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육에 대한 10가지 환상 -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
쿠보타 류코.지영은 지음, 손정혜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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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영어 교육에 대해 골머리를 앓는 건 사정이 비슷한 듯합니다.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에는 딱히 신택스나 문법 면에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영어에 대해서는 사정이 크게 다릅니다. 어족 자체가 완전히 계보를 달리하므로 영어를 한국인이 어렵게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한편으로 일본인들은, 기본 모음 체계가 한국어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가나 역시 한글보다 융통성이 떨어지는 문자이므로 영어를 배울 때 우리보다 더 힘든 면이 있지 않겠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 영어교육 전문가 한 분과, 일본인인 영어교육학 교수님 한 분이 공저하신, 동아시아의 영어 교육 실태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교육 전문가들이 일본의 영어 교육 실태를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읽다 보면 우리 한국인들도 뜨끔해지는 면이 많습니다. 또 우리 독자들은 대부분, 영어를 교습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 반대로 배우는 입장이지만, 영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어떤 잘못된 선입견을 잔뜩 갖고 있기에, 수요자 중심 시장에서 결국 교습자에게 잘못된 교습을 유도하기까지 하는 면이 다분함을 알게도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들도 이게 잘못된 줄을 알면서, 현장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이러이러한 걸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맞추지 않겠습니까.


사실 요즘은 예컨대 프린스턴 大에서 나온 교재 같은, 어떤 표준적인 교과서로 불릴 만한 책에서도 "표준적인 영어"라는 관념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 보곤 합니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마치 존 F 케네디 같은 깔끔한 억양, 수준 높은 어휘 구사,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길 바라지, 인도라든가 필리핀, 혹은 할렘 가의 흑인 영어를 (아무리 유창하다고 해도) 말하는 걸 원치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현대 영어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들조차 어떤 표준 발음, 어법 같은 것을 이미 포기하는 추세입니다. 그것이 피진이라 해도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의가 있으며 어떤 "리셉터블" 같은 걸 정해 놓고 나머지를 "비표준"이라 폄하하고 교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영어는 또한 (교육 받은 사람들 기준에서는) 글말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건 일본어에서는 여전히 그러하며, 반대로 한국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가독성이 없는 읽을거리는 퇴출되는 경향이 뚜렷하여 글말에서는 어떤 층위가 사라져 갑니다. 인터넷 사용자 백과 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보면 "심플 잉글리시"라는 Db가 마치 별개 언어처럼 따로 꾸려져 있는데 글말에서 영어가 (아직도) 뚜렷이 여러 층위를 지님을 증명하는 좋은 예입니다. 저자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과연 19세기처럼 까다롭고 문어적인 글말 쓰기를 아직도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유학 전문 기관, 혹은 토플 강의에서 어떤 스타일을 수험생, 학생들에게 가르치는지 한번 보십시오. 또 텝스나 심지어 수능 영어 지문이라고 해도 까다롭고 현학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p45 등에서 일본인들이 어려워하는 th 발음의 예를 들며, 이것의 무성음이든 유성음이든 간에 [s] 혹은 [z[, [d] 등으로 잘못 발음하여도 일상 회화에서 맥락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알아 듣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인들에 한정된 사정에 가까우며,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θ]과 [ð]을 조음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world, wood, turtle 같은 발음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정확히 내질 못합니다. 사실 milk, egg, film 등 아주 기초적인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식으로 우드, 밀크, 월드, 엑, 터틀 이러면 미국인들이 전혀 못 알아 듣습니다. 


만약에 어느 한국인 학부형이 어린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고자 할 때, 미국 출신 백인이며 최종 학력은 고졸 정도인데 평균적인 한국인이 들었을 때 그 발음이 완벽한 사람과, 인도나 필리핀 현지에서 최고 명문대 영어교육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발음은 그저 인도인, 필리핀 사람 같이 들릴 때, 둘 중 누구를 고용할까요? 전 아마 99% 이상이 전자를 고용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마 일본인 학부형들도, 원어민처럼 깔끔한 발음을 구사하는 걸 영어 능력의 99% 이상으로 여길 겁니다. 어차피 문법적으로 혹은 어휘 면에서 얼마나 뛰어난 영어를 말하거나 쓸 줄 아는지는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인영어능력시험, 가령 토익 같은 게 990점이라 해도 발음이 나쁘다면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뭐 토익 같은 거야 고득점 내는 요령만 있으면 다들 갖추는 스펙에 불과하지"라며 가당치 않은 합리화까지 시도하며 말입니다. 


저자는 과연 원어민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를 반성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한국어는 제대로 못하면서 어려서부터 오로지 미국식 영어만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한국 교포도, 한국인들이 그를 과연 "원어민"의 범주에 넣을 지 의문입니다. 국적도 미국이고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뿐이라면 어떤 언어학적 정의에 의해서도 그는 원어민인데도 말이죠. 이처럼 일본인들이나 우리나 "영어 교습 자격", "무엇이 진정한 영어실력인지", "원어민이란 누굴 가리키는지" 나아가 내 자녀에게 "누가 과연 바람직하고 정확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들(혹은 그의 학부모들)의 인식이 이러하니, 제도권 공교육 나아가 사교육이 무슨 재주를 피워도 일본인 혹은 한국인의 영어 실력이 늘지를 않는 것입니다. 두 나라 다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고 지출 비용도 크며 생활 수준도 세계적 레벨이건만 말입니다. 


대략 십 년 전에 인도와 한국이 CEPA를 체결했을 때 인도의 유능한 영어 교육 인력들이 한국에 대거 들어와 교육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 예상하는 미디어가 많았습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 주변에 피부 검은 인디아 출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영어 교습하는 풍경이 과연 얼마나 자주 눈에 띌까요? 책에서는 "인종이 체질적, 생리적 특징이 아닌 사회적으로 결정되며, 영어 원어민이라 하면 무조건 백인"이라는 고정 관념이 가히 철석 같다"고 비판합니다. 사실 서울의 서초구 같은 좋은 학군의 중고등학교들에서도 자질 없는 백인 교사가 엉터리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학부형들부터가 빼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자녀 교육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는 학군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게 사실은 일본인들이나 우리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을 갖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책에서는 마이크로어그레션(p87) 또는 포스트식민주의 등 인문적 담론 도구까지 동원하며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합니다. 특히 일본은 20세기 전반 식민 제국의 지배자 입장이었지만 우리는 피지배의 쓰라린 경험까지 갖고 있기에 이런 분석이 더욱 효과를 발휘할 듯합니다. 


1980년대 초중반 일본의 무역 흑자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미국의 이른바 "재팬 배싱(bashing)"이 커졌는데 이 때문에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전액 일본 부담으로" 미국의 청년들을 일본의 직장에 고용시켜 일본 사회에 대한 편견(?)을 일소하려는 정책까지 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과거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한 조공 체제를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이때 일본 당국의 영어 목표가 "일상에서의 의사 소통 능력 배양"을 최우선순위로 삼았다는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공교롭게도 한국 역시 이 무렵 "회화 중심"으로 목표를 전환하였는데 그 결과는 30년이 지난 지금 회화 능력은 그것대로 여전히 유의미하게 개선되지 않고 문해력은 문해력대로 저하했습니다. 문해력은 오히려 그 앞세대보다 더 못합니다. 


이 무렵은 "일본인이란 과연 누구이며, 미국인들의 언어 구사 방식은 일본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그 나름 치열한 고민이 이뤄진 시기였나 봅니다. 일본인의 화법과 언어는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말하는 게 지배적이며, 미국인의 글쓰기는 직설적이고 (구조가) 직선적이다" 등등.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성급하고 졸속적인 결론은 오히려 섣부른 인종주의적 편견만 양산했으며 대체 이상적인 글쓰기에 일본적 특성과 미국식의 스테레오타입 같은 게 어디 있으며, 설령 있다 한들 어린 세대를 그에 맞춰 교육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되묻습니다. 저자는 나아가 "영어실력 증가 = 연봉 증가"같은 피상적인 등식이나, 영어실력의 향상이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자기계발이라는 게 모두 신자유주의가 이식한 환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또 만약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취업 기회 확대,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면, 어떤 획일적 표준에 대한 집착과 환상을 깨고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라고 충고합니다. 


영어 공부는 무조건 어려서부터 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업의 질, 수업 시간, 아이의 집중도 등이 훨씬 영향이 크다고 하며, 혹시 아이가 지능이 아니라 어떤 심리적 이유로 외국어를 배우기 꺼려하지는 않는지도 살펴 봐야 한다고 하네요. 또 외국어 학습과 모어 학습은 함께 진행될 수 있으니 구태여 순위를 두지 말라고도 합니다. 또 영어 수업을 반드시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경우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융통성 있게 찾아가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고 합니다. 고집스럽게 영어 전용 수업만 고집하다가 영어 기초 단어도 못 배우고 공포심만 잔뜩 는 채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영어는 대체  뭣 때문에 배우는 걸까요? 일상에서의 의사소통이라 답한다면 이 역시 비효율적인 편견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취미 생활을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데 그에게는 이게 가장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일처리를 위해 영어를 배우는데 이것은 회화 교육을 통해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그에 알맞은 다른 코스를 밟아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책에서는 심지어 "고달픈 현실 도피"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의 예도 소개되는데 이 역시 극소수이긴 하겠으나 당사자에게는 필요하겠으므로 무작정 말릴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텝스 고득점자가 교도소 재소자 중에서 나온 예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획일적인 커리큘럼의 강요가 최악이라는 걸 모두가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역자 손정혜씨는 맺음말에서 "수십 년 전 소설가 복거일씨가 영어 공용어 지정을 주장한 걸 기억하는가?"라고 독자에게 묻습니다. 영어기 세계화 시대의 무기라는 관점을 이처럼 잘 반영한 주장도 없겠는데, 지금 누가 이런 주장을 하면 아마 그때처럼 반향이 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영어를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하는 능력은 누구나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잘 사는 방법, 무기, 수단이 꼭 영어에만 있지 않다는 걸 이제 우리도 세상을 겪어 보고 다 압니다. 그보다는 각자의 상황에 맞춰, 영어가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방법을 여럿 찾아 개발하여 여러 사람을 그에 알맞게 돕는 게 훨씬 바람직할 것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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