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과학 - 고객을 사로잡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전략, 개정판 마케팅 타임리스 클래식
파코 언더힐 지음, 신현승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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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과학은 대학의 상아탑 분위기와는 달리,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성장한 학문이다.(p19)" 어떻게 보면 비단 "쇼핑학, 쇼핑의 과학"뿐 아니라 마케팅 일반이라 해도 기존의 이론에 얽매이면 현실에 잘 부합하는 이론이 도출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처음에 이 연구를 위해 환경심리학 전공 대학원생들을 고용했으나 이내 부적합함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환경심리학이 딱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에 적합하고 올바르게 결과를 도출하는 이론을 새로 구성하려면 기존의 도그마에 집착하는 마인드로는 접근이 곤란했겠다는 공감을 독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엄밀한 검증을 거친 이론보다, 현장에서 잘 납득되고 잘 통용되는 경험칙 같은 것이 이 분야에서는 더 잘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 p41에서는 어떤 절도범을 CCTV를 통해 적발했는데, 그 도둑이 범행에 사용한 가방이 해당 백화점에서는 어느 코너에서도 팔지 않는 것임을 눈치채고 앞으로는 낯선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방범 팀에 알렸다고 합니다. 이런 방침이 반드시 앞으로도, 또 다른 장소에서도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과학적으로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매장에서만큼은 잘 통했다("절도를 통해 새어나가는 수천 달러의 돈을 확인할 수 있얶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학문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매장을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쇼핑객이라면 해당 몰에서 구한 백을 자주 들고 올테니 말입니다. 또 처음 오는 사람인데 물건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면 쇼핑 후 새로 그곳의 백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며(따라서 빈손으로 방문), 절도 의향이 있다면 도품을 담을 무엇인가가 필요는 할 테니 말이죠.

과연 출입구와 이동 지대를 멀리 배치해야만 할까요? 이 책에 분석되는 이 부분 연구는 다른 여러 대중서뿐 아니라 교과서에도 인용되고 다양한 자격증 참고서들에까지 인용되는 유명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예가 나오는데 버거킹이 샐러드바를 어필하기 위해 기존의 입구를 출구로 바꾸고는, 전에 입구가 있던 곳에 샐러드바를 배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입구를 찾는 동안 샐러드바를 보며 이 메뉴를 찾을 것이라는 계산이었으나, 사람들은 종전에 입구가 있던 곳이 없어지자 그저 당황하며, 입구를 찾은 후에는 본메뉴를 파는곳으로 직행만 하더라는 거죠. 입구에서 시간을 허비한 것 때문에, 본 목적을 달성하려고 더 서두를 뿐 버거킹 쪽에서 마련한 다른 의도에는 주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요즘은 편의점에도 일정 코너에 바구니를 배치합니다. 편의점은 동네 슈퍼나 마트하고는 달라서 대량 구매가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아마 절대 다수는 그저 담배 한 갑이나 음료수 한 캔 정도를 사는 게 보통이겠죠. 서점의 경우 저자는 저런 편의점이나 슈퍼와는 다른 형태의 천 쇼핑백, 나일론 백 등을 비치해야 사람들이 그 안에 무엇을 담고 다닐 마음이 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백 자체도 구매하게끔 하면 더 좋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온라인 구매가 대세이며 오프라인 서점은 간이 카페를 겸한 공간으로 디자인하는 게 요즘 보통이라서 시장별 차이를 감안하고 이 부분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매장은 물론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적절한 메시지를 배치하여, "광고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겠습니까? 실제로 독자인 저도 동네 서점을 가끔 들르며 여기저기 붙은 포스터나 책 광고를 보고 어느 정도 이것들이 효과를 발휘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1.5초 안에 몇 단어나 읽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저자가 매장 입구에 적힌 광고판(10단어로 이뤄졌다고 합니다)을 두고 직원에게 실제로 물어 본 질문입니다. 직원의 답은 "3단어쯤?"이었다고 하네요. 일방적으로 누가 읽어 주기를 기대하고 게시한 광고판은 무의미할 뿐더러 더 효율적인 광고 게시를 막고 있는 장애물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간판은 수직으로 달려야 사람들이 보기 쉽다고 합니다. 수평으로 달리면 그 길 건너편에서야 볼 수 있다(p136)." 너무도 당연한 상식인데 일반 소비자나 샵 주인이나 간과하는 사항입니다. 쇼윈도의 진열물도 우측 통행자들을 배려하여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놓아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엔드캡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엔드캡이 뭐냐면 샵의 매대 맨 끝에 따로 돌출부를 만들어서 상품도 배치하고 광고 문구도 넣은 걸 말합니다.

엔드캡 말고는 셰브러닝이라고 해서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매대를 배치하는데 이게 꽤 효과적이라고 하네요. 단점이 있다면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한다는 겁니다. 이 책이 확실히 고전인 게, 20년 전 초판이 나왔을 때는 이런 정보가 다 혁신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웬만한 4년제, 혹은 2년제 대학 교과서에도 다 나오는 사항이란 거죠. 여튼 고전은 고전대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조금 옛날 사례이긴 합니다만 과거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큰 인기였죠. 이 책에서는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등 과거 인기 프랜차이즈(지금은 이걸 넷플릭스 등 OTT가 다 대체했죠)에서 채용했던 여러 재치있는 기법을 소개합니다. 이런 매장의 경우 저 당시에는 신작 말고 고전 등 "기본 재고"에 해당하는 아이템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진시키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이때 업소에서는 고전 디스크(테이프)를 반품 카트에 넣어 놓았다고 합니다. 마니아들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 아이템이 반품 카트에 담겨 있을 걸로 보아 그곳을 매대보다 먼저 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사실 저도 대학생 때 도서관을 가면 책 보관 선반보다 반납 도서 임시 비치 코너를 더 자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집어 대출하면 사서의 수고도 덜어 주고 인기 있는 책도 쉽게 고르고 상부상조였죠.

쇼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겟 그룹의 소비 취향이 어떤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p183에서 남성은 맥주를 살 때 식스팩을 고르지만 여성은 열두개들이를 더 많이 샀다고 합니다. 남성이 주량이 더 많을 텐데 왜 이럴까요? 답은 "여성은 모두의 파티, 남성은 자신만의 파티를 더 선호해서"라고 하네요. 참 명답이다 싶었습니다.

저자는 유럽에 비해 미국 부모들은 특히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맡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매장, 은행, 소매점에 부모에 의해 끌려다니는 게 미국 아이들이라는 건데... 웰스파고나 시티은행은 막대사탕이나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나눠 준다고 합니다. 아마 로고도 찍혀 있는 판촉물이겠죠? 그럼 아이들은 이때의 행복한 체험을 떠올리며 일생을 두고 해당 브랜드에 대해 로열한다고 하네요. 일본의 닛산 매장의 경우 실제 판매 모델과 같은 장난감 차를 아이들에게 제공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차량 구매에 있어 부모 앞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 않겠냐는 겁니다.

"쇼핑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고객은 구입하기에 앞서 그것을 먼저 경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p285)" 그래서 저자는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물건을 고객 손으로 만져 보고 시험해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최우선인데, 이걸 소홀히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소파나 침대 등 시트가 중요한 제품은 고객이 반드시 만져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새 제품은 비닐 포장까지 입혀져 나옵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런 제품의 경우 전시상품이든 뭐든 반드시 고객들이 만져 볼 수 있게 하는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의류매장의 경우, 고객이 입어 볼 수 있게 하는 탈의실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탈의실은 고객이 쇼핑 시간의 1/3~1/4를 보내는데, 성의 없고 휑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매장 자체를 안 찾게 된다는 거죠. 그러나 많은 점주의 경우 탈의실을 넓게 마련하거나 꾸미는 건 낭비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저자는 이 탈의실에 대해 책 한 권을 따로 쓸 수 있을 만큼 할 말이 많다고 합니다.

계산대는 입구에 비치하지 말라고 합니다. 레스토랑에서 주방을 입구에 배치하면 무슨 기대가 생기겠냐고도 합니다. 계산대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마련인데, 혼잡한 매장에는 사람들이 발길을 꺼리게 된다는군요. 호텔도 체크인 공간에 직원과 방문자가 나란히 보고 상대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등을 배치하면 특히 출장 회사원이 좋아할 것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컴퓨터의 경우 모니터, 프린터 등을 당연히 한 군데에 모아서 진열해야 하는데도, 많은 매장은 어차피 고객이 한 번에 다 사야 할 물건들을 띄엄띄엄 진열합니다. 이것은 매장이 아니라 창고에 더 어울리는 배치라고 합니다. 샐러드 바에 케이크 한 조각을 살짝 갖다 놓으면 고객은 그것까지 함께 살 가능성이 더 크다고도 합니다.

요즘 음악을 누가 CD 포맷으로 구입하겠냐고 합니다. 대중적이고 최신 트렌드인 음악은 물론 음원형태로 더 즐깁니다. 그러나 2007년 기준 틈새 시장이라 할 수 있는 폴카나 라틴 뮤직 장르는 여전히 CD로 더 잘 팔린다고 책은 말합니다. 이 장르는 그저 "소비하는 대중"이 아니라 헌신적인 고객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에 진출할 경우 "그 나라의 쇼핑 법을 철저히 따를 것"을 충고합니다. 재미있는 게 저자의 이탈리아에 대한 규정입니다. 이 나라는 고작 역사가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예나 지금이나 도시 국가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건데 참으로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반면 누가 프랑스를 두고 같은 말을 하겠습니까? 마케팅에서 가장 기본은 "철저한 현지화"인데 이 책은 역시 기본에 충실하게 가르칩니다. 스스로 기본을 만드는 고전이면서도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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