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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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친실"이라 함은, 아무래도 팩트사항을 파악했을 때 그 밝혀진 바가 우리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달라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겪을 만한, 그런 진실을 보통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두 개의 큰 강으로 대륙과 분리되어 마치 섬 같은 위치지만, 여튼 대륙의 엄연한 일부라서 큰 산짐승들이 대간을 타고 멀리 남쪽까지 출몰하며 서식하는 조건입니다. 열도에는 없는 호랑이가 꽤 많이 살아 왔고, 호랑이에 얽힌 민담과 전설도 풍부하여 민족 정서를 크게 환기하거나 심지어 공유(...)하기까지 하는 동물이죠. 이런 동물을 민족 정기 말살 차원에서, 마치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듯 일제가 조직적으로 말살해 왔다고 그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 극우, 혐한 세력은 이번 올림픽 때 우리 선수단이 "범 내려온다"는 현수막을 숙소에 걸자 이것 역시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멸종시킨 일제의 악행에 대한 환기라면서 정치적 의도가 담긴 메시지라고 생트집을 잡았더랬죠.


일제가 36년 간 이 땅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과 착취는 그것대로 분명히 평가하더라도, 과연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게 일제의 소행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 비판은 결론이 옳다고 해서 다 옳은 비판이 되는 게 아니라, 올바른 근거와 팩트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왕성한 생명력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던 야생동물이 멸종했다면 그 경위를 정확히 파악해야 앞으로 비슷한 잉일이 재발하는 걸 막을 수 있겠으니 말입니다. 


책에서는 일단 이런 말을 합니다. "조선의 등장은 호랑이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기에 인간과 호랑이의 갈등을 어느 정도 종교가 중재했으나, 유교는 이 세상의 중심을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니...(pp.18~19)" 이 지적은 탁월하다고 독자인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펴 들었을 때는 어린이책이라고 오해(...)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고려를 조선이 대체한 건 그저 다스리는 가문의 성씨가 바뀐 게 아니라, 국가가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기반 이념이 바뀐 것입니다. 불교는 물론 우수한 점이 많은 고등 종교이나, 기본적으로 주관적 관념론이라서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문제 해법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조선의 기본법인 경국대전에는 "호랑이는 아무나 잡아도 된다"는 말이 명시되었다(p22)고 합니다. 


반면 유교는 객관적 관념론 체계라서 모든 것이 인간 중심 논리이고, 사후세계나 윤회, 환생, 영혼 등의 불명확한 개념을 배격하는지라 국가 행정, 민생 관리 시스템을, 적어도 불교 기반 사회에 비해서는 합리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호랑이의 멸종이 천적으로 조선 유교 통치 기구, 지배층인 사대부의 인식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런 기반이 마련된 게 사실이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논과 밭은 강에서 떨어져 있었다... 잦은 홍수 때문에 강가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유달리 활동적인 호랑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강과 물가에 접근할 수 있는 조선의 땅이 아주 살기에 적합했다.(p20)" 확실히 호랑이는, 우리가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를 봐도 알 수 있듯, 물질을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이런 호랑이였지만, 조선 들어 농경 방법을 전면 개선하고 보다 효율적인 벼농사를 짓기 위해 물가로 더 가까이 이주하게 된 후로는 이런 물길을 통한 이동이 어렵게 되어 결과적으로 산중에 머물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 전 고려때까지만 해도 산 아니라 어디라도 호랑이가 자유로 돌아다녔다는 거죠. 


호랑이를 몰아내어야 사람이 그 땅에 정착하여 체계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조선에서는 1416년에 착호인이라 하여 조직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하는 인력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이면 한글이 창제, 반될 시기이기도 하죠. 발자국도 잘 안 남기려 바위 위로만 이동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그만큼 뛰어난 전문 지식이 필요했으며 착호갑사들은 호랑이의 배설물 등을 연구하거나, 특별한 포상 체계까지 고안하여 호랑이 사냥을 촉진했습니다. 포상이 두둑하다 보니 너도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 잡기에 나서기까지 했고 조선 정부는 과장된 영웅담을 퍼뜨려 이런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착호군은 무용이 출중하며 때로 왕의 신변 경호까지 맡는 최정예 부대였으며 공이 크면 고을 수령까지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착호군이 지방에 머물 때 대접이 융숭해야 했으므로 민폐가 적지 않았고, 이 때문에 호랑이를 잡는 게 아니라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원성(p35)도 있었다고 이 책에 나옵니다.


호피는 또한 국제 무역에서 좋은 가격으로 쳐 주는 인기 상품이었으며, 책에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고양잇과 고기를 즐겨 먹었다(p41)고 합니다. 즐겨 먹은 다른 고양잇과 동물로는 삵이 있었다고도 하네요. 이처럼 꼭 정부의 장려책이 아니었어도 어느새 민간에서조차 여러 이유로 호랑이 사냥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그 고기를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말까지 퍼져 고깃값이 매우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책 뒤 p119에도 탈북자들의 증언을 빌려 "아직도 북조선에서는 호랑이잡이가 로또"라고 하니 호랑이들의 수난은 진정 이 땅에서 끝이 없나 봅니다. 가죽은 다만 무늬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호랑이보다 표범의 것을 높이 쳤다고 합니다. 책 p132이하에는 여러 도판과 함께 조선 표범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할 만합니다. 


호피는 명, 청 등에서 공물로 자주 요구했고, 조선은 이런 과도한 공물 요구를 피하기 위해 세련된 외교술을 구사했으나 호피는 조선 중기 이후 정말로 대량 조달할 방법이 없어 서서히 맥이 끊어졌다고도 합니다. 왜에서도 호피, 매 등이 인기 상품이라 쓰시마에서는 저희네들의 본토에 바치기 위해 애를 써서 구입했다고도 책에 나오네요. 정부에서 거두어 간 호피만 해도 한 해에 여튼 1000장이 넘었다고 하니 이 땅에 정말로 호랑이가 많이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도 곳곳이 핏줄(p20)처럼 물길로 이어져서 그랬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호랑이가 많이 죽었으니 호랑이 입장에서는 "대학살(p53)" 수준이었겠다는 저자의 표현도 있습니다. 


윌리엄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은 한능검 수험서에도 자주 이름이 나오는 유명한 책이죠. 여기서 사냥꾼을 두려워하는 보통의 호랑이와 달리 용맹하게 자신을 방어할 줄 아는 개체를 당시에 "칼범"이라 불렀다고 나옵니다. 오백 년 가까이 사람과 대적하다 보니 호랑이도 그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겠습니까. 책 p65에는 17세기에 유독 호환이 심했다는 기록이 인용되는데 저자는 "호랑이가 사람을 집중 공격한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라고까지 합니다. 호랑이는 사냥꾼과 보통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아서라고 합니다. 착호군만으로 감당이 안 되자 훈련도감에서 병력이 차출되어 어지러워진 민심을 달랬다고 하네요. 


이 대목에서 저는 19세기 제국주의 영국에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고 철도를 건설할 때 식인 사자가 출몰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사자는 사람을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더 공포를 유발했었다는...


또 책에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던 비숍 부인의 책도 인용합니다. "조선은 개들의 천국이다." 사실 저도 영국이나 유럽과 달리 사냥 문화가 대중에까지 널리 퍼지지 않은 조선에서 왜 이렇게 개들이 많이 사는지 의아했는데 호랑이의 민가 습격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는군요. 역시 그리피스의 책을 보면, 병인양요, 신미양요 당시 프랑스군, 미군은 미개인들만 살 것으로 본 이 땅에서 의외로 화력이 좋은 군대가 정확한 솜씨로 반격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이 일부는 착호군의 용맹과 실력에 기인한 바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조선이 망한 후에는 일제가 들어서서 정책적으로 호랑이 사냥을 장려했습니다. 최창학이란 사람은 자신이 사냥한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진으로 유명해지고 큰 돈까지 벌었다고 합니다. 사실 개체끼리 만나면 호랑이만큼 무서운 동물이 없지만, 집단으로 몰려들어 사냥을 하는 사람들보다 야생동물에게 더 무서운 존재는 없습니다. p105에는 사람들에게 사냥을 당하며 어쩔 줄 모르는 불쌍한 호랑이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여길 읽으면서 저도 절로 동정심이 우러나오네요.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불이라는데 소설 <정글북>에서도 모글리가 시어칸에게 횃불을 들고 맞서는 일러스트가 아주 유명하죠.


이 책의 장점은 호랑이와 표범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여태 모르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적극적으로, "이 땅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호랑이들의 한"을 대변하는데 조금은 코믹하지만 여튼 우리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책에는 또 컬러 도판이 아주 많이 실려 있습니다. 작년에 발행되었던 홍범도 장군 관련 우표 2종도 나옵니다. 얼마전 홍범도 장군 유해(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미디어에서 요즘 그렇게 쓰니 일단 이렇게 사용하겠습니다) 봉환도 있고 했으니 시의적절한 환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독자로서 솔직히 민본 농본 정책을 국시로 표방한 조선 정부에서 호랑이 포획을 장려한 것 자체는 오히려 국가 시스템의 효율화라는 점에서 괜찮다고 봤습니다. 농사를 마음 놓고 지을 수 있어야 일단 백성이 편하지요. 필요 없는 살생이나 과시적 욕구를 위한 사치품 확보 등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고 직접 백성의 생업을 위협하는 요인을 정부가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직무 유기입니다. 역시 대민 수탈의 일환이라고 본다면 애초에 정부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물론 저자는 호랑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불쌍히 여기는 스탠스라서 저의 이런 감상은 책의 뜻에는 어긋나긴 하지만요. 여튼 여러 가지로 재미있게 독해될 수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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