할 때 어떤 유리한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직업 전문화, 노동 생산성 상승, 생산비용 저하, 혁신에의 욕구 증가). 


저자의 평소 경향 답게 맬서스의 음산하고 운수 불길한 예언을 언급하며 살짝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 기분 나쁜 예언이 실현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도 학자다운 제언을 곁들입니다. 이어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 제목이기도 한 "지리, 기술, 제도(制度. system)"가 이 책에서 어떤 분석 도구나 프레임, 혹은 개념으로 쓰이는지 설명합니다. 이 3요소의 상호작용에 대해 p50에 도해화가 되어 있습니다. 3요소의 세부 분석 대목은 우리가 중고교 과정에서 대체로 배웠던 상식적인 내용들이 환기되는 정도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시대의 3대 이슈"라 하여 저자가 염두에 두었던 사항들이 짧게 언급됩니다. 첫째 번영, 포용, 환경지속가능성이 선택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다극화 시대 글로벌 행정을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 셋째 글로벌 평화가 과연 가능하겠으며, 어떻게 가능하겠는지의 문제입니다. 여튼 저자는 이 3대 문제 의식을 갖고 이 긴 책에서의 논의를 전개하겠다는 뜻입니다. 


구석기 시대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아메린디언들의 인구 수에 "야생 말의 멸종(기후 요인에 의한)"이 어떻게 타격을 주었는지 환기합니다. 이 무렵에 발생한 취약점을 끝내 극복 못 했기에 15세기 유럽인들의 대거 침입 시 이 문명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렀다는 건데 물론 저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현생 인류는 데니소바, 네안데르탈 인을 끝내 절멸으로 몰아넣었으나 심지어 현재 우리들도 그들 유전자의 일부를 여전히 지니고 있음도 독자에게 일깨웁니다. 역시 우리 독자들도 상식으로 아는 내용이죠.


이 책 앞부분에서 저자는 기후 인자의 결정이라 할 만한 영향력에 대해 잠시 강조했었는데, 제3장에서는 신석기 시대 농업혁명에서 다시 한 번 상세히 언급하며, 특히 문명의 발달은 "행운의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는 바 있다고 합니다. 물론 과거로 거슬러올라갈수록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늘어나고, 그런 부분을 뭉뚱그려 "행운"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밖에 없죠. 이 "행운의 위도" 개념은 책 중후반부 4장, 5장에 걸쳐 계속 강조됩니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통칭하는 개념인 "유라시아"를 자주 사용합니다. 물론 우리도 다 아는 바이지만 저자의 의도는 좀 다른 데 있는 듯합니다. 이 거대한 땅덩이가 애초에 하나로 연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대륙으로 가르는 게 오히려 인위적인데, 이 개념을 저자가 자주 쓰는 이유는 전혀 별개로 보이는 두 대륙이, 우리 선입견보다는 서로 영향과 도움을 주고받은 바가 많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여튼 저자는 이른바 농업을 위해 순치된 동물, 즉 역축(役畜)의 대거 번식이 주로 유라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이뤄졌음을 강조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하라로 가로막힌 아프리카의 북과 남은 같은 대륙이면서도 별 공통점이 없이 각자의 호흡대로 발전했죠. 


여튼 앞선 시대에 유럽이 아시아로부터 화를 입은 건 첫째 아틸라 등 훈 족의 침공(물론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하지만), 둘째 주치, 바투의 킵차크 한국 혹은 골든 호드의 정복 등이 있겠습니다. 이 병화(兵禍)는 둘 다 기병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한 이들이 그 주체였죠. 이에 곁들여 저자는 사막 지대에서 중요한 노릇을 한 낙타나 말에 버금가는 당나귀 등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합니다. 허나 이 4장에서 무엇보다 크게 강조되는 건 "말"의 힘입니다. 유라시아 최초의 기마 사회에 대해 저자는 "코카서스인과 동유럽에서 온 수렵채집자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얌나야 부족"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오늘날 유럽 인구는 이 얌나야 부족과, 아나톨리아 인들(물론 현재의 터키인들과는 크게 다른)이 혼합되어 형성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합니다. 얌나야 인들이 후대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인도 유럽 어족"의 형성입니다. 


p128에는 "21세기(sic.) 독일의 역사가 겸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는 개념으로 고전 시대를 정의했다고 나옵니다. 야스퍼스는 우리가 다 잘 아는 대로 20세기의 그 철학자이며, 몇 년 전에 캐런 암스트롱이라는 저자가 이 "축의 시대" 개념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를 펴낸 적이 있었죠. 사실 어느 나라, 지명의 유래를 살펴 보면 흥미롭게도 "색깔"에서 비롯한 게 꽤 되는데 브라질은 나무와 그 색상이 어원이며 페니키아도 (비록 exonym이긴 하나) 보라색이 기원이라고 역주에서 밝혀 줍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틀어 "3대" 규정을 즐겨 쓰는데 여기서는 고대 3대 제국으로 로마, 파르티아, 한 제국 셋을 꼽네요. p146에서 통시적으로 알렉산더, 로마, 우마야드, 몽골, 오스만, 티무르 제국을 비교하며 기후지대에 따른 인구 비율을 소개합니다. A, B, C, D, H 등은 쾨펜-가이거 구분체계(고교 지리 시간에 배웠죠)라고 앞 p56에 이미 나왔더랬으며, p146의 저 표를 p69의 표와 대조하여 살피는 것도 독자들에게 유익하겠습니다. 


애덤 스미스 역시 중화제국의 풍요로움에 대해 적절히 평가하지만 "최근(그의 시대 기준) 발전이 정체되었음(p164)"을 지적하고 이는 비슷한 시기 독일 철학자 헤겔도 말한 바 있죠. 이에 대해 저자는 "중국이 해양 무역을 중단하여 외부로부터의 선진 기술 흡수가 어려웠음"으로 분석합니다. 중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폐쇄적입니다. 이 책에서는 1978년에 비로소 대외 개방을 시작한 걸로 평가합니다. 이어 대항해시대, 유럽의 지식 혁명 등이 서술되는데, 외국에서 고려의 금속활자 발명을 높이 치지 않는 이유도 "대체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나?"를 더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역사는 구텐베르크가 실제로 많이 바꿔 놓았죠. 이어서 책은 제국주의의 대두, 유럽에서 빈발했던 전쟁에 대해 길세 서술합니다. 


p201에서 애덤 스미스가 다시 인용되는데 이 대목은 "공평한 구경꾼(impartial spectator)"을 자처하며 유럽인들이 "발견"한 "신"대륙에서 원주민들이 겪은 부당하고 처참한 대우를 지적하는 <국부론>의 구절들이 두 페이지 가깝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자는 "세력의 재균형이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꿈꾼 스미스에 대해 전폭적으로 찬동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을 이 책의 핵심 주제로 봐도 될 듯합니다. 


p221에서 저자는 경제학 교과서들 경기순환론 파트에서 필수로 다루는 (초장기) 콘트라티예프 웨이브를 다루는데 베테랑 역자인 이종인 선생은 구태여 파동이 아닌 "파도"로 번역했습니다. p224에 특히 예쁜 그래프가 나와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이노베이션이 이노베이션을 낳는다"는 진리는 구태여 그 창안자인 슘페터의 논거가 아니라 해도 이미 우리가 가까운 역사에서, 또 주변의 현실에서 거듭 그 실증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이 부분에서부터 저자는 "나라 간의 격차"와 "아시아인들의 대응 전략"을 슬슬 언급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분화의 시대에서 집중의 시대로의 전환"을 언급하는데 이 뜻은 "후발 국가들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혀 나가는 시대(p256)"로 설명되네요. 1차 대전의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 결국 파시즘과 나치의 발호, 또 2차 대전을 불렀는데 저자는 이미 당시에 (저자 자신과 학문적 궤, 세계관을 함께하는) 케인즈가 모두의 공존 공영을 가져올 처방을 이미 제시했다면서 그의 혜안(p248)을 칭송합니다. 


이 책에서 규정하는 제7의 세계화 동력은 디지털 혁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체감하지만, 세상은 이를 기점으로 더욱 심하게 빈부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자는 중국의 급속한 기술 발전을 칭찬하며 결국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안보위협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안보 위협은 그것을 악용하려는 권한 있는 자가 구체적으로 위협을 실행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증명할 수가 없죠. 여튼 벤처 자본 투자에서 중국의 그것은 EU를 앞지른지 오래되었다고 책에서 또 지적합니다. 그 결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고 말이죠.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미 그의 전작 <빈곤의 종말>에서 강조했던 양극화의 해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 아젠다 등을 다시 강조하고, 경제, 사회, 환경 아젠다를 각각 8, 3, 5개 제시합니다. 책 말미에는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도울 컬러 지도가 많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독자들에게 유익할 듯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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