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빛이 된 당신을 마음에 담습니다 - 사랑하는 안석배 기자에게 보내는 고마움의 편지들
장용석.이인열 외 76명 지음 / 행복에너지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1년 전인 2020년 6월 타계한 고 안석배 기자님에게 보내는 같은 회사 선배, 동료, 후배 기자분들의 찬사, 회고, 고백, 오열, 애도 등을 담은 책입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열정을 불 사르며 직무에 몰입하던 분을 먼저 떠나보내는 사우(社友)들의 마음은 비장하고 안타깝기 마련입니다. 안 기자님처럼 이리 폭 넓게, 남은 이들로부터 따뜻하고 열렬하며 진정성 가득하게 기억되는 분이라면 진정 한 세상 제대로 살고 제대로 죽음에 면했다는 높은 평가를 들어 마땅할 것 같습니다.

물론 동료 기자분들만의 회고를 실은 건 아니고, 생전에 그가 교육 전문 기자였던 만큼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 염재호 전 고대 총장, 감경범 교수, 야스오미 교수 등의 추모글도 실려 있습니다. 가족분들의 안타깝고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담은 글 세 편도 실렸는데, 고인의 외조카분,  여동생분, 그리고 형님의 절절한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책 끝에는 고인의 인생 각 국면을 담은 사진들도, 흑백은 흑백대로 컬러는 컬러대로, 생각보다 많은 수가 실렸습니다.

특히 해당 신문사에 합격했던 응시표 사진, 연대 졸업 당시에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족분들의 반듯하고 화목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특히 독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자로서 그가 남긴 명문이 지면에 실린 모습을 담은 사진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해당 신문을 평소에 아주 열독하지는 않았고 교육 분야에서 얼마나 높은 식견을 보이셨는지 미리 캐치할 만큼 큰 관심도 없었기에 (좀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아 그러셨던가" 하며 고개를 간간이 끄덕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지인들한테 이처럼이나 뜨겁게 기억될 수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보람 가득하고 존경스러운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훈 논설위원은 "티오를 받아내는 것, 지면을 확보하는 것 등이 다 녹록지 않았다. 교육 현장에서 그의 존재감은 발군이었다. 어느 기자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교육계 인맥을 독보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흥분한 상황에서도 조근조근 설득하는 그의 화법은 옆에서 듣는 사람마저도 감탄하게 했다...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그를 회고합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우리는 선배한테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나도 안 부장도 조금 흥분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2018년 9월 그가 논설위원에서 사회정책부 부장으로 발령났을 때 그 자리에서 탄성을 지를 만큼 기뻤다" 이는 김광일 논설위원의 회고입니다.

"잘생긴 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했던 형은 함께 어울리면서 늘 뿌듯했던 친구이기도 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형과 어울리는 나를 과하게 평가했겠어요." 이는 한현우 문화전문기자의 말입니다. p49에는 논설위원 야구 경기 단체 관람 사진이 나오는데 (구) SK 와이번스의 팬들이신지 모르겠네요.

"환자복 차림에도 석배는 품위가 있었다. 멋진 외모, 기품 있는 스타일, 온화한 성격... 이 친구야말로 혹독한 근무 여건 속의 사스마와리들이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최보식 선임기자의 말입니다. 사츠마와리는 한자로 察番이라는 것으로, 초년생 사회부 기자들이 번갈아 경찰서에서 번을 서다시피하며 취재하는 걸 가리킨다고 들었습니다. 기자라고 하면 젊은 시절부터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는 것만 같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쁜 여건 속에서도 품위를 지켰던 선배라야 이후 후배들에게 든든한 그늘이 되어 줄 수 있겠다는 점도 확인이 가능했네요.

"회사에 대한 세무사찰과 그에 따른 사주 구속의 여파로 상당수의 검찰 간부들이 (해당 신문사) 기자들을 기피하던 시절이었지만, 귀하를 무시한 검사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정한 외모에 글로벌 스탠다드 매너,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던 귀하를 무시하면 큰일나겠다 싶었겠죠." 이는 정권현 선임기자의 회고인데 참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고 인간 관계를 꾸려 나가면 이런 평가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저 일이 2002년이었다는데 고인의 연령 34세였을 때이니 아직 젊다면 젊은 기자이셨겠네요. 하긴 고인의 향년 53세는 젊은 나이가 어디 아니겠습니까. 당시에 어떤 야당 국회의원이 "공산주의식 세무조사"라 비판했던 기억도 들고, 라이벌 타 신문사 사주의 부인이 투신자살했던 기억도 그러고보니 있습니다.

"술자리는 사람의 품격을 보여 준다고 하지. 하지만 너에게는 신사의 품격만 보였어. 입시생을 둔 부모들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어하는 기자, 그게 너였어. 후배였지만 반듯한 너를 항상 마음속 깊이 존경했었다." 이것은 윤정호 티조 보도본부 부본부장의 말입니다.

2부에서는 제 생각에 가장 값진 기록들이 이어집니다. 정말로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들(전교 1, 2등을 다툰)이, 커서도 명문대에 진학하고, 사회 저명인사가 되어 다시 만나는 건 뜻깊고도 감동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생 시절의 개성, 개인사, 이런 걸 성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현재의 모습에 비추어 각자의 성장을 가늠하고... 이런 관계가 진정한 친구의 교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이렇게 친교를 나눈 친구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독자인 저하고야 전혀 관계 없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렇게 산 분이니 동료들한테 그렇게나 칭송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p87에 나온 사진도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어릴 적 애늙은이가 이제서야 물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래서 보기 좋았고 이런 친구를 둔 내가 복이 많구나 여겼다." 정규철이란 벗의 회고입니다. 이런 말에도 어린 시절의 인상과 기억이 성인의 그것과 탄탄한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게 확연히 보입니다. 반대로 이런 지점들이 불연속적이고 단절된 게 많은 인간일수록 영혼이 타락했다고 봐야 하죠. 또 "어릴 적 애늙은이"라는 게, 어려서부터도 그만큼 많은 책을 읽고 사색을 했다는 소립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술자리 매너도 중후하고 인격도 뻬어나며 이른바 신사의 품격을 풍길 수 있는 거죠. 인상도 나쁘고 언행도 거친 자가 자칭 신사라고 떠들고 다니는 가관과는 대조될 뿐입니다.

이 독후감 앞에서도 말했지만 독자로서 저는 해당 신문을 그리 열독한 편도 아니었고 공력 깊은 어느 언론인의 기사를 꾸준히 찾아보며 아 이 분야를 진정 꿰뚫는 분이시다, 이런 느낌을 스스로 정리했을 만큼의 진지한 독자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책을 평가할 자격도 없죠.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어쩌면 한 사람이 이렇게나 직장 선배, 후배, 동료 들에게 일치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또 어려서부터 그가 크게 될 걸 알고 배울 점을 찾아 배우던 친구들을 여럿 곁에 둘 수 있었는지, 이런 점을 그 진정성 뚝뚝 흐르는 회고를 읽고 고인이 가신 지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 한국에 이런 큰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된 체험 그 자체가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생을 올바르고 보람되게 산 분은 이처럼 전혀 연이 없고 끝까지 한 줌의 매우 미약한 교차점도 없을 뻔했던 어느 미미한 독자에게도 이처럼 감동을 주고 떠나는 법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