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 직장인, 길을 찾다 -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깨우는 비밀
이태우 지음 / 미래와사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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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십 년 넘게, 다른 분야도 아니고 HRD을 다뤄 온 저자는 다름 아닌 본인이 내향인이라고 밝힙니다. 예전에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자사 신입사원들(상당수가 명문대를 나온 젊은이들)에게 번화가 한복판에서 영업활동을 시키기도 했고 한강백사장에서 씨름을 시키기도 했다고 전하죠. 내향인이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거나 사람 접촉이 드문 업무에 종사할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회사 같은 곳에서 조직인의 직분을 맡으면 꽤 어려워집니다. 직장내 따돌림 등 문제에 휘말리는 것도 대체로는 내향인들이며, 그걸 떠나서 내향인은 아무리 점잖고 신사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조직 안에 속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내향인은 내향인으로 태어난 자체가 어려운데, 사회와 조직 안에 적응까지 하려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책이나 직종이 진즉에 나왔어야 했죠. 우리 독자들도, 혹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주변에 이런 성격 문제로 고민을 넘어 고생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 인싸 체질이 아닌데 그런 외양을 유지하느라고 애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도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성격 문제는 여러 학자들이 그간 구분을 시도해 왔으나 이 책에서는 p52 등에서 아이젠크의 모델에 기초를 두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안정-불안정이 하나의 축이고, 내향-외향이 다른 하나의 축입니다. 담즙질, 다혈질, 점액질, 우울질의 네 가지로 유형이 나뉘며, 과민~느긋~태평~사려~진지 등으로 32개 성격이 다시 나뉩니다. 이 중 내향성 축에 매우 가깝고 안정보다는 불안정 축에 가까운 게 "소심(reserved)"인데 저자 스스로는 32개 유형 중 여기에다 자신을 넣습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잠시 회고하는데, 특히 초등 6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성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폭력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이들에게는관대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이 저자분 나이 또래들에게는 이런 선생이 일종의 유년 트라우마를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촌지를 쥐어 주고 나서 잘대해 준 게 드러난 어떤 선생 이야기가 나오죠. 성격은 이때 형성되는 게 사실은 아닙니다만 여튼 저자의 자존감은 이 시기에 크게 꺾였다고 합니다. 성격은 타고난 바도 크지만 후천적 요인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능력도 없는 인간이 돈은 돈대로 밝히며 평판이 나쁜 학교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물론 훌륭하신 선생님들도 있습니다만.


"내향인으로 태어난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상하게도, 내향인은 그저 자신이 성격이 그럴 뿐인데 거기다가 죄의식이나 수치감까지 느낍니다. 사실 죄의식을 느껴야 마땅한 사람 중에는 구태여 따지자면 외향인의 비중이 더 높을 텐데도 말입니다. 우리 나라 엄마들이 어린 자녀의 공공질서 위반에 대해 "애 기 안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유독 더 관대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남한테 당하고 사는 애보다는 차라리 남한테 폐 끼치고 사는 사람으로 크는 게 더 좋다고 여기는 거죠. 성격이 내향적이면 우리 나라 같은 분위기에서 손해 보는 게 너무 많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p38에서 특히 한국은 폐허 속에서 국가를 재건하며 짧은 시간 동안에 압축 성장을 이루느라 외향인의 능력, 덕목을 더 중하게 여긴 탓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좀 소심하다 싶으면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도 나오듯 강남의 좋은 학군에서 성장한 경우입니다. 


p62에서 저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직장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상사: "이런 덜 떨어진 놈!"

1) 자존감 높은 부하직원 -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겠습니다. (당신의 그런 심한 말이 나의 자존감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2) 자존감 낮은 부하직원 유형 1 - 자책. 수용. 자기비하. 

3) 자존감 낮은 부하직원 유형 2 - 강한 부정, 분노. 그러나 결국 크게 흔들리는 자존감. 


말하자면 이 책은 2)나 3)을 1)로 최대한 바꿔 주려는 목적입니다. 3)은 겉으로는 엄청 쎄게 보이지만 결국은 2)와 다를 바가 없고 위태로운 상태이며 스스로를 잘 지키기 어렵습니다. 즉 저러한 외부 자극에 여유를 갖고 대처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거죠. 2)만 문제인 게 아니라 이 책에서는 3)도 심각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p65에는 크리스토퍼 머룩 박사가 정리한, 자기 가치감과 자기 효능감을 두 축으로 한 자존감 분석 매트릭스가 나옵니다. 머룩 박사는 "자존감" 연구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심리학자이죠. 책에서 이 부분 내용 소개가 아주 잘되어 있기 때문에 저도 이 독후감에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가치감 높고 효능감 낮은 유형 -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타인의 평판에 잘 휘둘림. 나르시시즘에 쉽게 빠짐. 우월감이 열등감으로 쉽게 바뀜. 

2) 가치감 효능감 둘 다 낮음 -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소심하며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3) 가치감 낮고 효능감은 높음 - 자신의 역량에 의한 결과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매김. 따라서 타인 평판에 민감. 완벽주의 성향. 능력 떨어지는 타인을 함부로 대함. 반사회성향 위험. 간혹 자기비하. 

4) 가치감 효능감 모두 높음 - 저자는 이런 유형이야말로 진정한 자존감이 높은 유형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의미에서 자기 중심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외부의 자극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분류에서도 위의 2)와 여기에서의 2)가 잘 통하며, 3)도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 2편, 3편에서 다섯가지 과제를 독자에게 제안합니다. 2편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하기"에서는 자존감 회복과 나를 대하는 마음가짐 재설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3편 "조용하지만 강한 힘 발휘하기"에서는 삶의 목적 발견하기, 일을 의미 있는 활동으로 재배치하기, 내향성을 빛나게 하는 무기 개발하기 등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저자는 먼저 나를 마주해 보라고 합니다. 이 책 1편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초6때 경험을 정리하여 독자에게 들려 주는데 내향인 대부분은 이런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다만 회상하기 괴로우니까 그냥 망각 속에 묻어 두기를 시도하는 건데 이게 결코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문제를 모두 떠올려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게 우선이죠. 그 다음은 자기를 긍정해야 합니다. 물론 이게 잘 되지는 않죠. 못난 모습은 모습인데 그게 긍정한다고 멋있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최대한, 어린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하고 상처 받은 나를 최대한 이해하며 달래 주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가해를 한 사람(저자에게는 그 선생)을 용서하고, 부분적으로 고마워할 점이 있다면 감사까지 해 보라고 합니다. 물론 이건 무척 어렵습니다만 이 과정이 만약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내 상처가 그만큼 더 확실히 낫습니다. 이 과정은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는 건 안 하느니만도 못합니다. 다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진행해야 하며 그저 상처만 달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인격도 그만큼 성숙해지는 거죠. 책에서는 틱낫한 스님의 말도 인용합니다. 


특히 저자는 "내면과 외면의 디커플링"에 대해 지적합니다. 저자는 좋은 스펙을 쌓고 남부러울 것 없는 회사에 입사하였으나 이 내향인 성격 문제가 내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책에는 "이 세상은 외향인들의 독무대"라는 구절이 자주 나옵니다. 발표도, 회식자리에서의 매너도, 대인 관계도, 영업도... 아마 이 구절이 많은내향인들, 조직 내에서 다 그 나름 능력도 좋은데 매번 성격이 발목 잡는다고 느끼는 내향인들에게 정말 공감이 될 것 같습니다. 어려서 중상 이상의 지인들만 곁에 두고 성장했을 저자 같은 분이, 지능 컴플렉스를 쉽게 떨치지 못했을 경우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야 훨씬 높겠지만 주위에 유독 똑똑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겠습니까. 여기서 저자가 제안하는 게 "나만의 장점을 찾고 나만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자"는 겁니다. 자존감도 그렇고 삶의 질 문제에서 저는 이게 핵심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p185 이하에서는 직업관의 차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저 생계 수단인 직업이 있고, 커리어 관리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있으며, 이게 내게 주어진 소명(calling)이라는 의의를 가진 직업이 있습니다. 몰입도나 성취감 면에서 세번째 직업관이 최상의 효과를 낼 것이라는 건 자명합니다. 이 분류를 심리학에 접목시킨 분은 Amy Wrzesniewski 예일대 교수이죠. 직업이 소명이 되기 위해 저자는 관계 크래프팅이라는 걸 제안합니다. p189의 정의에 따르면, 이는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의 관계를 변경하는 걸 뜻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이 행위자를 지배하는 어떤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만의 리듬(p207)이 먼저 설정되어야 합니다. 


내항인은 일을 추진할 때 리스크를 먼저 고려합니다. 이익을 먼저 떠올리고 그로부터 동력을 얻는 외향인과는 다르죠. 또 외부를 향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외향인과 달리 내향인은 그 에너지가 내면으로 흐릅니다. 이런 내향인이 일을 재배치하려면 긴급성과 중요성을 양 축으로 삼는 p219의 2x2 매트릭스에 따라 모든 일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p244 이하에는 자기만의 무기 중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자세히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 내용이 너무 좋아서 내향인 주제와는 무관하게, 더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성격 유형과 무관하게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독자들, 혹은 어린 학생들이 독서 논술 능력 제고를 시도할 때 이 부분을 읽히면 좋겠다 싶더군요. 여튼 저자는 내향인들이 타 유형에 비해 이처럼 깊이 침잠하고 몰두하는 분석력 계발 면에서 유리하다는 주장을 폅니다. 단지 너무 이쪽을 계발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중요한 우선순위를 게을리할 수 있으니 직장에서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p258 이하에 이어지는 맥킨지 모델, GE 모델, 3M 모델, 케프너 모델, DMADV 모델 등이 설명되는데 웬만한 경영학개론, CPA 수험서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GRIT은 우리나라에서도 대략 8년 전에 번역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저자는 특히 저 책의 결론을 내향인들에게 알맞게 변형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하는데 첫째 관심가는 일을 하라, 둘째 높은 목적의식을 가져라, 셋째 의식적 연습을 하라, 넷째 낙관주의로 다시 일어서라, 등으로 요약됩니다. 성격이 내향적이라는게 다른 사람을 능숙히 잘 못 대한다는 거지 내면의 에너지, 능력 등이 뒤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겠죠. 책이 비교적 두꺼운 편이며 무엇보다 저자 본인이 성격 문제로 고민했고 이를 실천적, 이론적(이 문제로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한 분입니다)으로 극복한 분이므로 해당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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