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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없는 2주일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0
플로리안 부셴도르프 지음, 박성원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7월
평점 :
폰이 주변에 없으면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어쩔 줄 몰라하는 증상을 "노모포비아"라 부른다고 합니다. 딱히 십대들에만 해당되지 않고 어른들, 심지어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증상이 종종 나타나기도 합니다.
독일 작가분이 쓴 이 소설을 읽고, 지구촌 어디건 간에 사람 사는 모습을 참 놀랍도록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도 다양한 인터넷 게시판,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메신저의 스냅샷을 올리고 남들(때로 자신 포함)이 주고받은 대화(상황의 어이없음)을 평가하거나 비웃곤 하는데, 이 책 p13, p15, p43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을 이렇게나 바꿔 놓았나 싶습니다.
"일상적인 수업을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실험용 토끼가 아니니까요." 고3도 아니고 중3이 이처럼 교사에게 당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 헬름홀츠 중학교(p101)의 분위기가 부럽습니다. 하긴 나라가 민주주의이면, 비록 미성년자들이 교육을 받는 학교라고는 하나 (교육 지표가 민주주의 시민 양성인 이상) 당연히 학교의 분위기도 하나부터 열까지 민주주의 방식이라야 합니다.
또 우리 한국인들은 그간 너무 획일적인 교육 방식에 익숙한 나머지 "튀는 수업"이라고 하면 무조건 창의력이 자동 배양이라도 되는 양 환영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학생들은 "그저 일상적인 수업 진행"을 요구합니다. 더군다나 나이 어린 아이들인데.... 하지만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었음이 잠시 후에 밝혀지기도 하는데요.
학생들이 선생님(교생)에게 반기를 들고 나선 이 판에도 아멜리와 칼라 같은 애들은 "선생님 말을 끝까지 들어 보자"고 합니다. 여튼 평가의 주체는 교사이니 잘 보일 필요가...
"30년 전 사람들은 폰 없이 어떻게 지냈을까요?"
30년 전이면 중학생들에게는 무척 예전으로 느껴지겠으나 지금 이 세상에는 30년 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회상하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어른들조차 "아, 폰 없을 때는 대체 어떻게 지냈을까?"라며 아찔해한다는 거죠. 그런 삶이 상상이 안 되는 건 애와 어른이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어른들, 심지어 노인들도 유튜브, 소셜 미디어, 그 중에서도 단톡방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 모릅니다.
몇 년 전에 모 방송국 기자가 어느 PC방에 들어가 갑자기 외부 전원을 내려서,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던 서비스 공간 안에서의 반응을 살펴 봤습니다. 당연히 이거 뭐냐면서 욕설이 난무했겠는데, 이걸 두고 그 기자는 "게임을 즐기면 이처럼 성향이 폭력적으로 바뀐다"고 보도하여 당시 아주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위에서 독일 모 중학교 학생들은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며 교사(담임 라이머 씨[p97]가 아파서 교생이 대신 중)에게 항의헸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이색적인 수업이라는 게 "핸드폰 없이 지내 보기"라는 프로젝트라서, 아이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폰을 제출하는 과정이 포함되었더랬습니다. 그러니 저토록 반발하고, 의젓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도 아는 거죠.
톰은 용감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학생 같은 인상을 (소설 초반에) 줬지만, 더 읽어 보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바보 같은 아이네요. "내일이면 슈미트 (교생) 선생이 이베이에 (아이들이 제출한) 폰을 다 팔아먹을 거야." 물론 말한 본인도 안 믿는 헛소리입니다. 요한나는 반대파였는데 제비뽑기에서 운 좋게 제출 의무를 면합니다. 반면 교생 슈미트에게 우호적이던 아멜리는 "핸없사"에 제대로 걸렸으니 인생은 아이러니입니다.
요한나와 아멜리는 베프인데 요한나가 어제 아멜리를 바람맞혔습니다. 그런데 핑계가 생긴 게, 핸드폰을 제출했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거죠. 게다가 요한나는 마지막에 아멜리의 가슴을 후벼 파는(p38) 한 마디를 던지는데, 그건 "자신이 아론과 사귄다"는 겁니다. 아론은 반장이며 소설 앞에서 교생 슈미트에게 가장 먼저 따지고 든 학생입니다. 아론은 제법 똑똑해서 "선생님의 쇼핑 백 안에 들어 있는, 자신이 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적힌 쪽지의 내용을 추측해서 적어 오기를 우리에게 숙제로 내 주려는 거죠?"라며 제법 합리적인 추론을 합니다.
생각 외로 아멜리는 (여자애답게) 다정다감한데, 괜히 아론에게 요한나가 널 좋아한다고 알려 줘서 후회하는 중입니다. 거짓말로 한 건데 알고 보니 진짜였던 것! 요한나는 교생 슈미트의 백 안에 "요금 명세서"가 산더미같이 있을 거라고 적었다며 깔깔댑니다. 또 요한나는 부모님께 핸드폰 사용에 대해 자신에게 잔소리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곤 나갑니다. 얘가 아멜리 대신 핸없사에 당첨되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톰은 멍청할 뿐 아니라 애가 비뚤어지기까지 했네요. 핸없사에 당첨되었지만 그는 본래 폰이 두 개라서 불편이 없습니다. 또 속으로는 폰 없으면 안 된다는 주의이지만 슈미트 선생의 의도는 "폰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라 짐작하고 제 양심을 속인 후 거짓말을 써 낼 거라고 공표하고 다닙니다. 뭐 다 좋은데 주위에 떠들지는 말아야죠.
여튼 아멜리는 베프 요한나가, 자신이 내심 찍어 놓은 아론과 그렇고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서 미칠 지경입니다. 반장 아론은 키도 작고 잘난척이나 하는 타입인데 내가 왜! 그런 애한테 마음을 뺏겨서 이 고생인지. 그러나 아멜리는 수학 과외 중(과외를 아론에게 받습니다. 비법 전수) 뜻밖의 말을 듣습니다.
"요한나는 톡 말고는 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애야. 삶 전체가 톡으로 이뤄져 있지.(p58)"
요한나가 실제 어떤 애이든 무관하게, 이런 말을 쓸 줄 안다는 자체가 아론이 어른스럽다는 증명입니다. 여튼 이 말을 듣고 나서 아멜리는 종전까지 자신이 요한나에게 느껴 왔던 신비감 같은 게 싹 사라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아이는 그저 톡에 살고 죽는 생각 없는 천박한 애였다는 거죠.
아론은 원래 슈미트 선생을 좋아했고, 요한나를 그녀를 두고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평가해 왔습니다. 아... 그러나 요한나에게 아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는데(그걸 구태여 요한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 독자들은 당연히 여긴 일이지만), 이 충격 때문에 요한나는 단톡방에 아주 못된 소리를 지껄여 놓았다가, 잠시 후(그래도 다행이죠)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공개 사과하고 다리 위로 향합니다. 낌새를 채고(죽으려 한다는 것만 알았지 단톡방에 얘가 뭐라고 떠들었는지는 아직 모르는) 아멜리는 슈미트 선생에게 급히 연락합니다. 그리고 슈미트 선생은 의외의 능력을 발휘해서 요한나를 잘 설득하는군요.
이 소설에는 의외의 반전이 나와서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저는 사실 (마음에 안 들긴 해도) 톰의 반응이 어느 정도는 (소설 결말에 가면) 사실이 아닐까, 결국 "폰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계도적으로 강조하면서 끝이 나지 않겠나 싶었는데, 물론 그렇기는 하나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약간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밝은 결말입니다. 스포라서 자세히 적진 않겠으나, 디지털 감옥에서 빨리 빠져나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소통과 관계를 회복하자는 게 여튼 소설의 주제입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