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클래식 - 지휘자 여자경이 들려주는 일상 속 클래식
여자경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음악을 듣는 사람에서 성장해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국내 최고의 여성 지휘자인 여자경 저자가 이 책 p5에서 우리 독자들에게 겸손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음악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책에 나오듯이 우리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뭔가 마음이 어지럽고 안정되지 못할 때, 심지어 코로나블루가 엄습해 올 때에도 음악을 듣습니다.


저자는 음악이야말로 우리에게 신이 준 가장 큰 축복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리가 외국 영화를 볼 때 해당 언어의 관습, 문법, 문화적 배경, 어휘를 못 알아들으면 온전한 감상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고전음악은 어떤 문법이나 지식 등이 딱히 필요 없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아름다운 선율은 어느 누구라도 작곡가의 평온하고 안정된 심성(의도)에 공감하고 그 효과를 나눠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베토벤의 로망스를 들어 보면 당장이라도 그 절절한 구애와 열정과 안타까운 감성을 전해 받고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을 수가 없죠. 이처럼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데에 어떤 자격 요건이 전혀 필요 없는데 이처럼 고귀한 감정의 정화를 겪으면서 오로지 청각 경험만으로 가능하게 돕는 매개체라면 음악말고는 없다시피 합니다. 


생상스 작곡 동물의 사육제는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널리 듣고 감상하는 명곡입니다(성인이 되고 나면 그 중 <백조>만 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만). 책 p18에서도 이 모음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백조>를 꼽습니다. 


우리가 서양고전음악을 어렵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가, 이름이 따로 붙지 않고 작품의 형식에 따라 나눈 후 번호만으로 부르는 데에도 있죠. 그래서 곡명을 정확히 기억하려면 사실 공부가 따로 필요합니다. 미뉴엣이 뭔지, 협주곡이나 소나타가 뭔지, 조성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해당 곡과 이름이 정확히 매치되겠죠. 이 책 pp.28~29에 쉽게 잘 설명됩니다. 또 "표제음악"에 대해 pp.63~64에서도 아주 시원하게 설명이 이뤄지네요.


비발디는 오늘날 우리가 광고 배경 음악, 효과음 등으로 일상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명곡들을 작곡한 분입니다. 예전 어느 가수는 그의 작품 <겨울> 2악장을 자신의 노래 중에 샘플링하기도 했죠. 저자는 비발디 선율 고유의 특징, 즉 "느린 악장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빠른 악장을 배치(p46)"하는 경향을 예리하게 짚어내며, 바로 여기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비결이 있음도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스트라빈스키가 그의 독창성 부족을 꼬집기도 했는데,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가수 나훈아씨의 작품(자작곡)들도 따지고보면 서로 비슷비슷합니다. 스트라빈스키에 대해서는 책 저 뒤 p160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집니다. 


쇼팽은 폴란드 망명자 출신으로, 역시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사랑 받는 주옥 같은 곡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녹턴으로 대표되는 서정적인 곡이 있는가 하면, <혁명> 같은 작품은 정말 한 시대가 송두리째 변하여 일체의 악습과 구폐가 사라질 듯한, 박력 있고 설레는 곡조가 지배합니다. 과연 같은 사람이 작곡한 게 맞을까 싶을 만큼요. p55에는 바리아스의 회화, 쇼팽의 죽음 순간을 포착한 멋진 그림이 실렸는데 이처럼 이 책에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지는 않는) 컬러 도판이 적절한 곳에 함께 실려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p164에는 그의 작품 <강아지 왈츠>에 대해 자세히 풀어 줍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사랑 받는 게 클래식곡의 특징이며, 그 중에서도 유독 근래 들어 예전보다 더 자주 들리는 게 바흐의 곡들입니다. p87애서 저자는 "천재인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했던" 작곡가로 그를 극찬하며, 무려 20명의 아이를 낳은 다둥이 아빠로 설명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로맹 롤랑의 장편 <장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의 일생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으나 그 본문 중에는 "빈민굴에서 지내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녀를 둔 바흐의 비참한 삶"에 대해 개탄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G선상의 아리아 같은 건 가사가 붙은 가요, 배경음악 등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포맷으로 편곡되어 여전히 우리가 자주 듣는 명곡입니다. 이게 원래는 다른 포맷이었는데 후대의 연주자 아우구스트 빌헬미가 바이올린 G현만으로 연주 가능하게끔 편곡한 후에 오늘날 우리가 듣는 그런 형태가 되었다고 책에 자세히 설명(p88)이 나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역시 우리가 다양한 경우에, 주변에서 참 자주 듣는 곡입니다. 클래식곡이 "깊은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건 좀 아이러니이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문외한들이 그런 용도(?)로 쓰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는 이 곡을 숙면용 배경음악으로 추천하면서도, 사실 이 곡은 기법이 매우 화려(p107)하고 연주 파트가 꽉 찬 곡이라서 수면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라고 귀띔도 해 줍니다. 바탕이 되는 선율이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수면이면 수면(?), 다른 용도면 또 그에 걸맞게 다양한 편곡으로 응용이 가능한 듯합니다. 


프란츠 리스트도 그의 곡에 가사가 붙거나 적절히 편곡되거나 해서 오늘날 대중이 그의 이름을 설령 모른다 해도 곡조만큼은 잘 아는 명곡들을 많이 지은 작곡가입니다. 이분은 생전에 너무도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는데 작곡가로서의 위대함 못지 않게 그 로맨스 행각으로도 유명하죠. 더크 보가드 주연의 영화도 만들어진 게 있습니다. 책에는 p137 이하에서 리베스트라움, 즉 <사랑의 꿈>에 대해 가사 해석도 덧붙이며 재미있는 설명을 들려 줍니다. 


요즘 배우 이제훈을 기용한 IBK기업은행 광고를 보면 배경음악으로 <랩소디 인 블루>가 나오는데 이 책 p212 이하에 자세히 그 탄생 배경에 대해 나오네요. 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이렇게 전에 전혀 없던 새로운 선율로 발랄함과 장중함과 몽환적 분위기와 명징한 각성을 두루두루 잘 표현했는지, 과연 천재의 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감탄을 절로 연발하게 됩니다. p214의 모리스 라벨은 우리가 잘 아는 볼레로의 작곡가인데, 그에게 한 수 배우려고 찾아온 거슈윈에게 "당신은 이미 일류인데 누구에게 뭘 배우려 하느냐?"고 되물은 유명한 일화가 이 책에도 잘 나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클래식도 이처럼 명쾌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하면 그 풍취와 감흥이 몇 배는 더 증폭되는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