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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토크라시 - 학교 교육의 새로운 미래 ㅣ 미래 사회와 우리의 교육 1
이영달 지음 / 행복한북클럽 / 2021년 8월
평점 :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교육 제도의 정비와 원활한 기능은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한국 역시 그 근대화 성장기를 보면, 비록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수월성 교육이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삼성, 현대, SK 등의 성공은 그저 오너의 담대한 결단과 영리함에만 기댄 게 아니라 해당 기업들이 보유한 우수한 인적 자원, 천재적인 엔지니어들의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가오는, 급변하는 미래에도 지금의 교육 시스템으로 대처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면 이는 대단히 안이한 생각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노동자"의 등장으로 기존에 당연히 여겼던 우리의 모든 상식과 생산 구조, 기여의 방식과 과정이 바뀔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기서 "디지털 노동자"란 손발과 기술과 감정을 지닌,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AI, 로봇 등이 결합한, 지금의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그런 디지털 솔루션을 뜻합니다. 이는 제법 멀리 남아 있는 미래의 상황이 아니라, 저자가 2017년(그러니 "과거"인 셈입니다) 미국 어느 회사를 방문하여 직접 "만나고 온" 아멜리아라는 디지털 은행원(p7)으로 대표되는 현재진행형의 현실입니다.
이미 일본의 어느 회사는, 사람이 진행하던 고객 상담 서비스를 로봇 등 시스템에게 대신 시킨다고 하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그래도 텔레마케터 한 자리 정도는 있겠지, 택시라도 몰면 되겠지 같은 어떤 최후의 보루는 아직 남아 있다고 여기기 쉽지만, 미래에는 정말 이런 일자리도 자동화, AI에 밀려 사라지는 겁니다. 그러니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 완전히 달라진 사회의 수요에 대응하고, 실직의 염려를 일소할 필요가 생기는 거죠. 교육 혁신은 사치나 잉여의 걱정이 아니라 절실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2020. 6. 22.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라는 회사가 토요타의 시총을 넘어선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저 무렵 한국의 2030세대도 이른바 서학개미라고 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최고가를 갱신하는 저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느라 난리였죠. 저자가 이 기업을 새삼 거론하는 건, "태생적 디지털 기업"의 범주가 현재는 자리를 굳히는 현실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낯설 것"이라며 음원 스트리밍 기업인 스포티파이도 거론하는데 현재 TV 광고가 제법 자주 집행되기 때문에 마냥 낯설지만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유독 입시 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고, 대치동 등 학원가가 거의 세계적 규모로 집적될 만큼 사교육이 극성을 이루는 건, 젊은이가 출세하는 루트가 명문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보다 쉽게 취업하는 길 거의 하나로 굳어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당연히도) 그렇지 않으며 재능 있는 젊은이가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길이 다원적으로 보장되어 있기에 기여 입학제 등 대학의 자율권도 폭 넓게 인정됩니다. 책에서는 "창업의 세계"가 젊은이들의 참다운 자아 실현의 경로로 널리 인정되어 가는 추세를 지적하며 어떤 학교의 학위 같은 것이 그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이 더 이상은 아님을 환기합니다.
지난 30여년 간 한국에서 대기업의 눈부신 발전을 이끈 고급 두뇌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는 걸까요? 그럴 리는 없으며, 다만 장래성 있는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이 부쩍 두드러지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특히 미국은 알찬 박사과정 교육제도의 마련으로 외국의 우수한 젊은 두뇌를 부쩍 많이 흡수한다고 합니다. 창의력과 자율성을 대폭 지원하는 미국의 시스템과, 관료주의 문화에 찌든 한국의 그것 중 젊은 고급 인력이 어느편을 선호할지는 자명합니다.
조기 유학 등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학부형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미국의 학제가 한국의 그것과 거의 대응이 되질 않고,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유형 수가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게) 매우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책에서는 특히 최근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공교육 실태(CCSS 중심)와, 오래 전부터 각각의 정체성을 부각하며 발전해 온 사교육 체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순전히 유학 준비용으로도 이 파트는 매우 유익할 듯합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개발도상국 교육 시스템의 특징은 "획일화"입니다. 이는 산업화 시대에 기업이 요구하는 최소 수준의 인력을 길러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양성과 창의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현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으며, 충격적이게도 "개인화된 학습"을 지표로 삼는 미국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맞춤화한 인재상, 개개인이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돕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나갑니다.
요즘은 특히 한국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고 과학적이라는 한글 문자를 사용하면서도)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실질 문해력이 뒤떨어진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자주 언급되는 편입니다. 물론 이 연구라는 게 어느 정도나 신빙성을 갖추었는지는 검토가 더 필요합니다만 우리 주변에 "문서나 고지를 이해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충격입니다. 가뜩이나 독서 인구의 비중이 낮은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는 특히 학생의 독립성과 문해력 제고에 높은 비중을 두는 미국의 풍토를 지적하면서 그저 문학 지식 암기에 치우친 한국 국어 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합니다.
한국은 지금 일부 한문 교육이나 문학 시간에 단편적으로 접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고전어 교육이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15세기 우리 조상들이 어떤 어휘와 문법을 구사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고교에서 거의 배우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실용 교육을 중시하는 미국조차도 고등학교에서 (실생활과 거의 연관이 없는) 라틴어, 헬라어, 수백 년 전 영어의 모습을 담은 셰익스피어 작품이 커리큘럼에서 빠지질 않으며 특히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에게는 필수 중 필수 과목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암기가 아닌 분석적이고 사색적이며 인간의 깊은 심리와 정신 구조를 이해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게 저들 제도의 특성이라는 거죠.

인도나 중국은 지난 10년 간 세계 경제의 주요 동력을 제공했는데 그의 원천은 이공계 대학입니다. 이들 나라는 인구가 워낙 많은 데다, 근래 이공계 교육 열풍이 일어 해당 분야의 많은 인력을 배출했고 이들은 미국의 IT 기업에 취직하여 톡톡한 노릇을 해 냅니다. 반면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거의 인권 문제를 걱정해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다시피한 형국이죠.
한편 미국의 시스템에도 그늘이 있는 것이, 학생의 능력 계발이 전통적 대학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다 보니 기존의 대학 수요가 줄어들거나 연구, 강의 인력이 비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프라인 전통 방식 백화점의 폐업 현상에 비깁니다.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도 위기를 맞는 곳이 많았는데 한국도 전문대 충원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고 하죠. 여기서 오히려 칼리지 이노베이션을 모색하는 시도가 생겨, 미국의 경우는 이곳이 창업의 요람 구실을 하는 경향마저 새로 생긴다고 합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대학 시스템보다 존재감이 더 커지는 게 미국의 현실이라고 하니 위기는 정말로 곧 기회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자나깨나 의대만 강조하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연구 중심 대학이 더욱 각광받는 추세라고 하며 거버넌스, 혁신 생테계 구축의 핵심에 대학이 제 몫을 다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지자체의 핵심인 주(state)가, 주지사부터 해서 교육 제도의 혁신과 지원에 두 발 벗고 나서는 트렌드라고 하니 한국의 현실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