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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쓸모 - 상한 마음으로 힘겨운 당신에게 바칩니다
홍선화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감정은 더하기와 빼기가 분명하다는 말이 있다(p25)." 예를 들어 뭘 배울 때, 그게 지식이든 세상 사는 요령이든 간에, 머리에 들어와도 들어온 것 같지가 않고, 또 분명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까맣게 잊혔고... 머리로 다루는 사항은 본래 더하기와 빼기가 불분명합니다. 이게 분명하다면 그건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감정은 누구에게나 평등합니다. 상처를 입었으면 그 감정의 상처가 오래갑니다. 반면, 좋은 일이 있으면 감정적으로 분명히 반응합니다. 이걸 해 냈다 싶으면 뛸 듯이 기쁘지 그냥 무덤덤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감정은 다 버겁게만 느껴져 거부하고 싶다." 사람이 기쁠 일이 있으면 또 슬플 일도 있다는 건데, 그럴 바에는 기쁜 일(이라기보다 기쁜 감정)도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는 거죠.
"우울증은 누적된 상처와 결핍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니 집중해야 할 건 우울증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상처와 결핍으로 다친 마음이겠다." 작은 상처라도 매번 소독하고 아물게 다스려줘야지 방치하면 그게 쌓이고 쌓여 큰 병 된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어디서나 면역력을 강조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팬데믹 이후에는 너도나도 면역력에 신경 씁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노이로제는 면역력을 떨어뜨린다(p32)." 비유적 표현인데 여기서 면역력이라 하면 신체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걸 뜻합니다. "정신적 면역력이 약해지면 스트레스에 쥐약해지고 작은 일에도 민감해진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아홉 살인데 자꾸 자기 손목을 커터칼로 긋는 아이가 있습니다. 일본에 이런 증후군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한국에 이런 경우가 있다니 확실히 어떤 기제가 있긴 한가 봅니다. 엄마 아빠가 무섭게 싸우고 나서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갔고, 그 후로 두 분이 별거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싸우는 것만 봐도 아이는 불안하고 무섭겠는데, 이런 일이 있었으니... 손목을 긋는 이유는 아이가 직접 말하는데 "내가 살아 있는 걸 확인하기 위해(p35)"라고 하네요. 한편으로 "그랬구나" 하고 수긍이 되면서도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섬뜩합니다. 그 예민한 곳에 칼이 가까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무섭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렸을 때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본 적 있는데 거기서 (일제 당국이 저지른) 주 목사의 살해 장면에 그 비슷한 설정이 나와서 지금까지도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저희 부모님은 왜 그런 무서운 영화를 애한테 보여 줬는지 원... (살아 있다는 건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여튼 이 대목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소아 우울의 위험성, 심각성에 대한 것입니다.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꼭 참고하실 만합니다.
요즘은 메타인지를 많이들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도 p47 "마음살핌"에서 초인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어떤 청중은 "초인지는 스캔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답니다. 나 자신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죽 훑는 일. 여튼 여기서 중요한 건 "내 생각에 시비를 걸지 말자"는 겁니다. 자꾸 "걱정하고 시름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면" 초인지는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감정 낭비, 학대 상태로 복귀할 테니 말입니다. 초인지는 내가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일단은) 바라보는 것이니까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반복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자신 속에 블랙홀을 만들게 하지 말라(p46)."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셀프 논박"입니다. 책에 나온 예를 그대로 옮겨 보자면 "울면 안 된다"를 "울어도 된다"로 뒤집는 건 셀프 논박이 아닙니다. 그냥 부정이죠. 이게 아니라, 왜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그 맥락, 상황(이게 중요합니다)을 떠올려 보고, 마치 제3자처럼, 상담자처럼, 내가 내 자신을 다독이라는 거죠. 이때 나오는 말이 "울어도 괜찮아"입니다. 이렇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어느 정도 마음의 힘이 강해졌을 때, 내가 내 자신을 달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실감 납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덫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구멍이 간혹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상처를 입으면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를 만들어 낸다.(p77)" 이런 걸 보면 그저 유기체의 대사 작용만으로 육신이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게 효율적이든 그렇지 않든 심리적인 무엇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동물이 무척 신기합니다. 아마 동물도 어느 정도는 그럴 것입니다. 망상이란 무엇인가, 이 방어체계가 이떤 이유에서든 뚫리면 만들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p79에서는 정신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의 말 "Descent into a state of Reverie!"가 인용됩니다. descent가 동사로 쓰인 예죠. 저자가 이 앞 페이지에서 인용한 <정신적 은신처>는 검색해 보니 구순을 바라보는 존 스타이너 교수의 유명한 저작이더군요. 독자인 저도 다음 기회에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조절력을 상실한 사람의 최선의 선택은 조절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p106)."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이미 상실된 능력으로 뭘 하려 해 봐야 오히려 역효과가 날 테니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가면 더 나빠질 데가 없다." 이 말도 참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인데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되겠냐는 의심도 들었습니다만 저자는 실제로 바닥을 치면 그 반작용으로 올라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올라오긴 하는데, 방향이 바뀌기는 하는데 실제로 얼마까지 다시 회복되느냐는 또 별개 문제고 일단 방향 전환의 동력을 얻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거죠. "그런 다음에야 그걸 끊어낼 마음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강조합니다. 정신적으로 어디가 아픈 사람, 알코올 등에 중독된 사람은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힘으로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일단은 전문가나 전문 기관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야 하며, 저자는 또한 "자율학습"도 권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찾아서 읽으라는 겁니다. 이때, 물론 당사자가 스스로 책을 읽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면 좋겠으나, 옆에 있는 가족도 책을 찾아 주고 같이 읽으며 길을 함께 찾아나가는 걸 이 책 여러 군데에서 저자는 권하는 듯했습니다.
대략 몇 년 전에 어느 정신질환자가 아직 어린 아이(생판 남)를 창 밖으로 던지는 사고가 났는데, 보통 매체에서는 정신질환자에게 편견을 갖지 말자고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체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해하는 어느 어머니의 하소연을 접한 적 있습니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오래 전에 이미 결론이 나 있고 문명 세계 공통의 해법이긴 합니다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매우 부족하죠. 한편으로 그 가해자(...)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무슨 죄나 지은 것 같고... p140에 사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이런 경우는 참 답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당사자끼리 조금씩 양보해서 역지사지하는 수밖에....
우리 나라에는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남의 장점이 보이면 내가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타입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코지에 나서는 인간도 있는데 당하는 사람도 그걸 가만 참고 볼 리가 없으므로 결국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을 시기하는 못난 본인 손해입니다. 법으로 된통 당하면 그때 가서 물질적 손해가 나는 건 일단 별개로 하고, 시기하며 배알이 뒤틀려하는 그 순간도 결국 본인의 감정 대미지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 모든 시기심에 감정의 깊은 뿌리가 있으며 일단 남과 나를 비교하는 습관 자체를 멈추라고 충고합니다.
어떤 자계서에서는 "당신이 백만장자가 되고 싶으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걸로는 불충분하다. 이미 된 것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하던데 이게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돈을 쓰고 거드름을 피우라는 뜻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절실한 마음가짐이 있으면 마인드셋과 행동 자체가 모두 달라진다는 건데, 사실 가난한 사람은 애초에 가난뱅이의 습관과 사고 방식이 몸에 물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쩌다 큰 돈이 생겨도 이를 잘 간수하지 못하고 날리는 일이 많죠. 부자는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돈을 필요한 곳에만 쓰는 사람입니다. 비슷한 논리로, 저자는 알코올 중독자 등 각종 질환자들에게 "당신이 이미 병을 고친 것처럼 행동하라(p174)"고 합니다. 중독자 중에는 자신에게 셀프 단죄를 하는 유형이 있어서, 잘못인 걸 알면서도 중독자의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평생 중독에서 못 벗어나죠.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이, 이미 날씬한 몸짱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한다면 아마 겁나서, 몸매가 아까워서 음식을 더 이상 못 먹을 것입니다....라고 여기며 독자인 저도 이미 날씬한 사람이 다 된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마음을 잃고서는 그럴 줄을 도통 모른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게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p207)
어디 학문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이 성실하고 보람된 일상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을 바로 다스리고 있어야 할 곳, 가야 할 길에 제대로 놓는 게 최우선입니다. 마음을 챙기는 방법을 자꾸 소홀히하면 결국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환우들처럼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분들도 꼭 제 자리로 돌아오셔야 하겠고, 우리들도 부쩍 경각심을 가지며, 먼저 내 마음 내 감정을 잘 돌보는 게 가장 우선순위가 높고 큰 일 하는 것이라는 점 다시 새겨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