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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뤄주는 놀이동산 홀리파크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1년 6월
평점 :
이 장편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저는 예전에 본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우리 가족"이었는데, 딸 둘을 자녀로 둔 어느 가정에서 큰딸을 두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습니다. 공부도 못 하고 변변히 잘하는 게 없는 아이는 "제발 아빠 엄마가 OOOO게 해 주세요"라고 끝에 주문까지 붙이며 소원을 빌지만 이내 실망합니다. 그래봐야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 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어른들이야 당연히(...) 냉수 먹고 속 차리고 거친 세상의 법칙에 적응하는 게 맞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인데도 벌써 "소원을 믿지 않는" 마음이라는 게 많이 안쓰러웠습니다.

홀리파크는 말 그대로 소원을 들어주는 곳입니다. 이곳에의 입장은 열 살이 넘으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알게 됩니다. 아까 제가 언급한 드라마의 아역은 극중에서 초등 고학년이므로 열 살은 넘었고, 이런 걸 보면 아마 소원(을 들어 주는 기적)을 믿고 안 믿고의 커트라인이 열 살이 맞긴 한가 봅니다.
"인간은 아이로 불릴 때가 가장 선하고 현명하다는 것. 연장자일수록 위대한 지혜를 공명만으로도 전수하는 요정의 세계와는 다르다(p29)."

왜 인간은 나이 들수록 타락하며, 지식이 늘망정 참된 생의 지혜는 점점 잃어가는 걸까요? 반대로, 요정, 혹은 동양인들이 신선으로 불렀던 이들은 이 풍진 세상을 멀리하고 생식만 하며 자연의 기를 듬뿍 받아 불로장생은 물론 생의 궁극적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곤 했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못된 꾀만 늘어가는 인간들은, 처음부터 그리 살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도 그릇된 길을 골라 이처럼이나 불행히 종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2년 전의 그림일기에서 과연 어떤 보호자가 우리 친구 조이를 지켜 줄지 저도 궁금합니다!(p66)"
조이는 벌써 스무 살이라 홀리파크에 입장할 자격은 원래 없습니다. 그러나 조이에게는 다른 자격이 갖춰졌기에 예외인 건데요.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역시 예전에 보았던 조시 하트넷 주연의 영화 <나비 효과>가 떠올랐습니다. 인생에서 뭔가 잘못된 상황을 만나면 주인공은 어렸을 때 써 놓은 일기장에 집중하여, 바로 그 시점의 과거로 이동합니다. 물론 몸은 과거 그 시점의 상태이지만 의식은 미래애서 성인일 때 내용 그대로죠.
왜 그 영화 속의 다른 인물들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까요? 일기를 안 써서? 그보다는, 일기가 있어도, 과거의 그 시점으로 이동하는 기적을 진심으로 믿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요? 이 소설의 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는 스무 살이나 먹었으나 그는 홀리파크의 기적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천국에 가려면 진정 이 아이와 같은 마음이라야 한다"거나 "나를 진심으로 믿었기에 병이 나았다"거나 같은 말을 했습니다. 종교를 떠나, 진심으로 티 없는 마음을 갖고 기적을 믿는 이에게는 정말로 소원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홀리파크입니다.
"이제 조이도 눈 앞에 잡힐 듯한 여의주에 손을 뻗으며 창공을 날아올랐다.(p93)"

조이에게는 동생 나오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태어나 이곳저곳이 아픈 아이이죠. 왜 언제나 똑 같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까요? 엄마의 답은, "하늘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주변에서 만나곤 하는 모든, 나오 비슷한 친구들이 언제나 자기 세계 안에서만 머물러 사는 것도 이 말로 대답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편견으로 보는 어른들은, 단지 그저 기적을 안 믿는 것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거겠죠? 하긴 평생에 한 번도 기적이 안 이뤄지는 자체가 벌써 벌을 받고 있는 겁니다. 불쌍하게도 자신이 벌 받는 중인지도 모르고 타락한 삶을 자랑스럽게 살죠.
"비르크의 종은 애초에 죽은 이를 살려내는 소원은 들어 주지 않았어요!(p28)"
비르크의 종은 소설 처음부터 등장하는, 소원 성취에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장치(...)입니다. 예전에 송나라에도 등문고라는 게 있어서 억울한 이들이 윗선에 하소연하는 수단으로 쓰였죠. 그러고 보면, 멀리, 은은히 소리를 전달하는 종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소원 성취, 설원, 간구 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튼 아무리 홀리파크 비르크의 종이라 해도 어느 선은 넘어서 소원을 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꿈이불(p157)"도 신통한 기구입니다. 모든 꿈을, 이걸 덮으면 꿀 수 있는데 이미 대여가 된 꿈은 아쉽게도 안 됩니다. 속물스럽지만 돈을 많이 버는 꿈도 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의 참된 가치를 안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이런 꿈은 꿀 필요가 없지 싶습니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없는 것이 없는 이 홀리파크에서 단 하나 없어진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p216)"
얼음고래는 생각지도 않게 조이가 답을 맞히자 비루하게도 딴소리를 합니다. "손님은.... 어린이도 아니잖아요?"
비르크의 종은 별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지구인인 이상, 마음 속에 하나씩 갖고 삽니다. 그런데도 소원을 왜 못 이루냐면... 답은 이미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소원도 이루고 종도 찾는 방법은 다 압니다. 그 기적은 우리가 스스로 이뤄야 합니다. 당연한 게 기적을 바라야 한다는 게 슬프지만 여튼 그렇네요.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