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 10개국에서 디자이너로 살며 배운 행복의 조건
줄리킴 지음 / 청년정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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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틀에 박힌 삶, 튀지 말고 그저 남들만큼만 해 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창의력과 의욕, 아이디어가 남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자아실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저자께서는 "언제나 나는 남들보다 아주 늦거나 아주 빨랐다"고 하시는데(p22) 사실 시기가 늦고 빠른 게 딱히 문제라기보다, 남들과 좀 다른 개성을 뽐내고 튀는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하면서 어떤 불만, 불편한 느낌(?)을 피력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남들처럼 제때 대학에 입학, 졸업을 했어도 역시 평가는 마찬가지였겠으며, 개성이나 자신만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운이 없어서(가난이라든가) 뭐가 남들보다 늦은 사람한테는 좀처럼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누구에게나 틀에 박힌 삶을 어느 정도 강요하다시피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젊은 시절부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 기반을 일구고 남들보다 훨씬 만족스러운(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간에) 삶을 사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며,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합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여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가 쉽지 않고, 더군다나 여성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사회 활동에 여러 제약이 많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남자들의 여건에 어디 비기겠습니까.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매우 수가 드물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왜냐면 워낙 남자 위주로만 짜여진 세상이므로) 사업상의 큰 성취를 척척 해내는 철의 여인들이,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도 남모를 고충이 있고 사업상의 고비에서 맞이하는 여러 어려움을 이겨 내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는 듯합니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의사와 사람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였다(p35)." 의사와 나누는 대화를 엿보고서야 우리는 저자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충을 겪었는지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됩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남편이 20억 소송을 당했다, 동업자가 의견 충돌 끝에 모든 사업을 방기하고 떠나 버렸다, 빚 독촉에 매일같이 시달렸다, 심지어 "폭력적인 남자 친구를 둔 시누이 때문에 걱정인 시어머니까지 상대해야 했다"... 비즈니스우먼으로서 여러 고충을 겪는 대목보다, 시모의 고생까지 일부 대신 떠맡은 대목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 삶의 무게를 짊어진 분이라면 우울증에 안 걸릴 수 없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참 능력도 좋으시다, 그런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내 일도 부족해서 남의 근심까지... 뭐 무능한 사람은 애초에 고민거리도 안 생기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역시 남의 고민거리는 그걸 듣고 어떤 해법을 주기보다, 그저 당사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최상의 응대임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저자 역시 "끝까지 들어 준" 의사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울지 마! 뭘 잘했다고 울어?" 보통 우는 아이가 못마땅한 어른들이 아이를 혼낼 때 쓰는 말입니다. 뭘 잘했다고 우느냐는 표현은 한국 사람 외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목을 놓아 빽빽 우는 게, 억울하다, 난 죄 없다, 난 이것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의사 표시로 해석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그런가 하면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반대로 "니가 뭘 잘못했는데 울어?"라며 도리어 누명을 쓴 아이를 옹호하는 (곁에 다른 어른 들으라고 하는) 대사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저 감정이 upset되어 우는 건데, 그를 보는 어른의 해석이 제각각일 뿐입니다. 아무튼 저자의 말대로, 감정 표현을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억누르고 어른 위주로 훈육하다 보니 커서도 한국인들이 문제가 생기는 빈도가 높은 게 당연합니다. 저자는 이를 "집단관계주의(p53)"라고 명명합니다. 이름이야 무엇이 되었든 이건 고쳐야 할 문제입니다. 


이성친구(혹은 배우자?)가 양다리를 걸친 상태인지 아닌지의 판별에 대해 저자는 자신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재미있는 건 상대의 양다리 때문에 고민한 후 얻은 교훈이라기보다, 저자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과거를 보내지도 못하고 미래를 마음에 둔 채 걸쳤던" 양다리 경험 끝에 체득한 바를 말한다는 겁니다(p63). 


1) 연락이 잘 안 된다. 답장도 없다.

2) 연락이 되면, 너무 바빠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한다. 

3) 폰 패턴이 몹시 어렵다.

4) 집에 가면 연락 두절이다.

5) 주변 사람에게 소개를 안 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단호합니다. "오늘을 살자! 어중간한 (과거의) 나와의 관계를 끊자." 우리 스스로가 영화감독이며 우리 안에는 페르소나,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페르소나가 여러 명 있으니 상황에 맞는 배우를 끌어내 연기하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나를 억압하지 않고, 나의 개성을 해방시켜 주면 내 삶이 훨씬 다채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저자는 특히 "나쁘지 않은 나" 대신 "진정한 나"를 무대 전면에 내세우라고 말합니다. "나쁘지 않은 나"라 함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위에서 무난하게 길들인, 판에 박힌, 모나지 않은, 잘날것도 없고 특별히 못날 것도 없이 만들어진 나를 가리킵니다. 


p83에는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걸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자분도 설명하고 있지만 서양에서 레몬이라 함은 좋은 뜻이 아닙니다. 레몬 시장이라 하면 겉모습만 번드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물품만 잔뜩 나온 시장을 가리키죠.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비결을 저자는 일곱 개 소개합니다.


1) 온라인 쇼핑을 멀리하라. 필요없는 물건을 사지 말고 대신... → 6)

2) 에너지를 뽑아가는 뱀파이어를 멀리하라.

3) 내 몸을 사랑하고 운동 하나를 골라 꾸준히 해라.

4) 감정 찌꺼기를 덜어낼 시간을 따로 가져라.

5) 지금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대로 따라가라.

6) 경험에 투자하자.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1)~6)을 주저하지 않고 지금 바로!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이라고 합니다. 


의욕이 있고 목표의식이 분명하면 낯선 외국에서도 결국 살아남고 성공을 거두는 예를 많이 보았습니다. 모든 게 익숙한 한국에서도 성공이 힘든데 외국이라 하면 손사래부터 치겠지만 결국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올라"와 "차오"밖에 할 줄 모르던 저자는 "영어를 못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하려 들지 않는 당신이 문제"라는 남편의 지적을 받고 태도를 180도 바꿉니다. 이처럼, 듣기 싫어도 맞는 말이다 싶으면 즉각 수용하는 자세가 정말 중요한 듯합니다. 


저자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글로벌한 스케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가꿔 온 사업가입니다. 책을 읽어 보니 일런 식으로 하시려면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비행기 안, 혹은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이 "외국어 울렁증 극복 비법"으로 들려 주는 이야기(p111)라면 귀 기울여 볼 만합니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혹은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해 보라는 겁니다. "간결함", "정확한 목표", "도달하고 싶은 수준" 이 세 가지만 명확하게 정하고, 두려움을 떨쳐 버린 후 무조건 도전해 보라는 거죠. 


요즘은 이직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습니다만 아직도 한우물파기, 원클럽맨 되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에의 가장 큰 위협은, 실패가 아니라 지루함이 찾아들기 시작할 때이다(p125)." 저자가 강조하는 건 텔로스(목적)입니다. 소소한 절차나 중간과정에 신경 쓰다가 정작 중요한 큰 목표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죠. 저자는 조금 뒤인 p172에서도 "평생 직장 신화" 등에 집착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충고합니다. 미래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돈을 벌어야 행복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자분처럼 원없이 돈 벌어 본 사람이라야 말할 자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연 $95,000(약 1억) 정도면 더 벌어도 행복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걸 만족점이라고 부른다는데 지복점(bliss point)이라 칭해도 될 듯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물론 있겠으나 일단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저 지점을 전환점으로 삼아도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한국인 특유의 압축 성장 강박에 시달리지 말고, 돈은 그저 하나의 양념장 정도일 뿐(p201)임을 명심하라고 합니다. 


이런 저자분께는 그 일생의 연애 스토리에 대해 많이 궁금해집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패션을 전공할 때 저자는 모델 뺨치는 훤칠한 외모의 영국 남성을 사귀었다고 합니다. 어지간히 킹카였는지 줄리라는 이름보다 "(그 유명한) 제임스의 첫 여자친구"가 그녀의 명함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남자한테 선택받은 여성이었다는 자부심이 물씬 느껴집니다. 그러나 완벽한 외적 조건, 경제적 부 등에 비해 내면의 자신감이 부족했다고 하네요. 저자 개인적으로는 한국 남자가 훨씬 헌신적이고 섬세하다고 하십니다(p213). 남자가 헌신적인 걸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게 저자의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건 물론 사람 나름이긴 하겠습니다만.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합니다만 이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는 이심일체, 혹은 일심이체임을 인정, 전제하고 들어가야 더 많은 행복과 만족이 얻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250). "내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이 원래 비혼주의자였던 저자의 부부관입니다. 


현재 저자는 핀란드에 거주하며 남편분과 밀당을 즐기는 사이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보다는 짝궁이 중요하다"는 주의를 당당히 내세웁니다. 한국인은 한국에서 태어나 그만의 소중한 가치와 문화적 전통을 체화하며 자라고 이를 후세에 물려주지만, 글로벌하게 살면서 국제감각을 익히고 나만의 삶을 원없이 사는 여성분의 이야기도 우리는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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