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샘 J. 밀러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장편 소설의 주인공 맷 뿐 아니라, 사실 청소년기는 모든 게 고민스러운 시기입니다. 외모 고민, 성 정체성 (조금이라도), 가난(상대적이지만), 외로움(이건 절대적이죠) 등을 고민 않고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축복 받은 인생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코 그 자체야.(p63)"


코는 매우 정교하며, 1조 개 이상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그 정도로 다양한 냄새를 분별하지는 못합니다.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처럼 "뇌까지" 특별히 발달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여튼 맷은 "굶주린 후" 지금까지 "내가 이 정도밖에 못한다는 생각을 모두 버린 후에" 냄새를 분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티셔츠의 냄새로부터 그 주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점까지 추적해 냅니다. 이 모든 게 1) (내 능력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2) 배를 주리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따라해 보고 싶습니다.


최근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 "갖고 싶은 능력"에 대한 설문이 (몇 년 만에 다시) 유행입니다. 이상하게 인기가 없는 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더군요. 내 앞에 선 한 사람의 생각이든, 불특정 다수의 생각이든 그 내심만 간파할 수 있으면 연얘도 백전백승, 주식도 무조건 성공투자일 텐데 왜 저평가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또 두뇌를 예리하게 단련시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의 생각을 읽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이면 합리적인 대로, 불합리하고 감정적이면 그것대로 말입니다. 


p103에서 맷은 애들의 마음이 "들립니다". 말 그대로 마음의 소리입니다.


'이 OO XX, 여긴 왜 온 거지?'

'이 XX도 우리 학교 다니는 거 맞아?'

'맥주가 필요한데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네.'


사실 생각이란 모호한 정보의 뭉치이기 때문에 슈퍼히어로이건 아니건 이렇게 "들을" 수는 없을 겁니다. 워래 사람 생각이란 당사자 자신도 모르는 법이니, 말로 명확하게 하지 않는 이상 뭐 어떤 수를 써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최근 AI나 뇌파 관련 연구를 통해 생각을 읽는다고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 허무맹랑한 소리 같습니다.


"가끔씩은 몸에 주도권을 줘야 한다.(p152)"


이 정도라도 마음, 정신에 주도권을 주는 건 맷 정도나 되어야 할 수 있는 거고, 우리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끔이 아니라 매번 몸에 주도권을 줍니다. 그래서 범죄가 생기거나 그 무수한 트러블이 인간 사는 사회에서 발생을 하는 겁니다. 가끔이라니 원. 


p171에 "피부"에 대한 긴 설명이 나옵니다. 피부는 보통 제2의 뇌라고까지 불리죠. 맷이 위키백과를 통해서건 자기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건 간에 이 정도로 의식을 하는 걸 보니 진정 슈퍼히어로의 경지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나는 이것이 법칙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p360)." 하지만 소설인지 빤히 알고 이 책을 읽는 우리들도 이 책이 (어떤 종류이건 간에) 법칙서라고 이미 받아들이고 읽었습니다. 법칙서란 딴 게 아니라,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두루 통할 수 있는 "격률의 모음"을 담은 것입니다. 


영화 <슈퍼맨>도 과거에는 완벽하고 흠결 없으며 뭔가 "소수자스러운" 요소는 깡그리 제거된 이상적인 이미지만 담았습니다(소년 시절 제외). 9년 전에 나온 영화 <맨 오브 스틸>은 능력도 완벽하지 않고 감정도 불안정하며 성장기에 끝내 극복 못 한 어떤 열등감도 그대로 지닌 인물로 묘사되죠. 맷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특출한 능력이 단식 후에야 발휘가 되며, 알고 보면 능력의 각성이 "소수자로서의 콤플렉스"를 치열하게 겪고서야 이뤄졌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넌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야." 음, 이 설득력 없는 무기력한 충고가 적어도 이 법칙서 안에서는 현실이 되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