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토크라시 - 모두를 위한 21세기 실천 교육 미래 사회와 우리의 교육 2
이영달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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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화(p75)"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기업이 연구 개발, 상품화를 할 때 과거에는 내부 R&D, 외주 정도에 그쳤다면, 이제는 "기업대학"을 활용해 심화된 연구개발을 행하며, 인력의 교육, 채용, 조직 내 역량 개발에까지 이른다는 거죠. 또 이런 "기업대학"은 잠재적 고객, 일반 대중, 기업을 상대로 한 교육도 수행한다고 합니다. 나쁘게 보면 대학의 기업유착, 상업화이지만 기업과 대학 입장에서 보면 비용도 절감하고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앞에서 "인력의 교육, 채용, 조직 내 역량 개발"라는 기능을 언급했는데, 현재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업대학은 벌써 "5세대" 버전이며, 저 기능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이미 4세대 기업대학에서 다 구현된 것입니다. 우리도 아마 산학협동이라는 프로젝트를 재학 중 직간접으로 겪어 봤을 터입니다. 


책 p52 이하에서는 전통적인 우수 공과대학과 기업대학의 예를 하나씩 들어 설명합니다.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 캐나다에는 워털루 공과대학이 "현장 실습 교육"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현장 실습 교육"은 줄여서 co-op이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자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은 University of Waterloo인데, univerisity는 그저 "종합대학(非단과대학)"으로 기계적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대학을 둘러싼 대학 체계를 가리킨다는 설명이 이 책 1권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식 개념으로는 분명 종합대학인데도 컬리지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었죠. 혹은, 오랜 전통으로 그리 이름이 익었기에 놔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여튼 그처럼이나 우수 co-op으로 이름이 높지만, 이 책에서 역점을 두어 소개하는 또하나의 예인 다이슨 공과대학은 저 co-op의 레벨을 훨씬 뛰어넘어, "산학 일체 몰입 교육"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무 특정 기업의 업무에만 최적화한 인력 양성이 아닐까 우려할 수도 있지만, 마치 독자의 그런 우려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책에서는 "전인적 엔지니어의 육성"에 주력한다고 나옵니다. 삼성도 대략 십 년 전에 "반도체 사관학교"의 설립 운영을 발표한 적 있고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향후 결과를 지켜볼 일입니다. 


1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첨단 산학 협동 양상, 교육 제도 등을 소개, 분석, 전망하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둔한 독자에게는, 왜 책 제목이 "메리토크라시"인지? 하는 의문이 아직 해소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한국에서는 "수능 일원화 입시 전형(다시 말해 정시 통합 선발)"을 주장하는 쪽이 메리토크라시 옹호론자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죠(이게 옳건 그르건 간에 현재 통념이 그렇다는 뜻). 그런데 이 책의 입장은 정반대입니다. 특히 1권에서 정시 위주 전형은 시대 트렌드에 반하는 길이라는 입장을 저자는 명확히 밝힌 바 있었습니다. 이 2권 p159 이하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의의를 두어 독자를 깨우치고자 하는 메리토크라시의 개념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논의를 펼칩니다. 


우선 메리토크라시 옹호론자(한국 한정)는 대체로 엘리트 양성론자가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국영수 교육을 충실히 받고 이런 탄탄한 배움의 기초 위에서 심화, 상위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한다는 편이죠. 이 책에서는 그런 개념을 "전통 엘리트"라 규정하며, 반대로 다이슨공대, 피플대학, 미네르바스쿨, 올린공과대학 등에서 배출하는 혁신형 인재 중시 경향, 혹은 그의 양성 시스템을 "네오엘리티즘"이라 부릅니다. 특히 이런 신 엘리트들은 "혁신을 통한 경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승자 독식"이라는 현상과 매우 가깝습니다. 


확실히, 예컨대 국민 앱을 만들어 낸 배민 창업자라든가 카카오의장 같은 분을 보면, 예전에 사시 합격 후 판검사 코스를 밟아 정치인이 되던 이들, 혹은 이름난 의사, 삼성전자 회장단 같은 이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통 엘리트들은 평생에 걸쳐 경력과 평판을 쌓고, 재산, 부 등은 인생의 후반에나 가서야 남들과 현격히 차별화할 만큼 축적하곤 했죠.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신 엘리트들은 대부분이 영 앤 리치입니다. 또 어떤 과시적 소양, 품격, 뭐 이런 것과는 외모에서부터 좀 거리가 있다는 인상입니다.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또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이전 세상에는 없던 어떤 계층, 성공사례, 파워, 이런 게 지금 새로 생성되며 또 실력을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전통 엘리트는 전통적으로 명문학교라 여겨지는 곳의 졸업장을 받아 사회에서 출세의 발판, 위신의 상징으로 활용합니다만 이른바 신 엘리트들은 2년제 전문대학을 나온 이들도 꽤 많습니다. 


책에서는 이어 사이먼 사이넥의 견해를 인용하여, 종래 미국 사회에서 널리 수용된 "라이트 형제 = 밑바닥에서 시작한 건실한 기업가, 새뮤얼 랭글리 = 그저 유명해지고만 싶었던 '관종' 실패자" 라는 이분법 등식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랭글리 역시 현대의 눈으로 보면 혁신가의 면모를 분명히 갖춘 사람이었으며 이후 비행기 발명과 실용화의 크레딧을 모두 가져간 라이트 형제 못지 않게 해당 성과에 자신만의 기여를 한 사람이라고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네요. 사이먼 사이넥의 의도를, 해당 강연을 아직 못 본 입장에서 독자인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랭글리의 좌충우돌식 생애가 현대의 괴짜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닮은 면이 많다(물론 생전에 성공을 못했지만)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라이트 형제의 업적을 까내리는 건 아니며, 다만 빈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세간의 이미지는 과장된 게 많고 엘리트인 부모 밑에서 처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유리한 점도 분명히 부각해야 한다는 편입니다. 


한때 영국은 신분제의 고루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애초에 인류사 최초의 산업혁명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난 본고장이며 여왕부터가 평민(이기는 하나 엄청난 부자) 가문에서 손자며느리를 맞이하는 등 열린 마음으로 사회, 경제 혁신을 장려하는 길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책 p284에서는 "표준적인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먼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한다"며 편향적이지 않고 전인적이며 사회 친화적인 CEO 육성에 주력하는 그 나라의 풍토를 엿보게 돕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다시 강조하는 바는 "실력과 매력이 학력과 재력을 이기는 시대(p263)"입니다. 물론 실력도 매력도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부풀려진 에고, 과대망상, 현실도외시, 허풍 등으로 폭주하는 인간을 두고 신 엘리트라고는 하지 않죠.


과연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 책에서는 다소 비관적인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합니다. "학업적 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건 지능이며, 60~80%는 유전적으로 좌우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p323)" 여기서 저자는 매우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전환하는데, 이처럼 그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되다시피하는 학업적 성취(이에는 그 부모가 만들어 놓은 교육 자본도 크게 기여합니다)라 하여 메리토크라시를 무작정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향평준화, 창의력 퇴행 같은 매우 비생산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다는 거죠. 


교육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이동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다만 이것이 전통적 엘리트 양성의 틀에 박힌 교육이 되기보다, 창의력과 혁신 정신을 발휘하여 변혁을 이끄는 네오 엘리트의 출현을 돕는 것이어야 하며, 이런 이론적 제안 이전에 이미 한국에서 속출하는 스타트업 전문가들의 출신 배경을 봐도 그 타당성이 확인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해 없이 이해된, 참된 페다고지와 안드라고지가 동시에 구현되는 교육심리학 인프라"에 투자하자고 하며, 이것이 사회에 팽배한 불만 해소와, 모두를 위한 사회, 경제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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