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스트림 - 반복되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힘
댄 히스 지음, 박선령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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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에 대해 의사를 결정하는 고위직이건 현장에서 생산을 맡는 입장이건 간에,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걸 그때그때 맡아 잘 처리하는 것도 일머리가 뛰어나야 하며 그저 부지런함이나 단순반복형 대처로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일처리에 소요되는 수고를 줄이면 좋으며, 시간적으로 일찍 대처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결과를 피할 수 있어서 바람직합니다. 또 어떤 문제에는 반드시 그 근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라서, 이를 애초에 차단하면 훨씬 적은 수고로 다발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업스트림 사고"입니다.

p15에 저자가 의도한 "업스트림"의 뜻이 나옵니다. 강 하류(다운스트림)으로 자꾸 아이들이 물에 빠져 밀려내려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계속 이런 사고가 생기니 도저히 힘이 들어 애들을 구할 수가 없게 되자 누가 소리칩니다. "상류(업스트림)로 가서 어떤 놈이 애들을 물에 집어던지는지 잡아야겠어!" 약간 우습기도 하지만 문제의 원흉을 아예 발본색원하면 해결의 수고를 덜 수 있음을 우화적으로 잘 표현한 것입니다. "업스트림은, 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것을 뜻한다(p18)."

책에는 선제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하여 자원과 비용을 크게 아낀 여러 기업들의 사례가 나옵니다. 그런데 저자는 개별 기업의 사례 검토에 그치지 않고 국가별로 "다운스트림/업스트림에 지출하는 예산 크기"를 따져 봅니다. 의외로 많은 나라들이 "업스트림" 비용을 많이 쓰면서 불필요한 다운스트림 대처 비용을 줄이는 중, 유독 다운과 업의 비율이 거의 일대일, 업 비용을 덜 쓰는 나라가 있으니 그게 바로 저자의 고국이기도 한 미국입니다. 특히 저자가 주목한 건 보건의료 분야입니다.

애초에 국민 건강 관리가 잘 된 시스템이라면 의료비 지출이 적습니다. 병에 걸리고 나서 치료에 돈을 쓰느니보다 평소부터 건강을 잘 관리하면 치료비 지출 자체가 줄기 때문이죠. 미국은 공적 의료 보험 제도의 미비로 애초에 지출이 클 뿐 아니라, 병에 걸리면 그때 부랴부랴 대증적으로 나서는 터라 다운스트림 비용이 무척 큽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미국보다야 공적 보험 제도가 완비되었으나, 개개인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사회 구조인데다가 난폭 운전이 일상화했고 보건 환경이 그리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미국보다는 치료비 지출이 적을지 모르나 애초에 국민들이 암, 신경성 질환, 교통 사고 등으로 많은 비용을 쓰는 편이죠. 우리 역시 다운스트림 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에 속합니다.

마커스 엘리엇은 스포츠 트레이너입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그 신호를 찾아서 그 신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나쁜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고만 있으면 절대 (좋았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p41)" 이분의 유능한 선제적 대응으로, 스포츠계에는 "부상 예방 과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야구에서 토미 존 서저리 등 투수의 부상을 치료하고 재활에 성공케 하는 여러 선진적인 기법이 발전되었습니다. 허나 중요한 건 부상에서 잘 낫는 방법의 개발보다, 애초에 선수들이 부상을 덜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할까요? 가장 큰 원인은 "문제를 문제로서 그대로 인정하길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쉽게 수긍하지 않고 일단 좋았던 옛날과 지금이 다름 없다며 현실을 부정부터 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래서는 신호도 안 잡히고 문제가 훨씬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업스트림 사고도 이것을 잘하는 사람 유형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그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인의식(p61)"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주인의식 없이 그저 성실하기만 한 사람(물론 이런 사람도 크게 칭찬 받아야 합니다)은, 다운스트림에서 놀라운 기술을 발휘하여, 떠내려오는 아이들을 척척 구조합니다. 큰 포상을 받아야 마땅하죠. 허나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인의식까지 갖춘 사람은 즉시 업스트림으로 올라가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합니다. 의욕과 근태 문제가 아니라 "주인의식의 문제"입니다. 주인의식이 있어야 결국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저자는 심리학자 엘다 샤퍼와 센딜 멀레이너선이 고안한 용어 "터널링 효과"를 거론합니다(p86). 예를 들어 이런저런 청구서를 받아 든 싱글맘(당장 아들의 농구 레슨비를 대어야 할)은 초단기 대출을 받습니다. 전문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녀의 이런 결정이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결정이라 우려하겠으나 그녀는 당장의 급한 불을 껐으므로 만족합니다. 터널에서 보는 시야는 매우 좁은데도 핀치에 몰린 이는 그 보이는 부분만으로 의사를 결정합니다. 여기서 내리는 저자의 결론은 "큰 문제가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작은 문제가 큰 문제를 밀어낸다"는 겁니다. 밀어내는 건 물론 해결한다는 뜻이 아니라 당장 시야에서 잊힐 뿐이며 오히려 스노볼이 되어서 돌아오기 십상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독자인 저도 저 예화의 싱글맘과 같은 선택을 얼마나 지금까지 자주 했는지 모릅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로부터 자율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를 자주 일으키고 스스로를 위기에 몰아넣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어른들이 책임의식을 느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가 자제하고 문제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려는(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업스트림으로 이동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게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일단의 청소년들은 자발적으로 금주, 절제 운동을 폈다고 합니다.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데 말이죠. 이처럼 업스트림으로의 능동적 이동이 가능하려면 어떤 결단과 조치가 필요할까요?

저자는 "문제를 포위하라(p112)"고 합니다. 이런 업스트림 이동은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움직임이라는 이유에서 "봉사활동"과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저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가치관을 공유하며 함께 행동에 나서라고 합니다. 성과가 더 좋으려면 "모임과 행동을 조직화하라"고도 합니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특히 미국은 보건의료분야에서 업스트림 비용 지출이 적은 나라라고 지적했습니다. p133 이하에서 캐나다 출신으로 의과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 볼티모어로 이주한 그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극단적인 빈곤과 풍요가 지척에 동거할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나중에 박사까지 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모든 시스템은 설계된 목적이 있으며, 미국에서 특정 구역 거주자의 수명이 10~15년이나 짧은 건, 처음부터 시스템이 의도한 바"라는 것입니다. 즉 "일정 구역에 사는 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일찍 죽기"를 누군가가 의도한 결과라는 뜻이죠.

p154에서 행동가 샌드라 셀러던은 "지금 출범한 메디케어로부터 당장 우리가 혜택을 보지 못해도, 누군가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개혁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 또 공무원 연금 같은 제도는 어떨까요? 사실 이는 비용-편익 분석을 시도하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설령 비용이 편익보다 수위가 낮다고 해도 과연 그 비용을 누구의 주머니로부터 도출하며 혜택을 누가 볼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p190에는 한국의 예도 나옵니다. 좋은 예가 아니라 나쁜 예로 등장합니다. 우리들 대부분도 알고 있듯 몇 년 전 갑상샘암이 크게 유행(?)했고 많은 이들이 치료, 혹은 보험혜택을 받았으며 압도적 다수가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이게 한국 의학의 수월성, 기적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애초에 갑상샘암 자체가 생명에 아무 위험을 안 끼치는 병이었다는 거죠. 양치기 소년의 우화처럼 경보 시스템이 이렇게 잘못 작동하면 오히려 사회에 해악(도덕적 해이) 을 끼칩니다. 그래도 저자는 "업스트림식 사고와 행동의 핵심이 조기 경보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대목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피드백, 소통의 힘은 조직의 생명력을 지탱합니다. 회의만 했다 하면 마이크를 독점하고 혼자 떠드는 사람이 정해진 조직도 있습니다. 이런 조직은 반드시 망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규칙을 마련하려 균등한 발언권 보장을 통해 피드백이 살아 있는 조직"이 반그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소통의 건강성과 효율성이 보장된 후, 위에서 말한 "돈 나가는 주머니≠들어오는 주머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회에는 건강한 젊은 노동력이 끊임없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유례, 전례 없이 낮은 출산율은 국가 소멸을 걱정할 단계입니다. 저자는 미국의 경우 아동 학대 같은 것보다 무지, 육아 상식의 무지, 또 이에서 비롯한 유아 건강, 보건 이슈가 훨씬 큰 문제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살아남아야 사회의 생산성을 기초부터 담보하는 자원이 유지됩니다. 업스트림/다운스트림으로 문제를 나누자면 육아, 유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업스트림 중에서도 최상류의 솔루션에 속합니다. 이를 위한 좋은 해결책 하나가 책 p253 이하에 나오는 "너스-패밀리 파트너십"입니다. 간호사 한 명을 빈곤가정 한 곳에 매칭시켜 육아를 위한 기초 보건 상식을 코칭하는 거죠. 문제는, 분명 사회 모두가 이익을 보는 이 프로그램 비용을 누가 대느냐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시 "조기 경보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시간에서의 업스트림이므로). 문제를 예측해도 여전히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연방재난관리청의 긴급대응 책임자 에릭 톨버트는 "뉴올리언스를 강타할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허리케인입니다(p277. 오타 있음)."라고 답합니다. 이들이 1년 전에 마련한 시뮬레이션은, 이후 실제로 발생한 경위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사고와 시뮬레이션의 차이를 가른 건, "역방향 통제"가 어느 정도 성공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역방향 통제를 도로에서 실행한 경우 실제 사망자는 크게 줄었습니다. 기발한 훈련이 단 한 차례로 그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했을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민방위 훈련을 자주 하고 상당수 시민들은 철저히 협조합니다. 또 이번 코로나 사태도 미리미리 마스크를 잘 끼고 다니기에 그나마 피해가 이 정도인 것입니다.

"메디케어 앤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는, 프로그램 순 지출액을 평가할 때, 예상되는 수명 증가와 관련된 비용을 고려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p314)" 생명이 달린 이슈에 치졸한 덧셈 뺄셈 접근법은 옳지 않다는 데에 드디어 컨센서스가 이뤄진 겁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업스트림 이동"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상류로 이동하면 수조 달러를 아낄 수 있는데 당장 몇만 달러 지출 증가에 신경 쓴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운스트림에서 결국 수천만 달러를 쓴 후 "수 조 달러의 1/10만 썼으니 얼마나 잘 대처했던가"로 초라하게 자화자찬하는 사회는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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